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 Miyoung Aug 20. 2015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12

여름이 갔다. 동자랑 토끼와도 안녕.

처음 작업기를 쓰기로 마음 먹은 후-  

작업한 파트별로 나눠 써야 할지,

아니면 날짜순서대로 써야 할지 고민을 했었다.

오늘도 이 고민을 하며 결국 이 둘을 섞어서 글을 쓰기로 한다..(-_-;)


2012년 여름. 6월 마지막  주.


이제 동자와 토끼가 등장하는 마지막 씬의 막바지 편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집도 작업실도 너저분함의 극치!!! 한참 작업이 진행 중일 때는 이상하게 청소가 잘 안됐다.(보통 이것만 끝내고 청소해야지!! 하고 미뤘기 때문에..)  덕분에 집도 나도 너덜너덜...

내가 사랑한 대형 라이트 테이블. 그립구나. 작화지+지우개똥으로 테이블 위가 늘 지저분...

동자와 토끼의 마지막은 영상의 거의 끝 부분에 등장하는 '비눗방울 씬'이었다.

아래는 작업 초기에 잡아뒀던 이 씬의 콘티 부분.

비눗방울이라니.

약간 생뚱맞을 수도 있는데 일방적으로 '하고 싶어서' 넣은 장면이라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다. 나는 아직도  동네 문방구에 파는 비눗방울에 눈길이 가곤 하는데, (그러다 그걸 사서 공원에서 불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린 친구들이 다가와 그걸 뺏아가기도 하고..) 내게 비눗방울은 아주 쉽게 유년기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마법 같은 도구 중 하나다. 여기 애니메이션에서는 '동심'보다는, 지친 사물들의 영혼을 달래는 하나의 '위로'로써 비눗방울이 등장하는데, 그 밑바탕에 깔린 정서는 약간 슬픔 쪽에 가깝다.

  후에 음악을 만든 친구는 이 장면을 '미션을 완료하고 서로 자축하는 씬'으로 해석해서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  의도가 그게 아니었으므로 처음에는 그 의견에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영상의 흐름상 그 역시 나쁠 것이 없었고, 전체 영상에 흐르는 정서가 대부분 슬픔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지라 이런 즐거움의 느낌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이 영상을 보는 관객의 정서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완료된 최종 이미지.

2012년 여름은 무척 더웠던 걸로 기억이 난다.

이 무렵이 다른 때보다 더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동자&토끼 씬이 끝나서 정말 씐났기 때문에.

또 하나는, 동자&토끼 씬이 끝난 후 너무 서글펐기 때문에.

집에 있던 침대겸 책상. 아래는 책상이고 그 바로 윗부분은 침대다. 책상 역시 작화지로 가득 가득.
침대 바닥(시선이 가기 가장 좋은 위치였다.)에 붙여놓은 스케줄표.

 초기 아뜰리에로 작업을 옮겨온 후, 작업 가닥 잡기가 무척 힘든 때가 있었다.

 작업량과 기간에 대한 가이드라인 없이 그냥 일을 진행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굉장히 관대해짐을 느꼈다. 몸이 좀 피곤해지면, 그저 열심히 했구나 싶어 그날 작업을 접는 식. 그러다 보니 진행이 늘어져갔다. 

 결국 전체 작업을 넓게는 한 달, 좁게는 일주일 단위로 쪼개어 스케줄표를 만들고 가장 시선이 많이 머무는 곳에 붙여두기로 한다. 일주일간 완료해야 될 작업량을 손에 쥔 채, 나를 몰아세워가며 일을 했다. 일종의 감독 겸 프로듀서를 겸하기로 한 것.


  덕분에 2012년은 아파서 3,4월 2개월간 한국에서 요양 아닌 요양을 했던 기간 외에는, 그저 작업에 작업에 작업이었던 해였다. 그리 기억될만한 사건사고도 없고 오로지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했던 기억뿐이다. 

그렇게 6월 말, 시간은 빛의 속도로 지나갔고 동자와 토끼씬은 엄청난 작화지를 소비하며  마무리됐다.

며칠간 여행도 갔다 오겠노라 자축하던 그때-


이럴 수가..


 작업 체크를 위해 스토리보드를 확인하니 여태의 작업은 전체의 절반 가량에 불과했다. 나는 절망했다. 1년 반을 했는데 겨우 절반이라니. 영상 마감까지 남은 기간은 9개월. 자축은 옆집 개에게 던져버리고 다시 살벌한 작업판에 나를 세워야 하는 현실이 그 순간에는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지독한 상실감을 맛봤던 그해의 여름. 

 결국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전쟁 같은 작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아래는 동자&토끼씬의 대미를 장식했던 비눗방울씬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reIp0P0LPM&feature=youtu.be

 오랜 기간 이들을 그리면서 서툰 부분도 많았고, 욕심에 비해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이 영상 속에 살아 숨 쉰다 느껴지는 순간 순간은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이자 보람이었다. 더 이상 이들을 그릴 필요가 없어졌을 때부터 맘 속 깊은 곳에서 오랜 벗을 떠나보낸듯한 서운함이 일었다. 씬이 완료되어 일 하나가 덜어진 기쁨은 그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안녕..


...이제 작업기도 4~5편 가량 남은 것 같다.


-<그여자네 집> 씬에 대해서

-<오르골씬>씬

-사운드

-에필로그

순서로 아마 글을 써 내려가지 싶다.


처음 글을 쓸 때에 비해 일정이 바빠졌다. 짬을 내서 글을 쓰기가 점점 힘들어져서 슬프다.

어른은 원래 이리 바쁜 것인가!!




 


  

 





이전 13화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1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