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월경과 완경기에 대해
그 옛날 15살 즈음 첫월경을 시작하고 30년이 넘었다.
얼마전 처음으로 생리를 한 달 건너뛰었다. 며칠 늦었질 때는 왠일이지 했는데 2주일을 지나 한 달이 다 되어가니 머리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나, 혹...혹시? 폐.경.기?
아니 아니, 여자를 기계, 고물취급하는 어휘는 쓰지말도록 하자. 이제 완경기에 돌입하는 건가? 서둘러 병원에 가니 갑상선 수치가 낮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직 이상은 없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초기 징조일 수 있다고 했다. 남의 일로만 듣던 완경기가 어느새 내게도 성큼 다가오고 있다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얼마 후 초등 6학년 딸이 첫 생리를 했다.
발육이 좋은 아이라 몇 년 전부터 걱정했는데 그나마 또래랑 비슷한 나이에 시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이제 너도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리겠구나. 불편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완경기의 징조가 나타난 입장에서 은근히 그 불편함이 좋은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퇴근길에 딸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꽃다발 사이에 만원 짜리 지폐를 쏙속 끼어넣은 센스를 담아. 딸이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앞에 두고 인생 첫월경을 축하를 해 주었다.
동성으로서 엄마의 끝과 딸의 시작이 묘하게 맞물린다. 그게 인생의 순리던가.
피어나는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머리결이 굵고 윤기가 흐른다.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보송보송 솜털이 맑고 생기가 있다.
종종 아이의 생기를 부러워하며
"알밤양, 엄마한테 머리 숱 좀 나눠주라!" "가슴이 엄마보다 크다니 부럽다~"하며 농담을 한다.
아이의 보송보송 솜털, 굵고 건강한 머리카락, 생생한 에너지, 통통거리는 감정표현 모두 말 할 수 없이 예쁘다.
씻고 나와서 거울을 본다.
어느새 나는 트리트먼트를 열심히 발라도 미용실가서 헤어클리닉을 하지 않으면 푸석해지는 머리결과 어릴 때보다 반 이상 줄어버린 머리숱을 가지고 있다. 새치가 많아져 꼬박꼬박 염색도 해야 한다.
얼굴에 언제 생긴지 모를 착색된 점점들을 가리려 썬크림을 바르고 쿠션을 열심히 두드려 얼굴톤을 화사하게 만들어보지만 그나마 있는 생기도 함께 가려지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은 때마다 중요한 주기를 지나는데 유아에서 어린이,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다. 월경을 시작하고 월경이 끝나는 것처럼 몸을 통해 알기도 하고 65세에 기초노인연금이 나오는 때를 공식적 노년기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즘 유명한 광고가 있었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 게보린!
강력한 CF였다. 두통, 치통은 알겠는데 생리통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 거다. 우리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줄도 모르지만 재밌다며 따라했다.
어느날 생리통이 무슨 뜻인지 너무 궁금해서 아빠한테 물어보았는데 아빠는 당황한 듯 어물쩡 넘어가버리셨다. 아빠의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알게되었다. 이런건 아빠한테 말하면 안 되는구나. 한 달에 일주일, 수십 년이나 여자의 일부가 되는 중요한 일인데 이성에게는 아빠라도 쉬쉬 모르게 처리해야 하는구나.
지금은 어떤가.
딸이 생리를 하면 생리축하를 해주고 아들이 첫 몽정을 해도 축하를 해준다. 성을 자연스럽게 양지로 끌어내어 다행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나중에 생리를 하면 동네방방곡곡 자랑하며 축하해줄게 말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성에 대해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남편과 대화중 퇴직과 노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의 전성기를 평생 보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정점을 찍고 두 번째 직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옴을 느낀다. 퇴직, 노후 걱정은 분명 어릴 때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말인데 어느새 우리 부부와 지인들과 나누는 대화 소재가 되었다. 하긴 조카들이 경제의 주체에 서기 시작했으니 이것 또한 자연스런 삶의 주기일 것이다.
이게 삶의 순리라면 시작만 축하하고 끝은 축하를 받으면 안 될까? 끝은 시작과 양면이다. 끝은 인생의 다음 주기로 넘어가는 통과문이다. 그렇다면 생리를 하는 것처럼 완경을 할 때도 축하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삶의 주기는 의미가 있다. 먼저 수십 년동안 나를 위해 애써준 몸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환갑, 회갑을 축하하는 것처럼 완경기도 당당히 축하하고 축하받자. 선물로는 몸에 좋은 보약을 달라고 하면 어떨까. 평생 보약 한 번 안 먹어봤는데 갱년기에 좋은 한약과 영양제를 스페셜 셋트로 받고 싶다고 해야겠다.
우리의 몸은 시간과 함께 성장하고 정점을 찍고 노화한다. 순리에 따르라. 그리고 순리의 끝도 기억하라. 주기의 역할을 성실히 잘 수행했음에 감사하라. 그리고 그 다음 시작을 받아들이라. 단 영혼은 몸노화를 충실히 따라가지 말자. 건강하고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생각이 몸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영양제와 물 주듯 세심하게 우리의 영혼을 잘 돌보도록 하자.
그나저나 아들에게 일부러 가볍게 물어보았다.
"아들, 넌 몽정하면 꼭 말해. 동생처럼 축하해줄게. 혹시 벌써 했어?"
"아니. 아직...."
우리때처럼 죄지은 것처럼, 알리는 게 부끄러운 거라는 분위기로 성장의 축복을 변질시키지 말자.
아들, 딸에게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자연스럽게 이성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며 크는 것이 또한 남매의 복이란다.
머리속 환타지가 아니라 성이 다른 인류의 반을 이해하고 애정을 가지도록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