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아들 산이에게.
안녕 아들.
매일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정리했어. 쓰고 보니 이런저런 일이 참 많았다 싶구나.
어때 산아? 엄마 꽤 고생 많이 했지? 나중에 네가 크면 너한테 생색 많이 내려고 했었어. 그런데 글을 쓰고보니 산아, 네가 나보다 훨씬 많이 고생했다는 걸 알았어. 네가 정말 애썼구나. 정말 고생많았어.
네가 떠난 다음날, 네 외할머니는 이렇게 속절없이 떠나는 네가 너무 야속하다고 우셨어. 너 태어나게 하려고 당신의 딸이 했던 고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거야. 나는 그 말에 아무 말도 거들 수가 없었어. 그치만 산아, 나는 알고 있어. 네가 우리 품에 오기 위해, 이 세상의 삶의 바다에 뛰어들기 위해 네가 얼마나 강하게 버텼는지를. 매순간 얼마나 치열하게 성장했는지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잖아. 그리고 외할머니도 너 원망하는거 아니라는 거 알지? 산아, 모두가 너를 사랑했단다. 온 마음 가득히 너를 사랑했어. 아무것도 필요없어. 너는 그거 하나만 알면 돼. 그러면 돼.
산아, 그거 아니?
너처럼 아름다운 아이를 내가 낳았다는 게 나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었어.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고 손가락도 길쭉길쭉한게 얼마나 신기했었는지. 너의 다 자란 모습이 너무나 궁금했어. 너의 걷는 모습도, 뛰는 모습도 궁금했어. 어떤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를까, 너는 어떤 표정을 지으면서 울까. 어떤 음식을 더 먹겠다고 조를까. 어떤 색깔을 어떤 공룡을 어떤 자동차를 좋아할까 어떻게 떼를 쓸까 궁금했어. 너는 이제 평생 나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처럼 그렇게 궁금한 아이로 남아 있겠지.
매일, 가장 높고 예쁘게 뜬 구름을 향해 인사를 해. 그럼 네가 그 작은 손으로 구름 뒤에서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아서 웃다가도 눈물이 나.
나는 요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어떤 순간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어. 너를 생각하면서 또 많이 운단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너를 꼭 한번 안아보고싶어. 그게 어렵다면 너의 손이라도, 볼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싶어. 치료받느라 항상 유리 상자 안에 담긴 너를 밖에서 바라만 봐야 했었지. 마치 백설공주를 바라보는 일곱난쟁이가 된 마음이었어. 너는 그 작은 몸으로 울고, 팔을 뻗고, 아주 찰나지만 웃기도 했었지. 내 목소리를 들으면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 눈을 뜨려 했었어. 그 모습이 참 선명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너를 귀찮게 하는 모든 것들 때문에 찡그린 얼굴이었었지. 엄마랑 아빠는 그것조차 귀여워서 웃곤 했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너를 너무 힘들게 했던게 아닐까, 힘든 너를 보면서 마냥 귀엽다 웃었던 건 아닐까 미안할때가 많아. 나는 다시 시간을 돌려서 똑같은 결과를 맞이한다해도 어쩔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간호사 선생님한테 떼를 써서라도 너를 한번 안아보지 못했던 건 두고두고 마음이 아파. 너를 너무 외롭게 한 것 같아서 내 온기를 너에게 한번도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참 마음이 아파 산아.
매일, 너에게 편지를 써.
따뜻한 햇볕아래 잔잔한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살랑거리면 이 세상도 나름 참 예뻐. 그 조그마한 볕 한줌도 쥐어보지 못한 작은 네손이 슬퍼서 매일 마음으로 편지를 썼어. 네가 있는 그곳은 여기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안온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믿어.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곳에서 웃고 뛰고, 구르면서 자유로이 지내길 바라. 산아. 사랑한다. 내게 남은 모든 것들을 모아 너를 사랑해.
김이산 2023.06.21
사랑하는 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