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도 성공의 한 조각

[산책 아홉 걸음] 아름다운 실수, 작은 조각

by 김글향

아이가 수학 숙제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2~3분이 지나도록 연필은 도통 움직이지 않았어요. 보다 못한 저는 "잘 안 풀려?"라고 물어보았고, 아이는 의외의 대답을 했죠."아니, 잘 풀리는데!" 잠시 후 정말 답을 삭삭 적었습니다. 수학 문제를 푸는데, 손은 움직이지 않고 머리로 계산을 해서 푼다고?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다소 독특했던 저만의 공부 방식, 그것으로 인한 실수가 생각났어요. 여러분의 공부 스타일은 어땠나요? 평소에 차근차근 공부해서 실력을 쌓아 올리는 유형인가요? 아니면 쭉 놀다가 시험기간 일주일 정도에 벼락치기를 했던 유형인가요? 저는 후자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특수한 벼락치기 유형으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시험기간이 되면 머리보다 팔을 많이 쓰는 학생이었어요. 느낌이 오시죠? 노트에 요약정리하는 것에 목숨 걸었던 사람입니다. 공부하는 루틴도 매우 정확했는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무조건 잠을 자야 했어요. 머리만 땅에 닿으면 바로 잘 수 있는 잠 장인이어서 가능한 스케줄이었습니다. 벼락치기는 단시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것이므로, 무조건 맑은 정신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 그렇게 2시간 정도 꿀잠을 자고, 7시가 되면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하는데, 교과서를 펼치고, 시험 범위의 페이지를 읽어보며 중요한 내용을 밑줄 긋습니다. 밑줄 긋기가 끝나면, 그 내용을 노트에 필기하며 정리 들어가요. 이때부터는 머리가 공부한다기보다 팔이 공부합니다. 밑줄 그어놓은 것을 팔이 공책에 열심히 옮겨 적어요. 여기서 끝나지 않고, 1차로 옮겨 적은 노트를 보며 2차로 재 정리 및 요약, 2차에서 3차로, 3차에서는 핵심 키워드를 뽑으며 내용을 점점 줄여놓아요. 마지막에는 키워드만 보면 내용이 떠오를 수 있도록 정리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팔이 엄청 고생을 하는 것이죠. 시험공부를 할 때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야 하는데 저는 팔이 욱신욱신합니다. 참 이상한 방법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여기까진 뭐 각자의 스타일이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죠. 그런데, 이런 제 공부 방법에 한계점을 느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시험기간이었고, 중3이었던 저는 여전히 이상한 루틴을 따라 벼락치기 공부를 했어요. 핵심 키워드를 뽑아놓은 노트가 완성된 시간은 자정 무렵. 뿌듯함을 만끽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든든하게 밥을 먹고, 학교에 도착하여 시험 치기 전 요약 노트를 펼치려는데.... 아뿔싸 시험기간에는 신줏단지보다 더 귀했던 그 노트를 집에 두고 온 것이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죽 쒀서 개주게 생긴 꼴. 학교에서 1시간가량의 시간 동안 정리한 노트를 머리에 쏙쏙 집어넣으면 시험이 술술 잘 풀렸었는데, 그 피 같은 시간을 우왕좌왕 방황하며 어쩔 줄을 몰랐죠. 교과서를 펼쳐본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결국 소중한 아침 시간을 통으로 날려버렸고, 그날 시험은 대차게 말아먹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정리하는 과정에서 머리에 들어갔을 터인데, 무슨 아기들의 애착 인형도 아니고, 애착 노트를 두고 왔던 심리적 문제로 인해 시험을 망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의 실수로 인해, 저는 노트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뒤로도 필기는 계속되었지만, 팔만 무리하지 않고 머리도 동참시키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나요? 그 옛날 실수의 진화 버전으로 지금은 감명 깊은 책을 읽을 때 밑줄을 막 긋고, 그어놓은 것을 노트에 옮기며 꼭꼭 음미하는 독서 루틴이 생겼어요. 이 루틴 때문에 제 마음에 들어오는 책이 나타나면 그 책은 성한 곳이 없었고, 더불어 팔이 참 고생한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머리와 가슴도 함께 동참한다는 것! 이렇게 실수를 통해 성장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캔버스에 찍은 작은 얼룩 한 점이 위대한 생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이야기 <아름다운 실수>, 자신은 누군가의 작은 조각일 거라고 생각한 네모! 작은 네모가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작은 조각> 이 두 권의 그림책을 보며 실수와 성장 혹은 성공에 대한 마음을 살펴보도록 해요.



그림책 산책 <아름다운 실수>

얼룩 한 점의 실수가 영감으로 피어나는 예술


[코리나 루이켄 지음ㅣ김세실 옮김ㅣ나는별]

작은 얼룩 한점...
자그만 실수로 남을 수도 있고
커다란 생각의 시작이 될 수도 있지요.
자, 여러분의 상상을 한껏 펼쳐 보세요.

어떻게 하면 실수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제목도 그림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도서관에서 바삐 움직였던 제 발걸음을 꽁꽁 묶여버렸습니다. 재미있는 시작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다가 "앗, 실수!" 그만 짝눈을 그려버렸죠. 이번에는 다른 쪽 눈을 더 크게 그리는 실수를 했어요. 그러다가 동그란 안경을 씌워주며 만족하기도 잠시, 실수는 계속되었습니다. 팔꿈치는 너무 뾰족하게, 목은 너무 길게 그렸는데, 긴 목과 뾰족 팔꿈치에 각각 장식을 그려주며 수습했어요. 스스로 괜찮다고 만족하면서요. 실제로도 독특해 보이고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끊이지 않는 실수들이 계속 펼쳐져요. 잘못 찍은 점 하나, 잘 못 튀긴 수채 물감 자국, 실수로 인한 모든 얼룩들은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정말 다채롭고 창의력 가득한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읽는 이에게 잔잔한 재미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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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실수를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이디어와 영감이 되어 독창적인 그림이 만들어졌어요. 특히 커다란 나무에서 펼쳐지는 진귀한 풍경들. 그 풍경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이런저런 실수투성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실수들로 인해 아이의 세상은 거대한 성장을 이루었어요. 그림을 구경하다가 이해가 안 돼서 다시 돌아와 확인해야 할 만큼, 머리 위로 펼쳐진 예술적 세계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실수가 그림 속 아이를 어떻게 성장시켜 놓았는지 아마도 두 눈을 크게 뜨고 보셔야 할 거예요. 실수는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작은 조각>

나를 이루는 조각 찾기


[레오 리오니 지음ㅣ이미림 옮김ㅣ분도출판사]

자기는 누군가의 한 작은 조각일 거라고 생각한 그는 자기가 과연 누구의 조각일까 알아내기로 마음먹고 길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긴 여행에서 돌아와 기뻐하며 외친다.
"나는 나란 말이야!"

블록을 끼워 완성한 듯한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그 존재들 중에 네모난 작은 조각이 있었죠. 조각의 이름은 '하나'였어요. 다른 친구들은 모두 몸이 컸고, 힘이 세거나 헤엄을 잘 치거나, 하늘을 나는 등 저마다 잘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작을 뿐이었죠. 그래서 자기는 분명 누군가의 한 작은 조각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는 자신이 누구의 작은 조각인지 알기 위해 길을 떠났어요. 멋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너의 작은 조각이니?"라고 물어보지만, 모두들 아니라고 말해요. 오히려 조각이 하나 빠졌다면 지금의 멋진 모습이 아니지 않겠냐고 되묻기까지 하죠. 어느 날 슬기로운 친구로부터 '쾅'이라는 섬에 가 보면 존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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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힘든 여정 끝에 드디어 섬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죠. 섬에는 조약돌 더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는 포기하지 않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 올라가고를 반복했어요. 그러다가 기진맥진해서 발을 헛디뎌 굴려 떨어집니다. 하나는 그만 산산조각이 났어요. 그런데 그때 알게 되었어요! 온몸이 깨어지고 보니, 자신도 다른 친구들처럼 자기 나름의 작은 조각들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비록 작은 조각들이었지만 나는 나였어요. 나도 여러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고, 그것이 크던 작던, 마음에 들던 마음에 들지 않던, 모두 나의 것이랍니다. 그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 쓰기

반짝이는 나의 조각을 찾아요


연이은 실수들, 작은 얼룩 한 점이 불러온 기적과도 같은 예술을 접하며 실수에서도 아름다운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를 이루는 조각을 찾는 힘든 여정 끝에 알게 된 사실은,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 전체의 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여러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아예 있는 줄도 몰랐던 것도 있을 거예요. 존재하는 것들 중에는 어쩌면 얼룩진 실수처럼 내 것이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싶은 것도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실수도 실패도 모두 다 내 것인걸요. 그러나 그 아픈 조각들이 내일의 나를 더욱 빛나게 해 줄 도전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수도 성공의 한 조각인 것이죠. 오늘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조각들을 기록해보며 지금의 나를 살펴보고, 이 조각들로 더욱 반짝이는 내일의 나를 꿈꿔보도록 해요.

20211009_182157.png < 산책 아홉 걸음_마음 쓰기_반짝이는 나의 조각을 찾아요 >


실수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실수가 아닌 것들

실수를 실수라고 붙이는 꼬리표 때문에

성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사람에게 나쁘게만 기억되었던 실수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게도 기억될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나의 성공은 여러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고

실수도 성공의 아름다운 조각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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