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여섯 걸음] 단어수집가, 나는 시를 써
2019년 12월 어느 날. 저는 겁도 없이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당대 최고 글 꾼들만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엄청난 대회! 이름하여 '신춘문예'라는 곳에 겁도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들을 여섯 편의 시에 담아냈고, 우체국을 통해 공모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고 너무 호기로웠던 그 마음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는 건 똑딱 떨어졌다는 뜻이겠죠.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갑작스럽게 발동이 걸려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던 용기였으니까요. 하지만 후회도, 미련도, 아쉬움도, 좌절도... 그 어떤 감정도 없었습니다. 당선될 거란 기대도 없었고, 그런 결과를 꿈꾸었던 적도 없었어요. 단지, 가슴속에 가득 차 있던 답답함. 그 응어리진 말들을 마음속에서 꺼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꺼내고서야 알게 되었어요. 그 마음을 글로 담아내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글을 쓰면 마음이 치유된다는 것이 이런 걸 뜻하는 거였구나.' 어쩌면 그 경험이 제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그중 하나를 이곳에 띄워봅니다.
날 것의 글쓰기를 경험하고부터 저는 바빠졌어요.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담아내기 위해, 일상의 크고 작은 경험을 열심히 주워야 했거든요. 내가 주인공인 각본이 필요 없는 일상 이야기들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주워 담고, 그 조작 조각들이 가득 쌓이면 글로 풀어냈어요. 그건 사실 이야기라기보다 지금의 나였고, 나를 알아가는 핵심 단서가 되기도 했어요. 이러한 것들이 비단 일상 경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죠. 책 속에서도 툭 튀어나왔고, 예술 작품을 접하다가도, 누군가와의 대화 또는 강의에서도 툭 튀어나왔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시도 때도 없이 튀어 오르는 생각들을 열심히 주워 담기 바빴어요. 그렇게 담아둔 생각들은 글감이 되었고, 글감을 모아 글을 쓰는 행위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흘러간 시간을 글로 옮기는 작업, 일상 수집가로서의 경험들은 성과 유무를 떠나서 저에게 엄청난 희열을 안겨주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기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림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주위에 맴도는 수많은 단어를 수집하는 아이의 특별한 세상 <단어수집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시적 순간이 기록된 이야기 <나는 시를 써> 이 두 권의 그림책을 감상하며 글로 빚는 마법을 함께 경험해볼까요?
[피터 레이놀즈 글, 그림ㅣ김경연 옮김ㅣ문학동네]
이어지고, 바뀌고, 새로운 힘이 생긴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단어의 마법
제롬은 '단어'를 모아. 단어수집가지.
어떤 단어들을 모으는 걸까?
모은 단어로 무엇을 할까?
왜 모을까?
제롬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빛나는 비밀이 들어 있어.
제롬은 세상 많은 것 중에서도 낱말을 모으는 단어수집가였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왠지 관심이 가는 단어, 지나가다가 눈길을 끄는 단어, 책을 읽다가 문장 속 단어, 기분이 좋아지는 말, 소중한 단어를 수집하는 것이죠. 무슨 뜻인지 통 모를 낱말들도 있지만 근사하게 들리는 낱말도 있고,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단어도 있었습니다. 제롬은 수집한 단어가 점점 많아지자 주제별로 차곡차곡 낱말책에 정리했어요. 그 작업을 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제롬에게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위태롭게 쌓인 낱말책을 옮기려다가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애써 분류한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버리고 말았죠. 코뿔소 옆에 밀라노, 파랑 옆에 초콜릿, 슬픔 옆에 꿈. 나란히 있으리라 상상도 안 해 본 단어들이 짝을 지었고, 그것을 본 제롬은 깨달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의 조합으로 새롭게 탄생되는 작업!
제롬은 그 단어들로 시를 썼어요. 그 시로 노래를 만들었고 모두가 감동했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어느 날, 제롬은 모은 낱말들을 모두 수레에 싣고 가장 높은 산으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아주 멋진 장면이 펼쳐지죠. 그 순간 제롬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세상에 없을 거예요. 나만의 단어를 찾아서 네가 누구인지 세상에 외치는 것. 이런 예술적 삶의 태도에서 '나'라는 꽃이 활짝 피어나지 않을까요?
[질 티보 글ㅣ마농 고티에 그림ㅣ이경헤 옮김ㅣ한울림 어린이]
나는 시를 써
시를 쓴다는 건
빛의 노트의
가장자리에
슬그머니
침묵을 모으고,
부드럽게
잠을 모으는 거야.
시를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를 떠올리며 책을 넘겨보았습니다. 개성 넘치는 아이들이 저마다 "난 시를 사랑해"라고 말했어요. 시는 책 속에서 살지만 별들 속에도 살고, 달과 나무들 속에도 살고 있어요. 시는 삶을 닮았다고 말하죠. 또한 시는 이런 거라고 해요. 해님한테 공 던지기, 무지개에 물고기 매달기, 여름의 팔에 안겨 자전거로 한 바퀴 돌기, 무당벌레를 잡아 춤추게 하기, 조그만 물 잔으로 큰 바다 마시기, 하늘을 뜯어내 높이 날려 보내기... 아이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말들로, 시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태양에 대해 쓰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달에 대해 쓰면 밤을 환히 비춰 줍니다. 단어들 사이를 살금살금 걸어 다니기도 하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에게 다가가기도 하지요.
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도 하고, 땅에서 쑥 솟아오르기도 하며, 때론 바다 위를 떠돌기도 해요. 이렇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시를 모아 심장 위에 얹어 놓지요. 시는 빗속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며, 행복의 나라로 날아가는 새가 되기도 합니다. 이 그림책은 시란 무엇인지, 시와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아이들의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시를 쓰고 읽는 즐거움을 아시나요? 이 책을 보면 지금 당장 시가 쓰고 싶어질 거예요. 누구나 가슴속에 시 하나쯤은 품고 있을 테니까요. 시를 쓰고 읽는 즐거움을 함께 경험해볼까요?
일상에서 끌리는 단어를 수집하는 재롬, 시 쓰는 마음을 노래하는 아이들을 보며, 저 또한 나만의 단어를 찾아서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에는 골치 아픈 일도 많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 있는 말들도 참 많이 숨어있답니다. 오늘 하루! 등잔 밑에 숨어있는 보물들을 쏙쏙 찾아내며 당신의 마음에 시를 처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단, 주의사항이 있어요. 생각은 찰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어서, 떠오르는 순간 빛보다 빠르게 주워야 한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 속 저편으로 까마득히 사라져 버리고 말 거예요.
시선이 딱 꽂히는 책 속의 한 문장
왠지 마음이 머무는 작품 속 그림
동공 지진을 유발하는 이야기들
우리는 일상에서 수도 없이
시선과 마음을 세트로 빼앗기는 사건들을 겪고 있습니다.
그 사건들은 찰나의 순간에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죠.
방심하는 순간 몽땅 사라져 버리고 말아요.
그럴 땐 내 안에 내재된 탐구 에너지를 발동시켜서
재빨리 낚아채야 합니다.
도구와 관계없이 어디든 기록하는 것이죠.
그렇게 빛보다 빠른 속도로 생각을 줍고
주운 생각들을 기록하다 보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평범한 삶은 더위에 에어컨을 찾고, 추위에 난로를 찾으며 일상을 흘려보냅니다.
수집가의 삶은 더위엔 땀을 쓰고, 추위엔 한기를 쓰며 일상을 저장합니다.
때로는 평범한 삶의 태도가 아닌
수집가적 삶의 태도로 인생을 바라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