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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Oct 17. 2023

해방촌 길

내가 처음 해방촌을 방문한 건 6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순전히 우리 밀로 덕분(?)인 셈이다. 명동 유명 백화점 맞은 편 한 아파트에 살 적이었다. 아파트 3층 정원도, 꼭대기층 하늘 공원도 우리 밀로에게는 작디 작은 놀이터에 불과했다. 녀석의 배변과 활동량 충족을 위해서 매일 서너 차례 외출을 했어야 했다. 아파트 뒤로 조금만 걸으면 펼쳐진 남산 공원은 밀로에겐 천혜의 좋은 산책 코스였다. 오른쪽으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있는 남산공원은 밀로를 온 몸으로 반겨주기에 충분히 크고 포근했다. 공원에서 놀다 지치면(활동력 넘치는 밀로에게 지치는 일은 드물었지만)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돌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도전하던 중 소월길을 따라 새로운 동네로 발길을 돌렸다. 해방촌이었다. 길 건너 마을인 경리단길 끝 하얏트 호텔 인근에 살았던 적도 있었다. 당시에도 와보지 못한 곳인데 밀로와 함께하니 어디든 망설이지 않고 가게 되는 것이다. 


소월길에서 비탈길을 미끌어지듯 내려오니 오거리가 나왔다. 잠깐 고민을 했다. 다섯 갈래로 나누어진 길이 모두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알 길이 없었다. 나와 밀로는 마치 높은 동산의 꼭대기에서 방향을 잃은 존재들처럼 우뚝 선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냥 왼쪽으로 가보자, 밀로.”

밀로를 쳐다보며 내가 이야기하자 녀석도 좋은지 나와 눈을 맞추친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오던 길의 반대 방향이므로 집과 더 멀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밀로와 함께라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은 늘 신나고 설레었다. 동그런 동산의 아래로 발길을 옮겨 조금 내려가자 런더리 프로젝트라는 세련된 빨래방이자 카페가 보였다. 외부 테라스가 있어 이 후에 밀로와 올 수 있는 곳이다. 비탈길은 계속 이어졌다. 종종 걸음으로 조금 더 내려가 동산의 중턱즈음까지 내려오자 강아지 유치원이 보였다. 밀로를 하루 정도 맡길 곳을 찾고 있었는데 오호! 잘 됐다 싶었다! 살며시 외부의 철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니 이내 커다란 통유리로 된 벽을 통해 내부 풍경이 훤히 보였다. 소형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남감을 뺏기도하고, 서로 술래잡기라도 하는지 실내를 뱅글거리며 뛰어다고 있기도 했다. 어찌나 재밌고 신나게 노는지 모두들 웃는 상에 혀가 밖으로 늘어져 헥헥거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 밀로같은 중형견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에게 밀로도 놀이에 동참할 수 있는지 문의하자, 먼저 밀로가 작은 아이들에게 젠틀하게 행동하는 지 테스트를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강아지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한 질문인데, 우리 밀로는 너무 잘 노는 나머지 가끔 젠틀의 단계를 넘을 때가 있기는 하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른 강아지들과 놀고 있는 밀로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그녀는 필요할 때 오라며 허락의 사인을 해 주었다.


친구들과의 짧은 놀이를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다시 해방촌 비탈길을 걸어 내려왔다. 이제는 제법 평지의 모습이 갖추어졌고, 주택이 주였던 윗쪽과는 달리, 양쪽으로 수퍼와 철물점, 목재를 다루는 가계들 같은 상점이 조금씩 보였다. 조금 더 내려오니 블로그에서 맛 집이라고 했던 한 햄버거 집이 보였다. 처음 방문하고 잠깐 둘러 보았는데도 이 곳은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있는 제법 조용한 동네같았다. 옆 동네인 화려한 경리단길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 간직한 소박한 곳이었다. 길의 끝에 다다르자 오른쪽으로 일렬로 쭉 늘어선 장독대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집 뒷마당에 있을 법한 옹기들이 일층, 이층, 삼층으로 쌓여 있던 인상적이었던 곳. 해방촌 길. 이제는 프랑스로 돌아간 밀로와 처음 만난 해방촌은 그렇게 새롭기도 모험적이기도 고요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이 길도 많이 변했다. 더 세련되지고 더 화려해졌다. 더 활기차지고 더 모던해졌다.


그러나 어떤 곳을 처음 대면할 때, 그 곳의 첫 이미지는 수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듯, 나는 여전히 해방촌을 처음 발견했던 그 날이 어제처럼 기억난다. 그 날의 그 선선했던 공기가 여전히 내 뺨에 생생하다. 밀로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여전히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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