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나를 변화시키고 싶을 때

오늘이 가장 좋은 날

by 김글향


잠시 미뤄둔 것들


몹시 피곤한 날이었다. 남편이 잠시 밤 산책하러 나가자는 말에 “아니, 오늘 말고 내일”이라는 대답이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전날까지 업무로 인한 어려운 일을 마쳤으니 한편으론 여유롭게 걷고 싶었으나, 그것보다 침대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달에는 유난히 몰아쳤던 업무와 지역을 넘나드는 출장으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었기에,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늘어져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할 수 없는 이유가 때때마다 있고, 그럭저럭 합리화하다 보면 스스로 설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는 하고 싶거나, 해야만 하는 일들조차도 습관적으로 미루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날도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각종 문서를 생성해내며, 의자와 한 몸을 이루는 날들이 지속되는 삶. 그로 인해 요로결석이라는 질환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자 최소한의 운동으로 밤마다 산책하는 정도를 결심했다. 그러나 건강관리를 위해 비범하게 선포했던 밤 산책은,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 만에 흐지부지되었다. 산책을 포기하고 잠시 뒹굴뒹굴하다가 핸드폰을 열어 나에게 톡을 보낸다. 머릿속을 빙빙 맴도는 생각들을 붙잡고 싶을 때면 서둘러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말고 나중에, 다음에, 시간 되면, 언젠가는…. 이런 말들을 꽤 많이, 자주 뱉고 있네. 나는 왜 이렇게 미루고 싶은 걸까? 산책 말고 또 이렇게 미뤄둔 것들은 무엇일까? 글을 써야 하는데 시간은 왜 이렇게 부족한 걸까. 정작 중요한 것을 미뤄두고 흘러가는 인생,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은 걸까?’ 글감이 될 생각들을 두서없이 쭉 나열하다 보니 이내 피곤해졌다. 아무래도 지금은 아닌가 보다 체념하며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런데 때마침,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가치 있는 인생에 대하여


EBS 인문학 특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102세의 나이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백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백 년 넘게 살며 터득한 깨달음, 100세를 살아보니 인생은 이런 것이더라는 그의 말에, 늘어져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요란해졌다. 그가 말하기를 “인생은 1가지를 주고 99가지를 받는 삶”이라고 한다. 내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내가 아닌 남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타인의 땀과 노력! 그런 것에 대해 나는 무엇을 보답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백세를 살아보니,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남는 것 하나 없이 모두 다 흩어져 버렸고 소유하려 하면 할수록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다. 즉,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답하고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더 많이 주는 것이 내 인생을 완성하는 길이며, 진짜 성공한 삶이란, 어떤 가치를 나누며 살아가는가에 달렸다는 말이 아직도 진한 울림으로 내 마음속 깊이 머물러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가치를 나누며 살아가야 할까?' 내 안에서 떠오른 생각들. 이제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고민.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첫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실천은 언제나 바로 지금


고민과 함께 행동하는 것 또한 더는 미루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인생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 어떠한 핑계로도 덮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행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목표를 향한 발걸음이 위풍당당하다고 해도, 지금 당장 실천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기만 하다. 다비드 칼리는 <<인생은 지금>>이라는 그림책에서 은퇴한 남자의 목소리를 빌려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늘어놓는다. 버킷 리스트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여행, 누구나 한 번쯤은 계획했던 외국어 공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악기 배우기, 그리고 낭만이 가득한 밤낚시, 심장이 두근거리는 순간까지 달려보기, 강물에 뛰어들기, 사랑한다고 힘껏 외치기….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남자가 그동안 못 했던 것들을 함께 살아온 부인과 이뤄보려는 노력이 꽤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함께 지낸 여자는 그 마음을 몰라주며 어째 시큰둥한 반응이다. “뭐 하러?” “대체 왜?” “지금은 말고.” “내일” 그런 여자에게 남자가 말한다.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오늘이야!”


쌓인 설거지, 어질러진 집 안, 나만 바라보는 개, 인생이 여기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작가의 글이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본다. 오랫동안 묵묵히 일만 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미뤄둔 채 살아온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지금 이 순간을 외치는 말들에는 강력한 힘이 실려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유예하며 지금을 임시방편으로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외친다.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내 인생은 이미 여기 있는걸. 인생은 지금이라니까.”


지금 말고 나중에. 시간 여유 있을 때 그때 하자라고 이야기하며 살았을 것 같은 남자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은퇴를 맞이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꺼내 보는 남자. 하지만 다시 또 내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인생은 오늘이라고 꼭 안아주며 말한다. 이 그림책을 읽고 나면 나의 오늘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좋은 오늘, 선선한 밤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러 나가지 못한 건 아쉽고 또 아쉽다. 인생은 지금,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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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책 정보 <소년의 마음>
✍️ 다비드 칼리 글. 세실리아 페리 그림 / 오후의 소묘
매일 무언가를 유예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 일만 하느라 모든 걸 미뤄온 남자, 어떤 종류의 모험도 추구하지 않는 여자. 어긋나기만 하는 두 사람은 오늘 함께할 수 있을까?

✅ 함께 보면 좋은 그림책 <...라고 말했다>
✍️ 이혜정 글. 그림 / 길벗어린이
그저 가만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듯 보이는 고치 속에서도 나비는 날개를 펴기 위해 자라고 있고, 애벌레가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균형을 잡는 것처럼 동물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삶의 흐름대로, 자신의 방식과 속도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가슴속으로 다가오는 동물들의 삶의 태도는 깊은 울림과 잔잔한 감동을 주는 동시에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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