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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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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Sep 18. 2019

자취 반년 차

자취일기_07 

자취 반년차가 되었다. 한여름의 에어컨 전기세는 감당해보았지만, 아직 한겨울의 가스 난방비는 내어보지 못했다. 엄연히 방인데도 집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엄연히 내 것이 아님에도 내 집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이 자꾸 없어졌다. 어느 날은 문을 열었더니 현관문 옆에 놓여져 있었고 어느 날은 아예 사라졌다. 미스테리는 집주인 아저씨의 호소 문자를 읽고 나서 풀렸다. 수거통을 각 호수마다 건물 앞에 늘어놓으면, 대부분 1인가구인지라 빈 통이 있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면 빌라에 거주하지 않는 외부인이 검정비닐에 담은 자신들의 음식물 쓰레기를 몰래 담아놓고 간다고 했다. 검정비닐에 담긴 음식물 쓰레기는 환경미화원들이 수거해가지 않으며, 그럼 검정비닐에 담긴 어느 집의 썩어가는 음식물 쓰레기를 아저씨가 손수 치워야했다. 사정이 그렇다는 집주인 아저씨의 호소문자가 와서야 나는 내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의 향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집주인 아저씨가 치웠으리라. 모부의 집에 얹혀살 때는 알 수 없던 치열함이었다. 검정비닐에 담은 음식물 쓰레기를, 엄연히 남의 호수가 써져있는 수거통에 몰래 담아놓고 가는 노력은.       



우리집 창문을 마주한 옆 건물에 사는 아저씨는 깨끗한 편일 것 같았다.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그가 샤워를 하면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용변을 보아도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온 3월에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지 않았으니까. 날씨가 풀려도 창문을 마음껏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것은 자취 3개월 차가 지나갈 때였다. 적어도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샤워하는 소리. 양치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조금 안심했다. 옆 건물 원룸의 아저씨가 지하철 옆자리에 앉으면, 냄새가 나진 않을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화장실 생활을 알게 되다니.      



내가 사는 빌라 바깥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알게 되는 지점이 많았는데, 오히려 빌라 내부에 이웃들은 오리무중이었다. 지난 반년동안 옆집 윗집 아랫집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사람들은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는 아저씨나 청년들이었다. 이 건물에는 여자가 살지 않는 것인가. 남자들만 사는 건물에 나 혼자 여자일까 겁이 났지만, 나는 곧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들 나처럼 없는 듯 있을 것 같았다.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나처럼 온몸이 굳어 방에서 귀를 쫑긋하고 있을테니. 내가 이 건물에 사는 다른 여자 친구들을 만날 일은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혹은 이사를 나갈 때까지 없을 것 같았다. 


    

자취 반년차. 음식물 쓰레기를 집주인 아저씨네 수거통에 넣는 일에 죄책감이 사라졌고, 가끔 이제 좀 추워져서 창문을 굳이 열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에어컨을 켜기에는 춥고, 그렇다고 창문을 닫기에는 아직 더운 날씨니까. 그리고 다음에 살 방을 구할 때는 무엇을 봐야 하는지 글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또 반년이 지나가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려나. 생활의 구질함 속에서 어떤 소소한 기쁨들을 누려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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