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과거로의 여행

만화를 어떻게 그렸나면요

by 연은미 작가

1999년 세기말 내 나이 24살

IMF가 터져 경제적 고난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된 1999년에 나는 결혼과 만화가 데뷔라는 인생 주요 방점을 찍었다.


"연작가님 저희랑 작품 한번 해 보시죠"


98년 12월 전국아마추어만화연합회(ACA)에서 주관한 만화판매전에 친구와 둘이서 피날레로 참가했다가 명함 한 장을 받았다. 당시 단행본 만화 시장이 확장되던 시기라 일반 책 출판을 하다 만화책 출판에 손을 댄 사장님과 영업부장님은 신인을 발굴하러 매의 눈으로 부스를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어무나... 작가라고요? 제가요?

처음으로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니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리고

명함을 받았다는 기쁨은 잠시, 걱정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나.... 만화가로 데뷔하는 건가? 갑자기?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1권 마감에 석 달이면 충분하지요?


"네에? 아뇨오~! 권당 170페이지를 3달에 한 권씩 마감하라고요? 데생, 펜, 톤작업까지요?

말도 안 돼요. 기껏 넉 달에 20페이지씩 그려본 게 다 인걸요. 그것도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스토리는 있나요?


"(긁적긁적) 이제 써봐야죠. 단편만 조금 써봤지. 장편 이야기는 전혀요. 학원물로 쓰면 될까요?(어벙벙)"


걱정 마시라. 저 대사를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서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만화가가 될 정도로 준비가 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냥 무조건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내게는 든든한 우군이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남편이다!


남편이라 굽쇼? 언제 결혼을?

풋풋한 이십 대 , 연애사가 안 생기면 그건 청춘에 대한 기만이다. 만화 배우러 올라와 우이동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미아리에 있는 친구 남편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화실에는 보기 드물게 깔끔한 선배가 있었다. 자꾸 내 책상 앞에 와서 말을 걸고 비싼 제브라 펜촉을 쓰라고 한 움큼씩 주었다.



그와의 러브스토리는 미야툰 그림일기로 고고

1화 이니셜 K 씨의 정체 https://brunch.co.kr/@miyatoon/22

2화 그 남자의 펜촉 https://brunch.co.kr/@miyatoon/24

3화 터치맨을 소개합니다. https://brunch.co.kr/@miyatoon/26

4화 조금 더 세심한 친절 https://brunch.co.kr/@miyatoon/27

5화 만화계 드문 깔끔남 https://brunch.co.kr/@miyatoon/28

6화 썸썸분위기 https://brunch.co.kr/@miyatoon/29

7화 자꾸만 눈이 가네 https://brunch.co.kr/@miyatoon/30

8화 대화가 통하는가? https://brunch.co.kr/@miyatoon/32

9화 타이밍을 잡아라! https://brunch.co.kr/@miyatoon/32

10화 결정적 한 방 https://brunch.co.kr/@miyatoon/33

11화 너의 패를 보여라 https://brunch.co.kr/@miyatoon/34

12화 연애는 나라는 껍질을 부수는 것 https://brunch.co.kr/@miyatoon/35




1997년 7월, 서울 상경해서 룸메이트 언니와 1년을 살고 2년째 여름, 나는 나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연애사업에 한 창이었는데 언니는 남자 친구와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가을쯤 집을 구하고 결혼식을 바로 다음 해 올린다고 했다. 전세 계약이 1년 남았지만 나는 다음 행로를 결정해야 했다. 난 어떻게 하지? 전세금이 반으로 쪼개지면 서울에 전세를 구할 수 있을까? 지금 집도 코딱지만 한 겨우 살만한 집인데? 나의 고민을 남친은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우리도 결혼하자, 오빠도 내년에 벌써 스물아홉이야."

"우선 너 살 집이 애매하니까 오빠 돈이랑 합쳐서 전세를 구해. 그리고 편하게 살고 있다가 결혼식 하고 내가 들어가면 되잖아?"


순진한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98년 10월에 나란히 새 보금자리에 입주했고 그게 우리 신혼의 시작이었다. 99년 10월 결혼식을 올리기 전 딱 1년을 동거하면서 무엇을 했나면, 무엇을 했겠는가? 연초부터 열나게 마감의 세계로 진입했다. 방 하나는 침실, 방하나는 화실, 신혼집은 내 만화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저 입술 갈색 추억! 그때는 유행했었네

사진첩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

남편과 돈을 합쳐 구한 연남동 반지하 방 두 칸, 우리 첫 신혼집이다. 사진첩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필름으로 인화한 명도가 어두운 사진 속 내 모습이 앳되어 보인다. 스 물 네 살이니 어린 게 맞다. 내 모습 다음으로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저 책상 둘 다 내가 울산에서 쓰던 책상이다. 왼쪽 그린 색깔은 아빠가 처음으로 아파트에 입주하며 내 방에 들여준 책상이고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은 3년 동안 다닌 회사 퇴직 선물로 부서에서 사준 제도용 책상이다. 저 책상들을 울산에서 이고 지고 자취방에서 신혼집까지 가져왔다. 창문 밖 왼쪽이 빌라 출입구라 문을 열면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빌라 사람들은 지나다니며 문이 열려 있는 방을 흘끔흘끔 보았는지 계단에서 마주치면 "그림 그리시나 봐요?"하고 신기해했다.




내 주위에는 남자가 가득! 남편과 배경, 뒤처리 어시스트

우리는 한 팀

글을 처음에 남편과 둘이 쓰다 2권에 들어서 혼자서 썼다. 초보 신인이라 손은 늦고 혼자 다 할 여력이 안 되어 내가 데생을 하고 마스크까지 펜을 하면 몸터치는 남편이 해주었다. 배경은 P옹, 뒷처리는 L씨가 해주었다. 다니던 무협 화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와해되어 그중 한 명을 남편이 잽싸게 영입했다. 처음에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P옹, 집에서 배경맨까지 데리고 계속 작업하기가 힘들어 대출을 알아보고 근처 화실을 구했다. P옹은 화실에서 숙식을 하고 우리는 출퇴근하며 그림을 그렸다. 순정만화 작가면서 남편이 서포트를 해주는 덕분에 내 배경 어시스트는 두세 번 바뀌면서도 계속 남자였다. 과분한 서포트에 송구할 따름이다.






만화가로 데뷔를 하려면 우선 그림을 많이, 빨리 그려야 한다. 양으로 때려야 하는 만화는 정신 뿐 아니라 육체 중노동이다. 양으로 밀어붙여 그림을 그리려니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최소 시간을 빼고 엉덩이를 붙여야 했다. 당시 2~3개월에 한 권씩 마감한 지인 작가 언니는 매일 12~14시간씩 그림을 그렸었다고 했다. 그 정도까지 했으면 아마 나는 죽었을 것 같다. 그때 급작스레 스토리를 써서 만든 책이 내 데뷔작 <클릭>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찾을 수 없으니 어디든 자신 있게 공개한다.)

산고의 고통을 겪고 탄생하는 한 권의 만화책! 책 한 권 손에 쥐는 기쁨에 그간 고생을 망각하고 다음 작품을 시작했다. 그렇게 1999년부터 7~8년을 주욱 순정만화가로 살았다.



열정 하나만 가지고 헝그리함을 받아들이며 그림을 그렸던 그 시절, 20년도 전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입문했다 여러 사정으로 진로를 바꾼 그들. 지금 P옹과 L씨는 어디서 무엇을 할까? 어떻게 나이가 들었을까?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을까? 사진을 보니 그들이 보고 싶다. 내 이름을 검색하면 찾을 수 있을 텐데... 언제 궁금해서 찾아보고 연락이 온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과거, 잠시 1999년도로 여행을 하며 추억과 그리움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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