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조건
#4 조금 더 세심한 친절
그림연습
드디어 본격적인 그림 연습에 들어갔다.
출근하고 며칠동안 대중없이 혼자서 연습하는 걸 보더니
선배는 자리 잡고 앉아서 손푸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짧고 얇은 선을 일정하게 내려긋기
길고 얇은 선을 일정하게 내려긋기
자로 그은 것처럼 될 때까지 끝을 날렵하게 자로 반듯하게 긋기 등등
시범을 보여주고 따라 했는데 생각만큼 고르게 나오지 않았다.
(쉬워보였는데 하나도 안 쉽구만.)
내가 또 누구? 자칭, 타칭 성실걸 아닌가.
출근하면 무조건 가르쳐준대로 손을 푼 다음 배경 연습을 했다.
선배는 손을 푼 다음에 어려운 배경 하나를 똑같이 뎃생하고 펜까지 완성해보라고 했다.
나는 일본 만화 중 괜찮은 자연물이나 건물 장면을 골라 며칠에 걸쳐 한 장씩 배경을 완성시켰다..
선배로서 가르쳐주는 거겠지만 '이 선배님 쫌 세심하네'라고 느껴졌다.
꼼꼼하게 잘 가르쳐주고 믿음직한 느낌이랄까.
뒷처리 원고
낮에는 뒷처리 나온 원고를 처리했다.
뒷처리란 말그대로 펜이 끝난 원고의 스케치 선을 지우고 정리하는 것이다.
뒷처리가 무척 간단할 것 같지만 한 번에 수십장 지우개질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팔이 떨어져나가는 단순노무 노가다이며
아무데나 힘을 주면 원고가 구겨지는 사태가 생기기도 한다.
방향을 한 방향으로 고르게 지워야 원고 손상 없이 종이결이 반듯하다.
머리, 옷, 배경 등 (X가 표시되어 있는 곳)에 먹칠을 하고
화이트 포스터 물감으로 더러운 잡티를 붓으로 깨끗이 지우면 뒷처리가 끝난다.
그 다음 스크린톤 작업을 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다.
생각해보면
연애를 해라! 지금이 너의 첫 연애 시즌이야!
파릇파릇 청춘이 만화만 그리고 있을거야?
하고 운명이 멍석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
화실 초반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출근하면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국인은 밥정이 무섭다는데 작은 화실이라 밥도 함께 해먹으니
23년동안 일면식 없던 이 선배, 갑자기 내 삶에 그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1화 이니셜 K씨의 정체 https://brunch.co.kr/@miyatoon/22
조건 2화 그 남자의 펜촉 https://brunch.co.kr/@miyatoon/24
조건 3화 터치맨을 소개합니다. https://brunch.co.kr/@miyatoon/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