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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Aug 26. 2015

꿈 찾아 삼만리

어린 꿈들에 대한 작은 응원 <귀를 기울이면>

 아- 좀 더 일찍 봤으면 좋았을걸.


제일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든 생각이었다.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일본의 '지브리'라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고 거기서 제작된 몇몇의 작품을 이미 봤거나 보진 않았더라도 이름은 들어봤을게 분명하다. 나 역시 지브리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좋아해왔지만 이름만 알음알음 들어본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이미 비주얼에서 풍겨지는 익숙함과, 여러 번 들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타이틀로 인해 왠지 '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봐버린'듯하게 인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상 이 애니메이션을 본건 유학 중이던 20대 중반을 훌쩍 넘겼던 때였다.


귀를 기울이면_콘도 요시후미 작 

 

 애니메이션은 전반적으로 잔잔하다. 장대비 같은 대찬 갈등이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로봇도 등장하지 않는다. 배경은 학교나 집, 어느 곳에서 볼 법한 소도시이며 소품이나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도 특별함 보다는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기는 평범한 것들이다. 앤티크 가게 소품들도 짠하게 요란스럽기보단 고개를 숙이고 섬세히 들여다보게끔 만드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잔잔함이 허전함과 지루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유행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시대니까. 그럼에도 유독 이런 평온한 느낌의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건 그 안온함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주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장면을 보며 문뜩 내 기억의 파편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나를 그 속에 배치해두고 바라보기도 하는, 그런 여유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좀 더 일찍 못 본 것을 후회했던 건, 여기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보며 그 시절의 나를 떠올라서였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에 대해 얘기하는 평범한 여중생~

 주인공 시즈쿠는 평범하다. 맞벌이하는 부모님과 대학으로 도시에 나간 언니, 그리 큰 사건사고 없는 학교생활을 이어나가는 그야말로 평범한 여중생. 그러던 시즈쿠 앞에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정신이) 세이지라는 남학생이 나타난다. 세이지라는 존재를 통해 시즈쿠는 이성이라는 존재에 눈을 뜸과 동시에, 여태 생각지 못했던 한 인간으로써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아파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풋풋한 두 사람의 애정을 바라보는 것도 참 흐뭇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더 무게 있게 바라본 부분은 둘 사이의 파릇한 사랑보다 시즈쿠가 세이지를 통해 느끼는 일종의 '열등감'이었다. 처음부터 이미 시즈쿠를 이성으로 바라보고 시작했던 세이지의 시선과는 달리, 시즈쿠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달려나가는 세이지에 대해 묘한 동경과 경외심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 아직 세이지에 대한 이성적인 감정도 이런 혼란 속에서 세이지만큼 확고하지 않다. 이렇게 멋진 누군가를 통해 바라본 '나'는 꿈도 야망도 없는 그저 그런 존재. 그를 닮아 이제라도 힘껏 뛰어보리라 애를 써 봐도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간 그에 비하면 나는 아직 걸음마 수준일 뿐이다. 조바심은 점점 시즈쿠를 옥죄여오고 그로 인해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도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 저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나는 나의 보폭으로, 너는 너의 보폭으로 주어진 삶 내에서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시즈쿠의 긴 방황은 끝이 나고 한 단계 성숙한 사람으로 나아가게 된다. 게다가 세이지와 사랑도 성공.(중학생이 결혼을 얘기하다니.. 나름 충격.)  

영화의 하이라이트. 시즈쿠가 개사한 '컨트리로드'를 함께 합주하는 장면.

  태어날 때부터 뭘 할지 알고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15살, 16살- 어떤 어른이 될지, 뭘 하면서 살게 될지보다는 어떤 고등학교에 가게 될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던 그때는 나이가 차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눈에 명확히 보이리라 생각했다. 덤으로 서른 쯤이 되면 '멋진 어른'이 되어 살면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이 다 갖추고 살 줄 알았지. 어쩌면 그때 '어떻게 되겠지' 했던 마음 뒤로는 '진짜 어떻게 되긴 되는 걸까'라는 불안감을 뒤로 감춘채 하루 하루를 보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여기 등장하는 시즈쿠의 마음, 혹은 그 또래에 머물던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이 아마 그러했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세이지같이 확고한 장래를 가진 친구를 만난다면 아마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멘붕을 겪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혹 내가 너무 안일하게만 산건 아닐지-짧게나마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며 스스로 몰아세우길 반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극 중 시즈쿠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문학적 기질을 스스로 시험한다. 혜성처럼 등장하는 10대 작가를 꿈꾸며 글을 써 내려가지만 여러 의미의 벽에 부딪히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더 성숙하게 만들어 나가야 함을 깨닫게 된다. 밤을 지새우고 밥도 먹지 않으며 누군가와 동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시즈쿠의 가쁜 마음이 화면을 통해 절실하게 와 닿는다. 조금이라도 '그랬던 나'를 시즈쿠를 통해 발견한다면 아마 그 모습을 쉬이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이 애니메이션을 봤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른 의미로 위로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 더 나이 들어 이 애니메이션을 만난 것 역시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도 같다.


 지금 누군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꿈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혹은 다른 이의 완전 크고 멋진 비전에 비해 나는 너무 소박한 걸 붙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건 아닐지 서글퍼하고 있다면 작은 꿈을 응원하는 이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라 권하고 싶다.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줄 친구와 그 친구를 위로해주는 다른 친구들이 작은 꿈쟁이들을 위로해 준다. 덤으로 귀엽고 멋진 고양이 캐릭터들도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

  

그 유명한 남작 고양이가 여기에서 등장한 캐릭터다. 나중에 '고양이의 보은'에 주인공으로 데뷔하는 어마어마한 고양이.


 이게 아니더라도 사실 두 사람의 풋풋한 감정(사랑이겠지만 사랑이라기엔 아직 덜 여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간질간질한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풋풋함이 터진달까. 얼마 전에 본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겹쳐지면서 예전 교복을 입고 가슴 설레 하던 때가 생각이 많이 났다.

 

학교, 교복, 여름 방학, 아직 겁 많고 서툰 그들-


 캬-

 슬 옛날 생각에 먼곳을 바라보는 일이 잦은 걸 보니 슬 가을이 불어오긴 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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