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플러 Miyoung Nov 26. 2023

네로

네로. 강아지 이름이다. 우리집 강아지 이름이다. 우리집에 살았던 강아지 이름이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에 우리와 함께 살았던…

네로는 내가 열살때 즈음, 어느 여름날 저녁 우리집으로 왔다. 포도넝쿨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더위가 한 풀 꺽이고, 초저녁이었다. 여름날의 초저녁은 여전히 낮처럼 환했다. 그 날은 초여름이었는지 선선한 바람이 포도 넝쿨 사이를 지나 뒷마당 처마밑을 지나 담벼락을 타고 텃밭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심어 놓은 토마토가 익어가는 풋풋한 냄새를 맡으며,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아직 어린 포도 송이 아래서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낮동안 읽었던 교과 책과 슥슥 그림을 그리던 스케치북을 정리하고, 접었다 폈다하는 평상을 펼쳤다. 엄마를 도와 언니들은 상위에 수저를 놓고, 반찬을 놓았다. 이제 메인 요리인 도치 김치볶음을 가운데에 놓고, 궁색이 맞게 멸치회, 김치, 김 등을 놓았다. 상차림은 매번 간단했다. 농사일을 하는 엄마는 화려하거나 정교한 반찬을 할 힘이 도대체 없었을 것이다. 빠른 시간에 7식구가 먹을 밥과 반찬을 하려면 웬만하면 간단하게 하는 게 상책이다. 


엄마와 언니들과 오빠들이 저녁상을 준비하고 주위에 둘러 앉았을때다. 해는 조금 있으면 점점 더 정 서쪽으로 가까워 질 것이다.


그때였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뒷마당으로 다가오는 발걸음이  다르다고 느껴졌을까? 앞마당을 지나고 부엌을 지나 뒷마당으로 나온 아버지. 포도넝쿨쪽으로 오는 모습이 왠지 평소와 다르게 기분이 한층 고조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디서 또 술 한잔을 하셨을까?’ 그런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는 양손에 조심스레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까만색이었다. 꿈틀거렸다. 아버지는 양손을 우리쪽으로 내밀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와 살게될 강아지란다. 까만 녀석이 꽤 귀여워서 데려왔지. 이래봬도 품종이 있는 녀석이야.”

아버지는 강아지가 치와와 믹스견이라고 말씀하셨다. 치와와와 우리의 전통 강아지인 발바리의 믹스를 말하는 듯 했다. 아버지 손에 들려있는 까만색 작은 강아지는 아직 입과 양 발바닥이 분홍빛으로 너무도 여려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아버지의 손에서 쌕쌕 자고 있는 강아지를 쓸어 만지며 그 어리고 여린, 정말이지 바람 불면 날아갈지도 모를듯한 그 어린 생명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와~, 이 작은 아이가 우리가 살게 된다고?’

까만 털은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다. 아직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은 듯 했다.

강아지를 돗자리 위에 내려 놓으니 더듬이처럼 더듬더듬 걸으며 이리 저리를 배회했다. 엄마를 찾고 있었다. 아직 젖을 떼지 않은 갓난 아이가 우리집에 왔다.

작가의 이전글 명상 경험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