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은미 Jan 17. 2023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기억 속 내 이야기



엄마와 재혼한 아저씨는 초혼에 장남이라고 했다.

엄마는 나를 낳은 후 중절 수술을 해서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한다. 그걸 알고서도 엄마와의 삶을 선택했다. 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집안의 대가 끊어지고 자식 없이 평생 둘이서 살겠다니 얼마나 사랑하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두 분은 지금도 잘 살고 계신다.

내 자식을 좀 챙겨줬으면 해서 재혼한 친아빠는 사람 좋다는 말이 무색하게 새엄마와 자주 다투고 폭력을 쓰기도 했다. 지금 사는 모습은 두 눈으로 안 봐서 모르겠지만 대화를 살갑게 하거나 함께 나들이를 다니거나 하진 않는 것 같다. 각자 재혼을 한 엄마, 아빠의 사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다.


아무도 옛날 일을 입에 담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초등 6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지금 새엄마와 재혼 전에  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가 들어와 산적이 있었다. 꼬맹이는 귀여웠지만 아줌마는 뚱한 표정에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빠가 출근을 하면 하루종일 아줌마와 꼬맹이와 함께 있어야 하는데 피차 불편한 동거였다. 오빠, 언니와 나는 의도치 않게 신데렐라에 나오는 새언니들처럼 꼬맹이 남자애를 따돌리는 캐릭터가 되었다. 꼬맹이가 놀아달라고 쫓아다니면 문을 닫고 우리끼리 놀았다. 갑자기 나타난 모자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런 몇몇의 사건이 있고 아줌마는 못 살겠다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우리는 그들이 가버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얼마 안 있어 아빠는 새엄마와 재혼을 한 것이다.


사랑 없이 결혼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 엄마

사랑 없이 결혼했으면서 또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한 아빠


아빠는 그토록 중요한 결정을 왜 번번이 주변에 휩쓸리듯 해버리는 걸까. 부부로 연을 맺을 때 가장 중요한 아빠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을까? 아빠 삶이 불쌍하고 애틋한 건 한평생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게  아니라 나이가 차서, 중매가 들어와서, 집안일을 좀 나누었으면 해서 결혼이란 중대사를 결정해 버렸다.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난 것이 같은 여자로서는 잘한 것 같고 자식으로서 미웠다.  오랫동안 이해와 원망이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애증이란 감정으로 섞여 있었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불행한 채로 계속 아빠와 살았다면 내가  행복하게 지냈을까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단절된 부부 관계는 집안 곳곳에 계속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예민한 엄마의 스트레스는 자식들에게 향했을 수도 있다. 내 부모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엄마, 아빠를 바라보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 본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 부질없어 보인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를 비롯해 가족, 주위의 수많은 부부관계를 보며 질문하게 된다.

부부는 두 사람의 결합으로 시너지가 나기도 하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시너지의 바탕은 신뢰이고 신뢰는 사랑과 배려와 존중으로 이룰 수 있다. 최근 읽은 후이 작가의 <그대만 모르는 비밀하나>에서  결혼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으려면 두 사람 모두 상당한 수준의 성숙함과 배려심이 있어야 한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결혼 생활을 잘하고 있나?  내가 상당한 수준의 성숙함과 배려심이 있나? 자신할 수 없다. 면마다 다르다. 어떤 면은 그릇이 좀 넓은 것 같은데 어떤 면은 간장 종지만 한 그릇을 갖고 있다. 초등 아이 수준으로 내려가 서운해하고 짜증을 낸다.


아래 문장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둘 다 긍정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즉, 다른 부분은 모두 다르더라도 에너지의 방향만큼은 같아야 한다.

맞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부부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하니 에너지의 방향이구나. 에너지 방향이란 긍정적인 기운이다.  취미, 특기,  MBTI가 극으로 달라도 에너지의 방향이 같으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부부 생활을 할 수 있겠다. 거기다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가치가 같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부부 생활 23년이 되었다.  나와 남편은 성격은 너무 다르지만 23년 동안 크게 싸우거나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일 없이 잘 살고 있다. 쉽게 말해 말이 통한다는 건데 그 말이 에너지의 흐름이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긍정적이고 발전과 성장을 지향한다. 감사한 일이다. 서로 사랑해서 만나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부부로서 사랑은 연애할 때 사랑과 모양과 깊이가 다른 것 같다.  부부의 사랑은 숙성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지난여름 제주여행에 아빠를 초대했을 때의 일이다. 나들이를 갔다 숙소에 와서 블루투스 마이크를  TV에 연결해 노래를 불렀다. 아빠와 남편은 밖에서 이미 소주를 먹고 들어와 얼큰하게 취해 분위기가 쉽게 고조되었다. 멀쩡할 땐 손사래를 쳤을 텐데 박자를 조금씩 놓치면서도 아빠는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아빠의 18번이 <번지 없는 주막>인 것을 그때 알았다. 손자, 손녀의 노래가 끝나고 어른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박수소리 끝과 다음 노래 사이 그 짧은 찰나에 아빠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참, 부럽다..."

그 말을 나와 남편이 동시에 들어버렸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당황스러웠다가 마음이 울컥했다. 꽁꽁 숨겨놓은 아빠의 속마음을 엿들은 것 같았다.

마음에 있지만 자식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말들을 사위가 손주들에게 하는 모습,

자신이 못 만든 화목한 가정을 꾸린 자식 내외를 보며 부모로서 흐뭇하고 같은 남자로서 부럽다고 말한 것이었다. 아빠, 엄마가 만든 가정에서 자란 나는 아빠의 '부럽다'는 말의 당사자였기에  마음이 아려왔다.







엄마의 이름 전이야기

https://brunch.co.kr/@miyatoon/59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공감에세이 #기록 #그림에세이








매거진의 이전글 공간이 시간에 박제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