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년의 마음 ]
그림책 마음 챙김에서 제일 처음 소개할 책을 선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어떤 걸 먼저 꺼내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결정이 어려울 때는 단순해져야 한다고 들었다. 나를 가장 강렬하게 위로해주었던 그림책. 내 마음속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었던... 아이는 웃었고 나는 울었던 그림책. '소년의 마음'을 소개한다.
{첫 번째,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
누구나 꼬마였던 시절이 있었다. 꼬마 아이였던 우리들은 각자 다른 세상을 살아오며 어른이 되었고, 꼬마의 세상은 우리들의 무의식에 저장되어있다. 아이들은 늘 해맑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착각,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만 있을 거라는 포장을 풀어헤치고 꼬마에게 존재하는 어둠을 들여다본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재미있고 귀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어둡고 쓸쓸했던 소년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그림책을 통해 내 안에 존재하는 꼬마 아이도 만나본다. 무의식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꼬마의 마음을 조심스레 열어보고 살짝 들여다본다. 어떤 장면이 펼쳐지는가?
{두 번째,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소년의 마음을 열어서 들어가 보니 마루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조그마한 상을 앞에두고 있고 상 위에는 종이와 색연필, 지우개가 올려져 있다. 그리고 벽으로 두 개의 문이 있다.
첫 번째 누나들의 문이 열리고 누나 2명은 인형을 들고 나와 인형에게 옷을 입혀준다. 그리고 소년에게 '토토'라는 남자 인형을 건네며 "넌 토토를 맡아"라고 말한다. 소년은 토토를 들고, 로봇처럼 척척! 하늘을 나는 시늉을 해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누나들은 소년의 놀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레이저를 잔뜩 발사하는 소년에게 누나들이 말한다. "토토는 미미 남자 친구야.", "토토는 미미와 데이트를 해야 돼." 그래도 계속 레이저를 발사하며 하늘을 날고 있는 토토. 누나들이 휙! 가져가 버린다. 그리고 누나들의 문이 쾅! 닫힌다. 누나들의 문이 닫히면 소년은 그림을 그린다.
소를 아주 많이 그린다. 소들이 소년에게 다가오고, 소년의 그림 속 모델이 되어 멋진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연필을 가져가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 쾅쾅! 쿵쿵! 두드리지 말아야 할 문을 두드린다. 소년이 외친다. "안 돼! 거긴 열지 마!", 하지만 문이 열리고, 소들은 급히 자리를 뜬다. 소년은 "가지 마. 무섭지 않아. 가지 마. 가지 마." 애원하지만 소들은 서둘러 창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소들은 사라져버리고 두 번째 문이 열리며 엄마, 아빠가 나온다. 서로 손가락질을 하고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모습. 아빠는 전화기를 들어 던져버리고 전화기에서 숫자들이 튕겨져 나온다. 엄마는 후드득 눈물을 떨어뜨리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소년과 머쓱한 아빠가 마주한다. 나는 죽음이 무서워요.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더 그래요. 소년은 깜깜한 땅속에 있는 죽음을 자유롭게 상상한다. 죽음이 무서우면 말(동물) 그림을 그렸고 밥 먹을 시간이 되어 말들이 떠난다.
아빠와 싸우면 엄마는 카레를 만든다. 엄마의 카레에는 미움이 들어가서 맛이 없다. 가족들은 미움이 들어간 카레를 말없이 먹는다. 밥을 다 먹자마자 엄마가 청소를 하고 누나들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간다. 청소를 하는 엄마에게 소년이 울면서 말한다. "엄.. 마, 어차피 다 죽는데... 나를 왜 낳았어?" 엄마는 뭐? 뭐? 뭐? 뭐? 당황하며 화를 낸다.
방이 없는 소년은 방에서 쫓겨난 아빠와 나란히 누웠다. 밤은 슬금슬금 다가오고, 까만 것들이 가득 차서 밤을 만든다. 밤이 무서우면 새를 그린다. 새를 그려도 밤은 사라지지 않고, 밤은 죽음과 닮았다.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했다. 소년은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서 천진난만하게 물어본다. "할머니. 할머니 다음은 뭐야?" "엄마 다음은 할머니잖아. 할머니 다음은 뭐야?" 그러자 할머니가 손가락을 머리 위에 뿔처럼 만들며 "하늘로 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할머니는 하늘로 뿅! 하지 않고, 땅속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를 산에 심었단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다가 죽음이 두려워 새를 잔뜩 그리고, 새를 아무리 그려도 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면 물고기를 그린다. 물고기를 그렸더니 방에 물이 차올라 바다가 생기고, 소년은 책상을 뒤집어 배를 타고 떠난다. 아빠는 괜찮을 거라며 토토와 함께 바다로 떠난다.
토토와 덩그러니 바다를 구경하다가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띠리리리리~ 소년은 전화기를 들어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말해주세요"물어보자, 소년은 "음... 할.... 머.... 니?"라고 말한다. "할머니를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바다 끝에서 할머니가 수영을 하며 다가온다.
소년은 드디어 그리운 할머니와 만나고, 그동안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잔뜩 쏟아낸다.
"할머니, 할머니, 나 소 그렸어." / "아이고, 잘 그렸네."
"할머니, 말이랑 새도 그렸어." / "아이고, 말을 말처럼 새를 새처럼 잘 그렸네."
"할머니, 여기 물고기도 봐 봐." / "아이고, 내 새끼 이뻐라."
말을 말처럼, 새를 새처럼 잘 그렸다는 할머니의 말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할머니, 난 할머니가 죽은 줄 알았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거 봤는데, 아니었구나~" / 할머니는 죽었지."
"응? 여기 있잖아. 살아 있잖아..."
엉엉엉 엉엉엉 엉엉엉
아... 너무 슬프다. 개인적인 생각을 넣지 말아야지. 읽는 분들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내용만 옮겨야지 하는데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 작은 소년의 눈망울에 떨어지는 눈물은 비가 되어 내리고 내 마음도 너무 아프다. 소년의 무너지는 마음을 할머니가 어루만져준다.
"나는 네 눈썹 사이에 있어. 내가 제일 귀여워했던 콧구멍 속에 있고, 매일매일 쓰다듬던 네 머리카락에 있고, 간질간질 간지럽히던 겨드랑이 사이에 있고, 뽀뽀 쪽 하던 네 두 볼에 있어."
"네가 매일매일 할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매일매일 네 옆에 있어."
명대사가 나왔다. 매일매일 생각하면 매일매일 옆에 있다는 이 말에 쓰린 상처가 치유된다. 상처에 밴드가 붙는다. 그렇게 비가 그치며 소년의 마음도 진정되고, 물은 모래가 되어 모래 위를 소, 말, 새 등 소년의 그림 속 동물들과 함께,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
"할머니 어디 있는지 알지?" / "응... 내 눈썹 사이에, 내 콧구멍 속에..."
소년은 눈물이 찔금 났지만 할머니와 웃으며 인사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방문을 살짝 닫아주고, 코 고는 아빠의 코를 꽉 집으며 나란히 누웠다가 돌연 베개를 받치고 올라서서 창문 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귀여운 얼굴로 우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세 번째, 마음 살피기}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올리려 했는데, 길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림책을 몽땅 다 올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많이 생략한 것이다. 귀엽고, 재미있고, 어둡고, 외롭고, 슬프고, 두려웠던 어린 소년의 마음이 느껴지는가? 소년의 마음을 열어본 여운을 간직하며 내 마음도 조심스럽게 열어보자.
어린 시절 내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지 아래의 질문에 답해보자.
나에게 묻는다
- 그 시절 나의 어린 꼬마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 띠리리리리~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연결해준다면 누구를 말할 것인가? 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 나의 꼬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네 번째, 마음 챙기기}
이 그림책의 작가는 '소복이'이고, 소복이는 소년의 누나이다.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동생으로부터 누나들에게서 받았던 소외감, 부모님의 싸움과 할머니의 죽음으로 느껴졌던 공포, 상실감 등의 이야기를 듣고 그때 동생의 마음을 그림과 함께 한 권의 책 속에 담아냈다. 어린 동생이 느꼈던 마음처럼 외로운 어른들, 또 그런 아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라고 한다.
외롭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 때 소년은 그림을 그렸고, 그림은 텅 비어 있던 소년의 주변을 동물 친구들로 가득 채워주고, 깜깜한 밤을 시원한 바다로 만들어준다. 바다에서 소년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는 소년에게 말한다. "네가 매일매일 할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매일매일 네 옆에 있어."
이 그림책을 보며 또 아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의 나는 아빠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는다. 금기어처럼 꾹꾹 다물고 있으며, 실수로라도 마음속에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법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만 쓰면 솔직해진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진심이 자연스럽게 물 스며들듯 번져 나온다.
오늘도 아빠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온다.
소년의 마음을 읽으며, 소년이 그리운 할머니를 만나고, 할머니에게서 따스한 정을 느꼈던 장면에서 나도 그리운 아빠를 떠올렸다. 나에게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말해보라면 1초도 고민 없이 아빠를 말할 것이다. 소년에게 할머니를 연결해준 것처럼 나에게 아빠를 연결해준다면,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또 헤어지더라도 눈물은 찔끔 나오겠지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다.
나의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었던 강력한 한 줄의 문장 때문에 조금은 괜찮아진 것 같다.
"네가 매일매일 (그리운 이)를 생각하면,
(그리운 이는) 매일매일 네 옆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