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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an 11. 2024

지난여름, 산에게

안녕? 난 21주 3일 자궁이야

 병실 안에서 나누는 산모들끼리의 대화는 약간 그 공간과 상황에서 멀어져서 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서 듣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는 그 대화가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들렸다. 


 치료실에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1, 2, 3번 침상이, 오른편으로는 4, 5, 6번 침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오른편 가운데 자리, 그러니까 기대는 벽이 없어 가장 협소한 자리에 입원했다. 쓰레기를 비우기 위해 내 자리를 찾은 이모님들은 한결같이 내 침상은 다른 곳에 비해 너무 좁다 말하곤 했다. 나는 다른 침상의 넓이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이모님들의 말을 들을 때면 어쩐지 억울했다. 빈 병상이 생기면 간호사분들께 몇 차례 자리를 옮길 수 없을까 운을 띄워보긴 했으나, [침상 변동 불가]라는 방침 탓에 자리를 옮길 수는 없다는 답변만 들을 뿐이었다. 입원 후 일주일 가량 지났을 무렵, 나는 양 옆 침상에 있는 4번과 6번 산모와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얇은 커튼으로 모든 대화를 차단할 수 있는 마법의 공간에서 처음 대화의 물꼬를 튼 건 경부 길이가 짧아져 갑작스럽게 입원하게 되었다는 6번 산모 덕분이었다. 그전에 나와 같은 조기양막파수로 이 병원에 2주째 입원 중이라던 4번 산모와 스치듯 스몰 토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4-5-6번 병상의 대화는 성사될 수 있었다. 마침 맞은편 1-2-3번 병상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자궁과 태아와 관련된 대화였다. 임신 주수가 얼마나 됐는지, 자궁의 상태가 어땠길래 입원하게 됐는지, 태아 몸무게는 얼마인지, 양수량은 충분한 지, 자궁 경부 길이가 너무 짧지는 않은지, 관련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지, 임신성 당요 검사는 받았는지 등 서로의 내밀하고 사적인 속살을 까발리는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서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궁금해하거나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세 개의 ‘자궁’이 대화를 하면 이런 모습일까. 4번 산모는 30주 자궁, 6번 산모는 31주 자궁, 나는 21주 3일 자궁이다. 나는 나이만 많은 게 중 가장 어린 자궁이었다. 


 바깥은 마스크를 벗고 서로 마주 보며 대화하는 삶을 되찾았다 말했지만 병원 안에서는 아직 코로나를 비롯한 전염성 질병에 매우 예민한 상황이었다. 그 탓에 커튼을 젖히고 시원하게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는 건 금기시됐다. 커튼을 닫은 채로, 볼록 튀어나온 배를 안고 누워 우리는 서로의 자궁 컨디션을 세밀하게 체크했다. 살뜰하게 살펴주는 의료진에 대해 칭찬을 하거나 다른 병원 고위험 산모 입원실을 겪어본 6번 산모 덕분에 이 병원의 치료실이 굉장히 낙후된 편이라는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발견은, 내가 매우 심하게 코를 골면서 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항상 6번 산모가 지나치게 코를 곤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러던 중 6번 산모가 나에게 어쩜 그리 잠을 잘 자는지 너무 부럽다고 말하는 부분에서(입원 초반에는 정말 많은 잠을 잤다), 나 역시 양 옆 산모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잘 때 심하게 코를 골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로 우리의 소소한 대화는 지루한 병실 생활에 아주 작은 단비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대화의 물고를 튼 일주일 후 4번 산모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퇴원했다. 그리고 며칠 후 6번 산모는 교수님으로부터 퇴원 허가를 받고 병실을 떠났다. 떠나기 전 시원한 자몽에이드를 내 손에 쥐어주고 유유자적 떠난 6번 산모는, 참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가 됐다. 그들이 퇴원한 이후에도 나는 계속 병실에 남아있었다. 병실은 나 혼자 입원해 있기도 했고, 4~5명이 입원해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일주일 내로 퇴원을 했다. 입원 환자가 몇 없는 병실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어쩐지 나 홀로 흘러가지 못한 채 어느 구석에 가만히 고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 기억이 난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6번 산모 퇴원 직전에 내 침상이 왼편 제일 첫 번째 침대, 1번 병상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1병 병상은 5번 병상에 비해 훨씬 넓었고, 창문 근처라 햇볕도 조금 누릴 수 있어 쾌적했다. 장기 입원 환자를 위한 간호사분들의 작은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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