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는 작은 조각이어라

나의 꽃을 피우리 - 소나무

by 연은미 작가




평소의 그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사람들 속에 묻혀 있었다. 정돈된 옷차림과 절제된 몸짓,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짓는 미소.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는 능숙하게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나지 않으면 그러려니 스쳐 지나간다. 그는 딱 그 지점에서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를 처음 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그 겉모습이 거짓으로 쌓아 올린 허구라는 것을 알았다. 입꼬리는 가장되어 있고 몸짓에 애정이라고는 없었으니까. 그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어. 그는 누굴까? 무엇을 숨기고 있나? 수면 아래에는 뭐가 있지? 나는 그가 몹시 궁금했다. 누구에게나 짓는 미소로 나를 맞았지만 나는 그 미소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을 꼿꼿이 응시했다.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그를 곧바르게 바라보았다. 무언의 시선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걸 눈치챈 후 그에게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무관심, 외면이라 이 말이지. 그래, 의미 없는 미소보단 무관심이 나아. 의도적인 무관심은 관심의 반대말이니까.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이어진다. 우연이라는 이름의 운명적인 그날, 어둠 컴컴한 카페 구석에 미약한 작은 등 너머로 그가 서 있었다. 붉은 와인을 들고 있는 그는 유독 창백해 보였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흐트러진 옷매무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만졌다. 손가락에 닿은 그의 뺨은 손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기를 끼쳤다. 나의 과감한 행동에 그는 놀란 듯했다. 놀란 그의 눈 속에 내가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표정이었다.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거짓을 걷어낸 표정. 살짝 일그러진 눈썹과 까만 눈동자에서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웅크린 고독한 남자를 보았다. 눈이 흔들렸다. 그의 고독이 내게 전해졌다. 그리고 날것의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가장된 미소가 차라리 나았을까. 뼛속까지 얼어붙게 하는 표정과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겟 아웃!"


그가 물러났다.

나는 물러서지 않아.

나는 그에게 한걸음 앞으로 가까이 간다.


알아. 우리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당신은 당신의 세계로, 나는

나의 세계에서 살아야겠지.

하지만 나는

당신의 세계로 가고 싶어.

당신의 이야기 한 조각이 되고 싶어.

잠시라도 혼자서 고독하지 않도록


그가 한 발자국 물러서면 나는 두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나가!

그리고 나를 잊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불멸한 존재가 된 그.

그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떠나보냈을까?

그의 불로불사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가 허공의 무언가를 보는 듯 말한다.

그들은 말해. 부디 나를 기억해 달라고. 그들의 기억은 나에게 붙어서 상념이 되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길을 홀로 걸으면, 상념의 무게가 짓눌려 이미 나 자신은 보이지 않아.

신은 내게 안식의 기쁨을 주지 않는다.


불로불사가 된 그의 이야기는 멀고 먼 옛날 흩날리는 먼지처럼 작은 조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그의 긴 이야기 중 스치며 지나가는 작은 조각이 기꺼이 되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는 내 몫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잠시 그가 쉴 수 있는 쉼표 정도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좋아요.


소나무: 불로장생
불로장생(不老長生) 또는 불로불사(不老不死)는 노화를 더디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음으로써 오래 사는 것 또는 죽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요즘 저는 <폰아트월드> 커뮤니티에서 <나의 꽃을 피우리> #나꽃피 그림 챌린지 중입니다. 1주에 1작품.

꽃 주제의 그림을 그려요. 소나무는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나무인데요. 불로장생+흡혈귀의 조합이 떠올랐어요. 평소 그려보지 않았던 풍의 일러스트를 즐겁게 파보는 중입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순간 떠오르는 장면을 묘사하거나 그림에 대한 단상을 글로 함께 쓰고 있습니다.



나꽃피 그림 시리즈 보기

1월-01

https://brunch.co.kr/@miyatoon/68


1월-02

https://brunch.co.kr/@miyatoon/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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