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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an 29. 2024

지난여름, 산에게

글을 마치며.

이 슬픔을 언제쯤 완주할 수 있을까. 마음에 기쁨이 깃드는 순간마다 함께 따라오는 슬픔을 상기한다.


 슬픔의 모양이라는 것은 짓궂다. 양껏 기쁘게 누려왔던 크고 작은 삶의 기쁨들을 아무렇지 않게 슬픔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발견해 왔던 사사로운 즐거움은 단단한 발판이나 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우리네 인생에 그나마 발을 내딛고 살아가게 하는 작은 중력이 되어준다. 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슬픔의 얼굴로 둔갑해 버린 순간 세상에 더 이상 발을 디딜 곳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엉뚱한 곳에 묶여 나부끼는 풍선처럼 삶 어느 지점에서 맥없이 허덕이고 있다.

 

 출산 직후 아기를 NICU에 보내고 그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 바로 글을 쓰는 일이었다. 예약해 둔 조리원도 기간을 다 채우지 중간에 퇴소를 했다. NICU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기 위해 일주일에 2번 병원을 찾았다. 30분이라는 짧디 짧은 면회 시간. 아이를 뒤로 하고 돌아서야 할 때면, 아기 홀로 외로우 두고 돌아서는 그 발걸음이 한없이 척척했다. 나는 아이가 NICU에 있었던 기간 동안 먹었던 여러 끼니의 밥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달은 열심히 유축기로 젖을 짰고 그다음 반달은 글을 썼다. 고위험 산모 치료실에 있으면서 '이런 모양'의 임신이 외부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내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가장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임신이 얼마나 얇은가에 대해, 그럼에도 '남들 다 하는 일'이라 쉽게 말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입원 기간 만났던 그 많은 수많은 엄마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담아놓고 싶기도 했다. 온갖 상황이 닥쳐와도 엄마들은 늘 아이가 먼저였다. 엄마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고결하다는 것을 목격했던 소중한 순간들이기도 했었다.


 보통때와 같이 아기 면회를 준비하던 그날 아침, 아이는 몇 시간 만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잡히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나와 남편은 한순간에 우주 한 공간에 가만히 부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쓰던 글을 더 이상 이어 쓰지 못했다. 아이에게 주기 위해 나는 열심히 젖을 짰다.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모든 시간을 비워뒀다. 우리 삶에서 가장 예쁘고 고귀한 것들을 모아 사랑할 마음을,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뒀다. 우리는 그중 어느 것도 주지 못했다. 그 마음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삶 한 곳에 마련해 둔 따뜻한 자리는 아직도 텅 빈 공간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아직 그것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이의 유골함을 들고 남편과 나는 도망치듯 튀르키예로 돌아왔다. 아이에게 배불리 우유 한번 먹이지 못한 것은 언제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따뜻한 빵을 구우면 나는 맛있는 귀퉁이를 떼어다가 아이가 잠든 상자 앞에 놓아둔다. 어딘가에서 배 곪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힘들지 않기를, 작은 무엇이 되었든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이 슬픔을 언제쯤 완주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때로 우리는 멀고 거대한 우주를 알면서도 한 톨의 먼지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처럼. 거대한 슬픔을 벽으로 삼아 우리 역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아마도 나는 이 슬픔을 다 뛰어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게 만약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면, 나는 기꺼이 숨이 찰 때까지 달릴 거라 생각한다. 그것이 너에 대한 사랑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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