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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Sep 09. 2015

단편 <너무 소중했던, 당신> 작업기_#15

편집의 묘미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얘기가 있듯, 이렇게 몇천 몇만 장의 그림을 그리더라도 이들을 잘 엮어내지 않으면 여태 들였던 노력도 빛을 발하기 어렵다.  


 필요한 모든 배경과 소품, 캐릭터의 애니메이팅을 비롯한 이미지 작업이 끝나면 이제 남은 일은 '편집'이라는 커다란 자루 안에 이들을 집어넣고 서로 잘 버무려지도록 섞는 일만 남았다.

나는 이 편집 과정을 유난히  짜릿해하는 한편으로 생각할 때마다 미간에 힘껏 주름이 잡힌다.  


우선 짜릿한 이유는,


 요리로 예를 들면 어떤 요리를 위해 재료들을 사다가 자르고 무치고 삶고 치댄 후- 후아! 이제 예쁜 접시에 잘 담아 세팅만 하면 되는  것처럼, 여태 생각하고 계획하에 만든 수많은 이미지들이 편집을 통해 영상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모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짜증이 나는 것은,


 늘, 언제나!! 컴퓨터가 엄청난 양의 이미지와 데이터를 제때 소화시키지 못하는 탓에 작업 중 컴퓨터가 다운되거나 버벅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 작업 시간보다 얘(컴퓨터)가 작동되길 기다리는 시간이 무한대로 반복 또 반복된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한편을 끝내고 나면 사용하던 컴퓨터가 하얗게 노화되어 버리는걸 직접 목격할 수 있다.(컴퓨터야 지. 못. 미..)

흔한 컴퓨터의 영혼 탈출. 작업하다 수명을 다 끝낸 내 첫 노트북을 기리며...


그럼 그렇게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지 말고 끊어가면서 편집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게 말처럼 잘 조절되지가 않는다. 

왜냐!! 

편집은 마성의 과정이니까!!!

..........

편집을 하다 보면 내가 어디서 어떻게 끊고 쉬어가야 할지 감각을 잃기 딱 좋다.

마구 버벅대는 컴퓨터 앞에 짜증이 마구 샘솟다가도 불현듯 눈앞에 뿅! 하고 완성되어가는 영상이 보여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 더 보여줘!!'를 외치며 그 다음 부분 편집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컴퓨터가 아닌 내 급한 성격 탓인걸까.(쩝..)

 

옛날(이라고 해봤자  백 년도 안됐다.)에는 지금처럼 컴퓨터나 다른 디지털 기기가 없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촬영과 편집을 위해 특수 장비가 필요로 했다. 

디즈니에서 처음 개발한 multiplane camera촬영 방식

 Multiplane camera촬영 방식은 간단히 포토샵의 레이어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 제일 아래는 제일 먼 거리의 배경판(배경 레이어)을, 그리고 그 위에 차례로 배경이나 캐릭터의 판(레이어)을 얹어 한 프레임씩 설치된 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식이다. 간단한 듯 보이지만 카메라가 고정  앵글 뿐만 아니라 배경과 캐릭터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촬영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테크닉을 요하는 과정. 지금은 그저 집채만 하게 자리만 넓게 차지하는 기계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시대에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이런 설비를 고안해 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랍고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간단히 몇백 몇천 장의 그림을 한 번에 편집할 수 있는걸 생각하면 컴퓨터가 느리다 용량이 딸린다 어쩐다 하는 불평도 참 호사스러운 말이구나 싶다.(그러니 반성.)


 요즘 편집 과정을 간단하게 얘기하면 아래와 같다. 편집 과정의 기본 개념은 위의 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옮겨져 왔을 뿐.


편집의 간단한 예

  작업 소스들을 편집 프로그램으로 불러온 뒤, 저렇게 배경은 제일 아래 레이어로, 그 위에 움직이는 캐릭터 레이어를 얹고, 마지막 그 위에 빛이나 색감을 더할 수 있는 효과 레이어를 얹는 방식으로 편집하고 있다. 

편집으로 완성된 이미지.

  이렇게 각기, 때로는 같이 작업한 컷과 씬들을 한데 모아 전체 영상의 이음새를 살피면 영상 작업이 최종 마무리된다. 간단히 적어두긴 했지만 편집에서의 실수나 빠진 부분이 없나 찾아내기 위해 같은 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살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짜증나게도 늘 확인할 때마다 항상 하나씩 빠진 부분이 눈에 띈다. 나중에는 타이밍이나 영상의 흐름은 괜찮은지, 어색한 부분은 없닌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지인을 대동해야 할 때도 있다. 영상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영상을 판단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반적인 '편집'의 개념처럼 불필요한 컷을 도려내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처럼 공정이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의 경우, 불필요한 컷은 이미 제작과정(프로덕션) 이전에 도려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최종 편집에서 영상의 일부를 잘라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눈물을 머금고 도려내야 한다. 힘들게 작업한걸 잘 알기 때문에 냉정한 판단하에 편집하는 건 늘 힘들다. 

   


2013년 2월 5일. 최종 영상 편집도 끝이 났다.

끝났다!!!!!!!!!만세!!!!!

라고 외칠 줄 알았는데 해지는 저녁, 나는 앙굴렘 집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작게 내쉬는 숨과 함께 '끝났구나..'라고 토해냈다. 마음은 고요했고 큰 심경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그 순간 이제 꽉 움켜쥐고 있었던 손에서 조금씩 힘을 빼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식을 듣고 친구가 부랴부랴 와인과 케이크를 사왔다.

 조그마한 정성일지라도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이 친구가 완성된 영상의 첫번째 관객이 되었다. 
백열등 조명 아래 와인과 케이크(갸또)


 아직 몇 차례의 영상 확인과 사운드 후반 작업이 남아있지만 내가 할 일은 이제 거의 끝났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울고 웃게 했던 프로젝트와도 곧 안녕이다. 이제 사운드 작업까지 더해 영상이 완성되고 나면 더 이상 '내 영상'이 아닌 '관객의 영상'이 되어 내 품에서 더 넓은 곳으로 훨훨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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