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 Miyoung Dec 28. 2023

지난여름, 산에게

두 번째 임신

 2022년 어두운 봄이었다. 

 낯선 언어가 주변을 휘감는 가운데서 행해졌던 소파 수술. 차가운 병실. 마취에서 깨어나 바라본 텅 빈 몸. 그곳에 남아있은 임신의 잔해들은 마치 폐허 속에 남겨진 허물어진 집과 같았다. 한없이 우울했던 봄이다. 남편은 인생에 찾아드는 높은 파도는 언젠가 잔잔한 물결로 되돌아온다는 흐름을 믿는 사람이다. 아래로만 한없이 향하려는 나를 붙잡고 다시 따뜻한 볕이 드는 자리로 매번 나를 옮겨다 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을 되찾았던 것도 그 덕분이다. 8주라는 짧은 임신과 유산의 기억을 뒤편으로 하고 우리는 되도록 이곳저곳을 많이 쏘다니려 했다. 2022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성과가 큰 해였다. 2021년에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연이어 큰 상을 받았고 영화제 곳곳에 초청이 됐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영화제가 열리는 곳을 직접 찾아다니는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사람을 만나고, 관객을 만나고, 영화를 이야기하고, 남은 시간에는 여행을 다녔다.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오래도록 간절하게 바라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들뜨게 기쁜 한편으로 생각만큼 나 자신이 기쁘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이제 내 삶에서 가장 달콤한 과실은 내 개인적인 일로 거둔 성과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슴 묵직하게 무서워지기도 했다. 임신 전까지 나는 아이를 가지는 것에 많이 망설였다. 망설임보다는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 같다. 사람을 낳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너무나 거대한 의미였다. 나 같은 심지 작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 자녀를 갖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그저 홀로 창작 일을 하다 늙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간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아이를 가지겠다는 결심에 이르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사람처럼, 내 간절함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임신과 유산을 겪은 이후에는 더욱 절실해졌다. 아마도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 너무나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손에 닿을 듯 닿지 않은 미래는 사람을 안달 나게 만든다. 거칠게 불붙은 바람이 내 삶의 축을 거칠게 뒤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새부터 나 역시 임신에 좋다는 음식과 생활 습관을 찾아 나섰고 임신 관련 커뮤니티를 습관처럼 드나들게 됐다. 


 한편 유산 후, 우리는 조심스럽게 주변에 그 소식을 알렸다. 그 후 놀랍도록 여기저기서 많은 연락을 받았다. 가까운 친구 가족뿐 아니라 한두 번 인연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지인들까지 자신들의 유산 경험을 공유하며 나를 위로했다. 침대에 누워 전화기로 흘러나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가슴에 새기며, 나는 마치 '상처동호회'에 막 가입한 작은 동물이 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상처를 경험한 현자들이 내 둥지를 둘러싸고 그들의 경험을 나지막이 들려준다. 상처가 언제 왜 생겼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어떻게 극복했고 가슴 한편에 어떻게 숨겨뒀는지, 하나하나 차례대로 들려주는 이야기들. 나는 따뜻한 담요를 두르고 누워 가만히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 과정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단순히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된다고 알고 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품을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이 물론 썩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슬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첫 임신에 비해 너는, 조금 늦게 찾아왔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 다 가도록 임신이 되지 않았다. 몸에 큰 이상도 없었고 좋다는 음식과 한국에서 보낸 한약까지 열심히 챙겨 먹었다. 그럼에도 임신 테스트기에 그어진 선명한 두 줄을, 처음 그랬던 것처럼 쉽사리 볼 수 없었다. 그 사이 어느 때보다 내 몸의 작은 변화도 예민하게 체크했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이지만 스스로 그 속을 빤히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겉으로 느껴지는 반응들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지레짐작하며 조바심을 냈다. 그 스트레스로 감정의 기복은 커지고 쓸데없는 타이밍에 눈물이 넘쳐나는 일도 빈번했다. 남편은 묵묵히 곁을 지켰다. 어떤 때에는 스트레스로 팔딱대는 나를 차에 태워 늦은 밤 텅 빈 도로를 달리며 스트레스로 달궈진 나를 식히기도 했다. 두 번째 임신을 알게 된 건 2022년 겨울, 크리스마스즈음이었다. 진한 두 줄이 새겨진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꼭 들고 남편과 다시 찾아온 아이를, 너를 축하했다. 

2022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최고의 선물은 바로 너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여름, 산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