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새로운 구조 속에서 일본 사회와 사람들이 주는 이 보이지도 않고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느낌을 어떻게 다뤄가야 할지 나만의 긴 싸움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배운 나는 한국에서의 삶과 사회적 공기는 익숙하여 스트레스를 나름 잘 다뤄왔지만, 일본에서 산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라는 걸 일 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씩 피부로 와닿고 있다.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 문화에 적응하여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얹고 얹어 살다가 햇수로 십 년이 되면 십 년 체증이 되는 거겠지.
그런데 이 쯤되서 궁금증이 하나 떠오른다. 분명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살아봤는데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의외로 처음이다. 그건 왜 일까?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아 힘들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한 힘듦을 겪었어야 했는데 그곳들과 이곳은 또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ㅡ
나는 한국인, 여기는 일본
위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여기서 시작할 수 있겠다. 나는 한국인, 여기는 일본. 한국과 일본은 가깝지만 먼 이웃 나라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여기 살면서 느낀 건 일본과 한국은 정말 극과 극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강하고 한국은 단기적인 프로젝트에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에 걸쳐 관찰하고 기록하고 체계를 세우고 구조화시키는 것이 굉장히 조직적으로 잘 되어 있어서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절차들을 순종적으로 따라간다면 삶에 불편할 것이 없게 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주먹구구식이라 많은 한국인들에게 당신이 다니는 회사가 어떠냐고 물으면 체계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할 것이고,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만큼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행동하고 대처하려면 많은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대신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만큼 대응도 빠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적응하면 살기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 원리원칙이라는 것에 합리와 상식이 빠지니 그 룰이라는 것이 폭력적이고 비인격적으로 다가와 때로는 굉장히 억울하고 속된 말로 열폭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을 사회 곳곳에서 겪게 되었다.
일본에서 십 년 넘게 사신 분에게 이런 감정을 나누었을 때 본인도 13년 된 지금 조금 적응되는 중이라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 움츠러들게 하는 나라 같아요.
뭐 그리 조심해야 하고
신경 쓸 게 많은 나라인지.
자유롭지 못한 나라
- 일본맘카페
그리고 알았다. 이 갑갑함이 무엇인지. 이 나라 자체가 자유롭지 못한 데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구속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십 년이 되어도, 아니 십 년을 넘어도 힘들다는 일본. 그리고 일본 생활. 그러면 1년 차 새내기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이웨이, 나의 길을 가겠어
또 다른 분의 말씀.
갑갑한 건 어쩔 수 없지요.
멈춰져 있는 느낌...
여긴 변화가 없는 걸...
늘 똑같네요.
-일본맘카페
갑갑한 건 어쩔 수 없다는 말씀에 뭔가 단념이 되었다. 어렴풋이 그럴 것이라고 느꼈던 변화가 없는 것도 확실해졌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 앞에 멈춰있을 때 마음속에 '마이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본토가 주는 안정감을 버리고, 타국이 주는 이질감을 내려놓고 다시 힘내서 나의 길을 가야겠어. 알잖아. 마음을 비우고 볼 때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맞춰지는데 십 년이 걸리는 것처럼, 이 나라와 내가 맞춰지는 데 십 년이 걸리리라는 마음을 갖고 멀리 보기로 했다.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고, 내가 가야 할 길도 보이지 않지만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값지게 살다가 문득 뒤돌아봤을 때 내가 걸어온 길이 참 의미 있었다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