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극복기
며칠 사이 의도치 않게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입맛이 뚝 떨어졌고, 생활 전반에 걸친 의욕을 상실했던 터라 바깥일, 집안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이 피폐해진 동안 몸은 대견하게도 스스로 다이어트를 한 모양이다. 한결 가벼워진 몸무게를 저울에 달아보고선, 다이어트의 특효약은 역시 마음고생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며 피식 웃어본다. 일주일 동안 코 앞에 닥친 과제들과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소모임에만 겨우 몰두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스트레스의 근원은 이곳에 기록하지 못하겠다. 나 조차도 분명하게 정의 내리기가 힘든, 관계에 대한 문제인데, 한 동안 정신적인 사투 끝에 알게 된 것은 그 누구의 잘 못이 아니며 그 누구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만 정확하게 알 것 같다. 그저 내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도 툭 까놓고 털어 버리지 못한 것을 그나마 약식의 글로라도 쓸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친정으로 향했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자 하는 마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 마음으로 친정에 갔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불안했는지, 노트북과 일할 거리들을 잔뜩 싸들고서 도착하자마자 일거리들을 늘어놓으며, 엄마에게는 언제나 그랬듯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냥 딸이 좀 피곤한가 보다 정도만 알 수 있게 적당히 밝은 모습도 보여주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편해 보이려 애쓰다 보니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애쓴 보람도 없이 엄마는 단번에 알아본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또 시침 뚝 떼고 아무 일도 없다고, 그냥 일이 좀 많아서 피곤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엄마는 믿지 않는 눈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나처럼 시침 뚝 떼고 넘긴 척한다. 그 이후부터 우린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다가, 티브이를 봤다가, 좀 누워서 잤다가하며 정신적 휴식을 취했고, 엄마는 이것저것 분주하게 지지고 볶으며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어 팔이 빠질 것 같은 엄마의 사랑을 잔뜩 들고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짐을 풀어 보니 친정이라는 이름의 마트를 털고 온 것 같다. 한 동안 장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푸짐한 사랑이 가득하다. 그렇게 팔이 빠질 것 같은 사랑을 가지런히 정돈해서 사진을 찍어보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거운데 잘 들고 올라갔는지 확인 후, 시래기는 먹을 만큼 나눠서 냉동실에 넣어야 한다는 말을 깜박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건만, 엄마 눈에는 아직도 내가 어리게만 느껴지나 보다 싶다. 그 관심 어린 애정이 싫지 않았다.
엄마는 딸의 얼굴만 봐도 단번에 알아본다. 며칠 사이 살이 쏙 빠진듯한 모습에 마음이 쓰인 모양이다. 신기하게도 우린 서로에게 그 어떤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 엄마에게서 그 마음을 받으면 어느새 스트레스는 훨훨 날아간다. 팔이 빠질 것만 같은 엄마의 사랑을 잔뜩 싸들고 오면서 묵직했던 스트레스를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