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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춘

20대에도 열정녀

by 작가 문미영


성공하는 사람은 도전을 많이 한 사람



나의 좌우명은 ‘도전을 많이 해보고, 경험을 많이 해보자’이다. 20대 때부터 나는 ‘도전’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았다.

2008년 대학교 2학년 때, 그 당시 사귀던 경영학과 오빠가 ‘월드그린에너지포럼’에서 같이 외국인 안내 및 통역을 해 보자고 제안을 했었다.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해보자고 하였다. 그것이 나의 통역 봉사활동의 시초가 되었다. 그린에너지포럼에서는 다행히 어려운 통역은 없었고, 안내데스크 앞에 앉아있다가 외국인이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것이 다였다. 그날 조금 피곤했지만 기분만은 좋았던 것 같다.



그린에너지 포럼으로 용기가 생겼던 것인지 나는 다양한 국제 콘퍼런스에 통역봉사활동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2010년 7월 한여름, 한화에서 주관하는 포항 국제불빛축제에 폴란드팀을 통역하게 되었다. 폴란드라는 나라는 처음이거니와 폴란드어를 할 줄 몰라서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폴란드 팀원들 중에서 일부가 영어가 가능해서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화약 관련한 용어들을 잘 몰라서 관리자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렇게 폴란드의 문화와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배우고, 나도 한국 문화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주며 축제를 준비하는 3~4일 동안 친구로 지냈다. 너무 더워서 짜증이 났지만 남자들이 의자가 있는 곳이나 그늘 자리도 양보해 주시는 등 매너도 좋고 재미있으셔서 같이 있는 내내 내가 편했다. 카라의 축하 무대가 있었고, 폴란드팀에서 카라에 관심을 보이고 예쁘다고 해서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역시 외국인이더라도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행사에서 힘들게 고생을 하여 설치하였지만 아쉽게도 2등을 하였다. 1등은 일본이었다. 그래도 그 행사를 계기로 다음 해에도 한화에서 행사를 도와달라고 하셨는데 사정상 못하게 되었다. 포항국제불빛축제를 볼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서 아련하다. 물론 덕분에 아리랑 TV에도 출연을 했다. KBS 뉴스에서도 인터뷰를 해가셨는데 편집되었다.



그다음, 그 해 가을 즈음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리던 FAO 콘퍼런스에도 수행통역봉사자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통역 경험이 있어서일까 영문과 전공이어서 그럴까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셨다. 신기한 건 베트남, 필리핀 쪽 통역봉사자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중국인 통역봉사자도 있었다.

통역봉사라 그런지 면접도 영어로 진행이 되었고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일반 자원봉사자와 통역봉사자는 면접도 다르고 유니폼 색도 달랐다. 통역봉사자는 하얀 셔츠, 일반 봉사자는 파란 셔츠를 입어서 한눈에 봐도 통역봉사자인지 일반 봉사자인지 구별이 되었다. 유니폼 하나로 우리는 더 자부심이 들었고, 친해지게 되었다. 행사 기간 내내 같이 밥 먹고 산책하고 사진도 찍으며 추억을 쌓기 시작했다. 다른 대학교 재학생들이다 보니 서로의 대학교 이야기도 하고 언니 동생 하며 친분을 쌓아나갔다. 콘퍼런스에는 그 당시 대통령이셨던 이명박 대통령님이 오셔서 연설을 하셨다. 대통령을 눈앞에서 봐서 그저 신기했다. VIP를 통역하던 수행통역봉사자이다 보니 나는 각 나라의 장, 차관들을 관리했는데 동티모르에서 오신 농수산식품부 차관님께서 ‘한국에 처음 왔는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고 특히 친절하고 잘 웃는 미소가 좋아서 선물을 주고 싶다’며 동티모르 전통 스카프를 선물로 주셨다. 근데 내가 보관을 잘 못해서인지 잃어버려서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 아쉽다.



그 행사 이후로 나는 경주와 포항에서 열리던 다양한 콘퍼런스나 행사에서 통역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학교 신문과 언론에도 나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열리던 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도 봉사자로 참여를 하였다. 나는 캐나다, 뉴질랜드에서 오신 공연팀을 맡았다.

오리엔테이션에 갔더니 송은이와 김준호가 진행을 하고 계셨고 코미디언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니 행복했다. 그때가 결혼식 하기 한 달 전이었다. 행사 내내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에서만 보던 코미디언들을 눈앞에서 보고 대화도 나누고 같이 사진도 찍었는데 안소미와 오나미는 실제로 보니 귀엽고 예쁘셨다.



내가 용기를 내서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나는 20대에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참 열정적으로 살아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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