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의 끝을 장식한 애니메이션 <바다의 노래>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였던 바다의 노래(원제:Song of the Sea).
바다향이 짙게 베어나는 포스터의 푸른 색감과 맑은 느낌의 제목, 이국적인 그림에서 풍겨져 오는 신선함이 어쩐지 상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니. 아니 볼 수 있나.
아일랜드.
어쩐지 이름에서부터 짙은 풀냄새와 바다내음이 풍기는 것 같은 나라.
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이곳에 관심이 많다. 유별난 이유는 없고, 그저 예전에 그곳에서 경험한 짧은 인턴생활이 마음속 추억으로 남아있어서다. 일도 사람도 예쁘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추억. 그 후로 아일랜드와 관련된 문학이나 작품을 더 눈여겨보거나, 혹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정서를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한'의 정서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가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 치하에 있었던 아일랜드 사람들과 잘 들어맞는 구석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더 귀기울이게 된 것도, 역시나 그 후의 일이다.
브런치 무비데이 행사를 통해 2015년 12월 말, 조금 일찍 <바다의 노래> 애니메이션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본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홀로 씹고 뜯고 맛보느라 이제야 글을 쓰게 된다. 뭔가를 보고 듣고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게 점점 더뎌진다. 예전엔 작품 그 자체만 보는 걸로 끝이었다면 점점 나의 상황과 감정, 그리고 경험에 빗대어 작품을 그윽하게 바라보게 된다는 걸 느낀다. 아마 나이가 들고 삶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작품을 즐기는 눈 역시 더 깊어질 거라는 기대를 하는 건 이 때문인 것 같다.
<바다의 노래>는 순수하고 자연 친화적인 세계관이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아일랜드 전통 신화를 토대로 바다와 동물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녹아들어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요즘처럼 자극을 위한 자극이 난무하는 영화들 틈에서 영상과 이야기 그 자체로 맑은 느낌을 받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또 한컷 한컷이 정성스럽게 그려진- 이국적인 느낌의 아트워크는, 영상을 보는 내내 나를 감탄시켰다. 투박한 듯 섬세하게 그려진 배경과 그 속을 누비는 오밀조밀한 캐릭터들이 화면 가득 어우러져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들리는 울림 가득한 OST 역시 이 애니메이션의 백미.
3D가 주를 이루는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이처럼 개성 넘치는 2D 애니메이션을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간 잠시 잊고 있었던 2D 만의 매력이 이런 거였지!' 무릎을 탁, 칠 만큼 화면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색과 공간의 연출은 마법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또한 평면적인 선과 악의 대비가 아닌 캐릭터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재미있게 곱씹어볼 만한 요소가 많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건 애니메이션에서 그려진 가족 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 속에서 오빠 벤과 여동생 시얼샤, 아빠와 아들, 늙은 어머니와 아들은- '가족'이라는 무엇보다 끈끈한 테두리 안에 둘러싸여 살아가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로 조금씩 어긋나 있다. 그리고 그 어긋남으로 빚어진 오해와 미움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삶에 깊숙한 상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나 애니메이션 속에서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오빠 '벤'과 동생 '시얼샤'의 이야기는, 사연의 깊이를 떠나 어쩐지 한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형제간의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한참 화제인 드라마 '응팔'속에 등장하는 보라, 덕선 자매를 보면서 나는 종종 어릴 때 언니와 격렬하게 다퉜던 순간순간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눈만 마주치면 싸워댔고 몸 다툼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부분 내가 울면 끝나는 다툼들이었는데 그 시작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하찮은 것들이라 기억에 남음도 없다. 그저 서로를 헐뜯기 위해 내뱉기 시작하는 가시 돋친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몸싸움까지 번지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러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밥상을 두고 둘러앉아 밥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잠에 들던 그런 날들이었다. 생각해보건대 자매 혈투의 최고 절정기는 뭐니 뭐니 해도 둘 다 사춘기에 접어들던 10대 때일 것이다. 만나면 전생에 원수 보듯 으르렁거렸고 까닭 없이 미워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동생 시얼샤가 태어남과 동시에 벤에게 닥친 불행은, 어머니의 외적인 부재와 아버지의 내적인 부재라는,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그로부터 빚어지는 불안과 슬픔은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 어린 여동생 시얼샤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만을 바라보느라 동생 시얼샤가 놓인 현실은 등질 수밖에 없었던 '벤'은, 동생의 마음까지 손을 뻗어 안기엔 아직 품이 모자라다. 그 후 여러 사건과 과정을 통해 동생이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삶의 아픔을 눈으로 직접 바라보게 되면서, 벤은 시얼샤를 사랑하는 가족으로 또 자신이 품고 가야 할 동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가족'이라는 세트로 묶여있다 보면 서로의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되려 어려울 때가 많다. 각자가 가진 아픔을 바라본다는 건 결국 서로를 다른 사람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이미 태어날 때부터 뒤섞인 공동체처럼 엮인 '형제'가 서로를 떼어놓고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치고 박길 밥 먹듯 하던 언니와 나도 나이가 들어 서로 뾰족한 부분이 둥글게 풍화된 후, 언제 그렇게 싸워댔냐는 듯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관계가 됐다. 그리고 나는 언니의 10대 역시 나만큼이나 녹록지 않았음을, 그래서 밖으로 꺼내 보이기엔 너무도 뾰족한 그 가시를 집 안으로 들고 와 내게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언니를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였던 그때의 나 역시도- 이해한다.
그때,
보듬기엔 따가웠던 10대 감성의 나와 언니를 추억하며 언제 또 찾아보게 될 애니메이션 <바다의 노래>.
맑은 바다의 기운을 듬뿍 안고 온 이 선물 같은 애니메이션이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 수 있기를, 조용히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