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마도 희미하게 기억나는 게 네다섯 살 정도야. 강원도에서 태어나 김포에서 살았다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울산에 이사 가서 네다섯 살 정도 기억이 어렴풋이 있을 뿐이지.
분명 내 삶인데 생 가까이 순간을 기억하는 건 내가 아니라 부모다. 부모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나의 이야기,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내 아이들 이야기. 자식에게는 주지 않고 부모에게만 생명의 잉태와 감동의 기억을 주었으니 신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자식은 평생 할 효도를 다섯 살 이전에 다 한다! 그러니 그 이상 자식에게 뭔가를 바라지 마라!
집중육아 시절, 육아책을 읽다가 가슴을 때린 구절! 있는 그대로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가 커가면서 욕심을 내는 부모의 마음을 경계하라는 의미였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는 알겠지만 다섯살 전까지는 진짜 이쁘다. 작고 앙증맞고 입 안 침 가득 고인 불분명한 발음마저 귀엽다. 미운 다섯 살, 미친 일곱 살, 사춘기가 도래하면서 멘탈 나갈 때가 수없이 많을 테니 그동안 아이의 효도 듬뿍 받아 사랑충전해서 앞으로 다가올 시기를 지혜롭게 넘기라는 신의 큰 뜻이 아니었을까.
신의 선물을 받아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 그 순간의 사진 몇 장을 소환해본다.
이제 아장아장 잘 걷기 시작한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근교로 여행 갔을 때다. 아이의 앙증맞은 몸이 안테나가 되어 보이는 모든 것을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꽃도 나무도 다 신기하다.
아이가 놀이에 흠뻑 빠진 순간, 어딘가에 몰입하는 순간은 가슴 뭉클하다. 나는 자동으로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사진 반대편에 셔터를 누르는 사람은 대부분 나였는데 이 날 셔터를 누르면서 이 순간이 그리워질 것을 직감했다.
'아, 이 시간... 이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 통째로 저장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기에,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간다.
2살 꼬꼬마 알밤이
여행길에 싸구려 비눗방울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된 순간을 목격하며
아, 이 순간 아마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되겠다 느낌이 팍 왔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7살 알밤이
분수가 보이면 여벌 옷이 없어도 무조건 들어가고 보는 아이.
위로 뿜어내는 분수와 깔깔거리며 신나하던 아이의 웃음소리가 높은 하늘까지 닿았던 날.
젖은 옷을 말리느라 타박을 하면서도 아이의 신난 얼굴에 함께 웃고 말았다.
현재를 즐기는 아이가 예뻐서 한동안 내 카톡 프사에 자리 잡았던 사진이다.
사진에서도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작고 또랑한 눈으로 잠시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나 자신의 세계에 몰입할 때 찰칵 사진 찍는 소리에 방해될까 걱정하면서도 순간을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엄마의 작은 욕심으로 모아놓은 순간이 외장하드에 잠자고 있다. 1년에 한 번 꺼내볼까 말까하지만 오늘처럼 그 날이 궁금해서 찾아볼 때 딱 눈앞에 펼쳐지니 욕심을 잘 부렸다 싶다.
지금 내 옆에 두 아이는 사춘기 호르몬을 뿜어대고 있다. 이제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이 나도 내 아이들도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것을 안다. 어느 날 내 집에서 독립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려 떠나가는 날이 왜 안 오겠는가. 난 거창한 기록꾼은 아니지만 내 가족,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멋진 기록꾼이고 싶다.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도 잘 수집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