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기 살리려고 왔잖아요.
[고위험 산모 집중 치료실]은 병원 가장 내밀한 공간에 삼중문으로 차단되어 있어 외부로부터 고립된 공간처럼 보였다. 감염에 취약한 산모와 신생아들이 머무는 곳이기에 마치 병원 속내에 삼켜진 공간 같기도 했다. 이 병동을 오가는 이는 오직 의료진과 환자들 뿐이다. 다른 병동들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드나드는 외래 환자도 없고 상주 간병인도 없다. 면회는 하루 한차례, 20분으로 제한되어 있다 보니 적막한 병실은 이따금씩 들려오는 산모들이 눅눅한 눈물 소리만이 빈 공간을 채울 뿐이었다. 제1 치료실과 제2 치료실로 나뉘어 있는 병실은 각각 6명의 환자를 최대로 수용할 수 있었다. 나는 1번 치료실 5번 침대를 배정받았다. 각 환자의 사적 공간은 얇은 커튼 하나로 보호받고 있었다. 이 이전에 머물던 병원과 비교하면 내게 제공된 공간은 협소했다. 한 뼘짜리 침대와 그 옆에 놓인 작은 서랍장이 다였기 때문이다. 입원 다음날이 되어서야 지난 병원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속옷과 생리대, 물티슈, 약간의 간식, 수저와 물병같이 병원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이 대부분이었다.
큰 폭으로 일렁이는 감정의 파장이 공간 안에 얽히고설켜 있었지만, 병실에서는 그 누구도 큰 목소리로 떠들거나 한탄하지 않았다. 병실 벽 끝에 달려있는 TV는 단 한 번도 켜진 적이 없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모두가 각각의 이유들로 심란한 사람들이 모인듯했다. 병실 한쪽 벽면에는 창문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 맞은편 병원 건물이었으므로 대강 하늘의 색깔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지만, 대게는 블라인드가 내려진 채로 있었던 탓에 낮이건 밤이건 병실 풍경은 똑같았다.
그곳에서 허락된 건 그저 가만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때마다 주는 세 번의 끼니를 챙기고 주사와 수액을 맞고 일정 시간이 되면 병실 불이 꺼졌다. 매일 낮과 밤, 매 순간 너의 생존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가늠했다. 21주. 태아의 생존 가능성은 너무나도 낮은 주수다. 제일 처음 목표는 24주까지 버티기였다. 현대 의학으로 최소한 아이의 [생존]을 논해볼 수 있는 주수라고 했다. 24주까지 남은 기간은 3주. 누군가 3이라는 숫자가 적은 숫자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영원의 시간을 앞둔 것처럼 느껴였다. 시간은 거대한 눈덩이로 부풀어 매초, 매분, 매 순간 나를 짓눌러왔다. 커튼이 둘러싸여진 침대에 가만히 누워 나는 그저 이대로 잔잔하게 죽고 싶다 생각했다.
나는 대부분의 것들을 담담하게 감내하는 조용한 환자였다. 하지만 마음속은 온통 쑥대밭이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 노력하면 손에 쥐어지는 것이라 배웠던 것, 보편적인 상식, 하고 싶었던 일.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밑줄 쳐가며 내 손으로 지워나갔다. 나는 그곳에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존재해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죽어가는 것 같았다. 몸은 한없이 더러웠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이후 단 한 번도 씻지 못했다. 일주일째였다. 씻지 못해 더러워진 몸도 수액을 맞아 퉁퉁 부은 내 얼굴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책임지기로 했던 것들을 하나씩 놓는 일도 이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종국에는 나라는 존재도 아무렇지 않아져 가는 것 같았다. 두터운 생리대를 찬 팬티와 벙버짐한 원피스 환자복만 입은 채 매일 양수량과 임신 주수로 식별되는 내 존재를 보면서, 왜 이렇게 꾸역꾸역 존재해야만 하는지 생각했다. 나는 입원 후 일주일 내리 잠을 잤다. 현실을 피해 내 깊은 어둠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은 그뿐이었다. 잠이 오지 않은 순간에는 예전에 남편과 찾았던 더운 바다를 떠올렸다. 그곳의 냄새와 습도와 불어오는 짠 바람을 떠올렸다. 그렇게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나는 끝도 없이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입원한 다음날인가, 다다음 날 쯤이었던 것 같다. 병실에서는 수유 교실이 열렸다. 굳게 닫혀있던 커튼이 모두 젖히고 좌우 세 개씩 양쪽으로 자리한 6개의 침상이 드러났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산모들은 모두 비슷한 체형의 똑같은 입원복을 입고 있어, 마치 누가 보면 병원에서 데뷔하는 신인 걸그룹 같았다. 침대 위에 몸을 뉘인 6명의 산모들이 일제히 수유전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곁눈질로 좌우를 둘러봐도 그들 중 나보다 작은 배를 가진 이는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듣는 외부인의 강의가 반가웠다. [입원해서 누워있기] 이외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 만으로 좋았다.
강의는 1시간가량 모유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되도록 모유 수유를 할 것을 권장하는 수업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강사는 두 개의 아기 인형을 가지고 왔다. 실제 아기 크기의 인형을 안고 젖을 물리는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다. 순서대로 인형을 받아 들고 젖을 물리는 시늉을 했고 곧 내 차례가 되었다. 인형을 안아 들자 나는 부끄럽게도 눈물이 났다.
"저는 이거 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아요.”
괜히 민망스러워 수유전문가에게 어물거리며 변명을 하고 있었다.
“키워서 물려야죠. 그러려고 여기 왔잖아요?”
수유전문가는 주저 없이 내 품에 인형을 척 안긴 후 내 오른쪽 젖꼭지를 깡 꼬집었다. 순간 번뜩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엄마, 아기 살리려고 왔잖아요.]
처음 이 병원을 찾아 너를 살려달라 말하는 나를 향해 의료진은 참으로 덤덤하게 이 말을 했었다. 입원 내내 바람에 나부끼듯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머릿속을 지나가던 그 말, ‘아기를 살리기 위해’ 병원에 온 나는, ‘엄마’라는 말. 나는 그 문장을 지나칠 때마다 그래도 힘을 내야지 다짐하면서도, 동시에 도무지 어쩌면 좋을지 몰라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듯 머나먼 우주를 부유하듯, 그렇게나 막막해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