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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an 26. 2024

지난여름, 산에게

탄생. 너의 작은 울음소리

고위험 산모 치료실로 돌아갔을 때, 내가 오랫동안 머물고 있던 1번 침상은 이미 다른 환자가 입원 중이었다.

나는 1번 병상 맞은편 4번 병상을 배정받고 다시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격리실을 다녀온 직후여서일까. 고위험 산모 치료실이 무슨 호텔처럼 쾌적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29주를 넘겼다. 격리실에 있는 동안 내 몸무게는 오히려 줄어들어 있었다. 다행히 너는 부지런히 자라 1kg을 넘겨 1.2kg으로 추정된다 했다. 이제 어느 때 아이를 낳아도 될 것 같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가족들도 이제 정말 너와 내가 넘길 수 있는 모든 고비를 넘겼다 안심하는 것 같았다.


 산모 병동으로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슬 몸에서 심상찮은 반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큰 출혈이 찾아왔다. 내 상태를 지켜보던 의료진들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자궁 경부에서 슬 출산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말했다. 쉬이 넘어가는 밤이 없었다. 출혈이 날 때마다 초음파실로 가 자궁 내부를 살폈다. 어느 새벽에는 소아과 담당의가 내 곁을 찾아왔다. 산부인과 의료진들로부터 내 모든 상황을 전해 들었고, 출산을 할 경우 이제 아이는 소아과에서 케어받게 될 거라 말했다. 그리고 본인들은 최선을 다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 나를 안심시켰다. 정말 출산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온몸의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6월 20일 늦은 밤. 또다시 출혈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출혈뿐 아니라 주기적인 수축까지 동반되고 있었다. 진통이었다. 수축 억제제의 농도를 올렸지만 이제 약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고위험 산모 치료실 옆 진통실로 옮겨졌다.

 고위험 산모 치료실 내부에는 진통실과 분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모든 곳이 외부인 제한 구역이다 보니 내가 진통을 해도, 심지어 분만을 한다 해도 가족들이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나는 새벽과 아침을 맞이하는 동안에도 퍽 외롭게 홀로 진통을 감내해야 했다. 21일 오전이 되자 점점 진통의 강도는 심해졌다. 수축 약을 올려 하루라도 더 끌어볼까-라는 담당의의 말에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내 고통은 커져가고 있었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남편은 이미 병원에 와있었지만 내 옆에서 손을 잡아줄 수는 없었다. 진통실에는 내 나지막한 신음소리만이 주기적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21일 정오가 가까워지자 자궁문이 거의 다 열리고 진통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나는 침대봉을 붙잡다가 결국 내 곁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의 손을 움켜쥐었다. 고통의 폭은 점차 커졌다. 내 평생 겪어보지 못한 통증이었다. 정수리에서부터 등을 지나 발바닥까지 진득하게 땀이 흘러내렸다. 의료진들은 나를 둘러싸고 소리쳤다. 몸을 비틀지 말아라, 산도가 막혀 아이가 내려오지 못한다. 고르게 숨을 쉬어라, 소리를 지르면 호흡이 부족해서 아이에게 갈 산소가 부족해진다. 누군가 내 내장을 까뒤집는 것 같은 고통에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러한 고통에도 기절 없이 버텨내는 스스로가 싫었다.

 임신 내내 소원했다. 누군가 나를 한대 쳐서 정신을 잃기를. 그러다 아이가 태어날 때쯤 깨어날 수 있기를. 하지만 그런 바람이 무색하도록 나는 임신 내내 단 한순간도 정신을 놓지 않았다. 너를 낳는 그 순간도 나는 맨 정신으로 모든 감각을 기억해야 했다. 오롯이 기억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다 내 안에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태어나던 순간도, 네가 내 몸에서 미끄러져 나오던 감각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6월 21일 오후 2시 58분. 작고 작은 네가 태어났다. 너는 울음소리는 아주 작고 가늘었다.

 왕자님입니다. 축하드려요. 

 내 귓전 가까이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조용히 이야기해 주었다.

 네가 몸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나를 사로잡고 있던 모든 고통도 빠져나가는 것 같이 시원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네 얼굴 한번 들여다보지 못한 채, 그리고 너는 내 품에 한번 안겨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소아과 선생님들의 손에 들려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너의 얼굴이 정말 몹시도, 몹시도 궁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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