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었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
들었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
중학교 때 전국적 유행이었던 MP3 플레이어는 많아봐야 열 몇 곡을 담을 수 있을 뿐이었다. 512Mb였나. 저장용량이. 그래서 우리들은 매일 밤 다음날 숙제를 하는 대신 쉬는 시간에 들을 노래를 선곡했다.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는 음악 중 내일 듣고 싶은 곡을 골라내는 작업을 매일 매일 했다. 버디버디에서 친구와 쪽지를 주고받으며. 내일 점심먹고 무슨 노래를 들을지 이야기했었다. 어지럽게 표시된 음악 파일명을 나만의 형식으로 정리하며. 그때는 하루 하루가 좋은 노래를 찾아 헤매는 경쟁의 시간이었다. '이 노래 들어봐. 정말 좋지?' 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를 한곡쯤 담아가야 소위 잘나가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아이는 일본 음악에 심취해있었다. 그때 그 친구를 통해 do as infinity나 the brilliant green, 시이나 링고 같은 뮤지션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촌스러워서 가사가 들리지 않는 음악은 잘 듣지 못한다. 그래서 팝이나 J-pop을 듣는 아이들은 내게 더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 어려운 영어와 일본어 가사를 일일이 해석하며 듣는단 말이야 하며.
생일날에는 꼭 공CD에 생일자 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들을 정리해서 구워줬었더랬다. 트랙리스트를 만드는 과정을 나대로 참 즐겼던 거 같다. 그 시절에 나는 롤러코스터를 참 좋아했다. 조원선의 목소리가 내 귀엔 너무나 매혹적이었고, 가사들도 하나같이 내 맘에 들었다. 인상적이지만 편안한 멜로디들. 과하지 않은 사운드. 그렇게 한 곡씩 몰래 롤러코스터의 노래들을 심어놓고 나서는, 친구들이 그 트랙을 이야기해주기를. 그 노래 정말 좋았다며 말해주길 남몰래 기다렸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음악은 내가 낄 필드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클래식부터 모던 락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시대적 특색, 디테일한 한 줄의 가사들을 이야기했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밴드활동을 한 친구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직접 작곡 작사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악기 하나쯤은 다들 다루기에 명함을 내밀 판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한 발짝씩 멀어졌던 것 같다. 이후에는 음악을 '함께' 듣는 일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지인들의 음악취향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뭔가 주눅이 들어 음악을 소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혼자 조용히 음악을 듣게 되었고, 좋은 음악을 찾아도 들려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굳이 열심히 새로운 노래를 더 찾아 듣지 않게 되었다. 내가 아는 음악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다 남미 여행을 갔다. 스물 네 살에 떠났던 남미에서는, 와이파이가 굉장히 귀했다. 한국어로 만든 모든 콘텐츠가 귀했다. 여행길에서 만난 언니 오빠 친구들은 '너 뭐 갖고 있어?'를 묻기 바빴다. 간단한 대답 뒤에서 게스트 하우스 로비에 앉아 서로의 하드를 털기 시작했다. 여행길에서는 영화, 음악, 사진을 공유하는 일이 매우 익숙했다. 느려터진 외장하드를 끼고 몇시간씩 서로의 음악파일들을 나눠가졌다. 서로의 플레이리스트가 비슷해지면서 저마다 노래에 담긴 사연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헤어지고 엄청 들었다.' '이 노래는 말이야. 마추픽추에 올라가면서 들었는데-' 하며. 여행지에서의 이국적인 풍경은 익히 알던 노래들을 낯설게 만들어주었다. 새삼 알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오랜만에 사람들과 음악 이야기를 했다. 우리에게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는 마추픽추송이 되었다. 에피톤프로젝트의 선인장은 내게 우중충하게 구름이 뒤덮인 바릴로체의 강가를 떠올리게 해준다.
다시 돌아온 한국은 스마트폰 천국이었고, 내가 듣는 음악은 점점 더 좁아졌다. 영화 드라마ost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내 귀에 들어오는 음악들 말고는 새로운 음악을 듣는 일이 점점 더 사라져갔다. 전체듣기 한번이면 음악이 쏟아져 나왔다. 일일이 곡명, 가수명을 칠 일도 앨범명을 다시 정리해야할 필요도 없었다. 편리해진 만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추억이 담긴 노래. 좋아하던 노래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온종일 한 곡 재생만 하는 날도 많아졌다.
듣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 살면서 그렇게 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순간 노력을 멈추게 되는 일. 해왔던 수준에서 만족하는 일. 딱히 슬프지 않다. 내가 듣는 음악들에 만족하고, 그로 인해 곱씹을 수 있는 추억들이 많다. 어느날 '이 노래 들어봤냐' 묻는 친구들이 나타날 거고, 그 때는 그 노래를 통해 그 사람을 추억할 준비를 하면 된다. 굳이 내가 찾지 않아도 선물처럼 음악들이 나를 찾아올 것을 안다. 그러다 또 어떤 날에는 카페에서 글을 쓰다 처음 듣는 음악을 좋다고 여기는 날이 오겠지. 그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노래 들어볼래?' 하고 물어보면 될 일이다.
세상 열정을 쏟던 일이 스스로의 평정심에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때에는 자연스럽게 잠시 멈춰서도 될 것 같다. 새 음악을 찾아듣지 않는다며 나를 다그치지 않는 것처럼.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그런 시간들도 필요하다.
오늘도 듣던 노래를 계속 듣는다. 롤러코스터의 일상다반사는 언제 들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