[산책 여덟 걸음] 점, 선 따라 걷는 아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가수 싸이의 기사를 우연히 접한 적이 있습니다. '싸이'하면 자동으로 연결되는 노래가 있죠. 남녀노소 이유를 불문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말춤을 추게 만들었던 그 노래 '강남스타일'이 초대박 히트를 거두어들인 것이 벌써 10년 전이 되었네요. 노래가 대박 난 이유에 대해 몇 년간 고민한 싸이의 대답을 실은 기사였어요. "아직도 저는 강남스타일이 왜 특별했는지 모르겠어요.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미국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강남스타일의 성공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싸이는 단지 한국 가수로서 한국인과 즐기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마음으로 질러봤던 그 노래는 그 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뮤직비디오로 등극하게 되었지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어요. 그 바통을 넘겨받은 지금의 K팝 월드 스타는 바로 방탄소년단이겠죠. 2013년도에 데뷔하여 언론과 대중들에게 큰 관심은 받지 못했지만 유튜브, 각종 sns에 당시로는 개념도 잘 잡혀있지 않던 자체 콘텐츠 영상들을 많이 업로드했고, 그중 안무 연습 영상, 연말 시상식 무대의 연습 영상, 서툰 영어가 담긴 리얼리티 촬영 영상들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그들의 실력과 매력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어요. 방탄 소년단의 성공 역시도 다양한 자체 콘텐츠 올리기를 끊임없이 시도하였고, 이렇게 질러 놓은 콘텐츠들에 담긴 그들의 진심과 노력, 노래에도 있듯이 과정에서 흘린 피땀 눈물로 일궈낸 커다란 성과였죠. 초대박 히트를 쳤던 가수들의 사연 말고도 질러서 시작된 유명한 일화들이 많습니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아시나요? 다급했던 순간 주장 김연경 선수의 외침!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는 외침 말이에요. 해보자를 다섯 번이나 외쳤던 간절함과 '후회 없이!'라는 저릿한 말이, 보는 이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켰었죠. 그 순간 김연경 선수가 질렀던 외침은 여자 배구팀 전체 분위기를 뒤집어놓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국민들은 커다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 개개인의 인생에서도 시작에 앞서 질렀던 경험들을 찾아볼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지르는 중일지도, 어쩌면 질러 볼 예정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저는 지금 지르는 중에 있고요. 글을 쓰는 작업은 매번 지르는 맛으로 하고 있답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시작 앞에서는 눈 딱 감고 그냥 한 번 질러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변화 또는 시작을 앞두고 읽어보면 좋을 그림책! 누구나 시작을 망설였던 경험이 있죠? 미술시간, 그림에 자신이 없었던 베티가 조심스럽게 그 시작을 일궈낸 이야기 <점>, 선 따라 걷기 놀이를 하며 선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려던 아이의 상상 속 이야기 <선 따라 걷는 아이> 두 권의 그림책을 보며 시작과 변화에 대한 각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피터 레이놀즈 글, 그림ㅣ김지효 옮김ㅣ문학동네]
미술 시간에 하얀도화지를 앞에 놓고 머뭇거린 일이 있나요? 그렇다면 우리 친구 베티를 만나 보세요. 텅 빈 도화지를 내려다보고만 있던 베티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미술 시간은 벌써 끝났지만, 베티는 하얀 도화지를 뒤로 한채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잔뜩 화난 표정으로 말이죠. 그림 그리기를 망설이는 베티의 모습을 보며 때론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를 망설이는 제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사실, 시작은 지르는 맛이라고 큰소리 뻥뻥첬던 제목과는 달리, 이 글은 작가의 서랍에서 일주일 동안 방치되어 있었죠. 이 이야기를 써도 되려나?, 아님 저 이야기를 끄집어낼까?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 몰라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에라 모르겠다. 그냥 지르자는 심정으로 쓰게 되었어요. 쓰다 보니 또 줄줄 쏟아져 나오네요. 베티에게는 미술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고민하는 베티에게 다가와 빙그레 웃으며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베티는 여전히 심통난 얼굴로 연필을 잡고서는 도화지 위에 힘껏 내리꽂았어요. 선생님은 도화지를 들고 한참을 살펴보더니 베티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어요.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이것이 베티의 시작이었습니다.
베티는 선생님의 책상 위에 걸린 액자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번쩍이는 금테 액자 안에는 베티가 내리꽂았던 바로 그 점이 들어있었거든요. "흥! 저것보다 훨씬 멋진 점을 그릴 수 있어!" 베티는 그때부터 이제껏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수채화 물감을 꺼내어 점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쉬지 않고 다양한 색깔의 점을 그렸고, 색깔을 섞으며 작은 점, 커다란 점, 심지어 색칠을 하지 않고도 커다란 점을 만들었죠. 얼마 후 학교에서 미술 전시회가 열렸고 베티가 그린 점들은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전시장에 등장했던 시작을 망설이는 또 다른 아이에게도 그 비법을 전수한답니다. 비법은 무엇일까요? 무심코 찍었던 작은 점 하나의 위력을 보셨나요? 하얀 도화지에 아무렇게나 찍은 작은 점 하나도 독창적인 그림이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무한한 가능성을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따뜻한 시선을 만난다면 우리는 모두 꿈꾸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크리스틴 베젤 글ㅣ알랭 코르크스 그림ㅣ김노엘라 옮김ㅣ평화를 품은 책]
거리에 나가면, 길바닥 위에 선들이 있어요. 아이는 혼자서 놀이를 시작해요. 선 따라 걷기 놀이죠. 선 밖으로 벗어나면 절대로 안 돼요. 그러다간 깊은 구멍으로 떨어지고 말 테니까요....
선 따라 걷는 아이의 모습이 심상치 않죠? 선 밖의 세상은 전혀 궁금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화면을 가로질러 길게 나 있는 선만 따라 걷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선 따라 걷는 놀이를 한다고 하지만, 선 밖으로 벗어나면 깊은 구멍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말해요. 선 밖의 세상에는 떨어지는 녀석을 몽땅 삼켜버리는 구멍 괴물도 있다 생각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선은 다채롭고 재미있어 보였지만 여전히 선을 지키려 애쓰는 아이 모습이 왠지 무척 안쓰럽게 느껴져요.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선을 따라 걷는 아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이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하고, 선을 따라 점점 더 빨리 달리는 모습은 마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도착한 다리 위에서는 강물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바라보기도 해요. 물결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묘하게도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물결을 따라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며 절대로 정해진 선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선으로 만든 길을 따라 걸으며 드디어 집에 도착했어요. 이젠 선 따라 걷기가 멈추려나 싶었는데, 웬걸 공책을 펴고 공책 위의 선을 따라 걷는 놀이를 합니다. 공책에 선이 보이지 않으면 선을 그리기도 해요. 이제껏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고 긴 선, 나를 향해 웃어주는 부드러운 선, 찡그린 표정처럼 날카로운 선, 풀어야 할 과제처럼 뱅글뱅글 꼬인 선. 그러다가 아이는 잠이 들고, 꿈속에서도 선을 따라 걸어요. 도대체 끝나지 않는 선 따라 걷기로 인해 악몽을 꾸는 듯한 아이. 그러다가 그만, 선 밖으로 뚝 떨어져요. 구멍 속으로,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것만 알려줄게요. 아이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어요. 더 이상 선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더 멋지고 흥미로운 세상 말이에요. 정해진 길이 아닌 세상은 마치 일탈을 꿈꾸는 것 마냥, 오직 선만 따라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른들은 꽤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림 속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선 밖의 세상에도 꽤 멋진 삶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미술 시간에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두고 한 없이 머뭇거렸던 베티가 전시회에서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 잔뜩 심통난 베티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해주었던 선생님의 시선이 너무 좋았습니다. 불꽃 튀기듯 내리찍은 점도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봐준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베티는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독창적인 점을 찍게 되기까지 작은 점, 커다란 점, 색깔 점, 색깔이 없는 점... 이렇듯 다양한 점을 찍어본 베티의 노력이 더해져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선 따라 걷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의든 타의든 정해진 길을 따라가야만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어요. 그저 하염없이 선만을 따라가는 아이에게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제발 선 밖으로 걸어봤으면 하고 응원을 하게 됩니다. 악몽을 꾸던 아이는 우연한 계기로 선 밖의 세상을 접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 그림책이 말을 건네어요. "선 밖에 괴물 따윈 없어. 선 밖으로 벗어난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냐. 그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거지." 그 모습을 보며 선을 따라가지 않는 멋진 인생을 꿈꿔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망설였던 베티와, 선만 따라 걷는 아이를 보며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시작을 망설이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 말이죠. 오늘 이후부터는 그러지 말기로 해요. 시작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하지 못한 채 묵혀두었던 것들이 있나요? 그렇다면 일 년을 기준으로 시작 점을 찍어보고, 시작할 타이밍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나만의 시작 별자리를 그려보도록 해요.
시작을 망설이는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면
완벽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시작은 없어요.
우리의 시작은 항상 초라한 것이죠.
꾸준함과 노력, 피땀 눈물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초라함 딱지가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시작을 꿈꾸지 말기로 해요.
시작은 시작답게 그냥 한 번 질러보는 맛!
깃털처럼 가벼운 그 마음으로 가보는 거예요.
'완벽해야 한다'를 목표로 삼지 말아요.
우리는 결코 완벽주의자가 되어서도 안되고
완벽해지지도 않습니다.
내 안에 들어있는 에너지가 더 줄어들기 전에
흰 도화지에 작은 점이라도 서둘러 찍어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