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는 우리집 강아지 이름이다.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까만 강아지. 네로가 우리집에 온 날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내가 열살때 즈음이었다. 포도넝쿨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더위가 한 풀 꺽인, 초저녁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포도 넝쿨 사이를 지나 뒷마당 처마밑을 돌아 담벼락을 타고 텃밭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우리는 토마토가 익어가는 풋풋한 냄새를 맡으며, 아직은 어린 포도 송이들 아래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와 오빠는 낮동안 보고 있던 책을 정리하였고, 언니들은 엄마를 도와 큰 상 위에 밥과 반찬을 놓고 있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 날도 도치 김치볶음, 멸치회, 김치 그리고 김과 같은 것이 반찬이었지 않았을까 한다. 상차림은 비교적 늘 간단했다. 저녁식사 준비를 마치고 모두가 상 주위에 둘러 앉았을때였다.
쿵하고 대문이 힘차게 열리는 소리가 난다. 아버지가 돌아오셨나보다. 삐걱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뒷마당으로 다가오는 아버지의 발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앞마당을 지나고 부엌을 지나 포도넝쿨쪽으로 걸어 오시는 모습이 그날따라 왠지 달라보였다. 평소와 달리 미소를 띄고 있었고, 마치 어린아이라도 되신 듯 기분도 좋아 보였다. ‘어디서 기분좋게 술 한잔을 하셨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잠시 아버지는 당신의 가슴쪽으로 손을 뻗더니 점퍼 안에 있던 무언가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강아지였다. 아직 눈도 제대로 안뜬 어리디 어린 강아지. 까만색이었다. 아버지는 양손을 우리쪽으로 내밀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와 살게 될 강아지란다. 까만 녀석이 꽤 귀여워서 데려왔지. 이래봬도 품종이 있는 녀석이야.”
아버지는 강아지가 치와와 믹스견이라고 하였다. 까만색 작은 강아지는 아직 입과 양 발바닥이 분홍빛으로 너무도 여려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아버지의 손에서 쌕쌕 자고 있는 강아지를 쓸어 만지며 그 어리고 여린, 정말이지 바람 불면 날아갈지도 모를 어린 생명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와~, 이 작은 아이가 우리가 살게 된다고?’
까만 털은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다.
강아지를 돗자리 위에 내려 놓으니 더듬더듬 걸으며 이리 저리를 배회하는 것이다. 엄마를 찾고 있었다. 아직 젖을 떼지 않은 갓 태어난 강아지. 네로와 우리 가족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네로는 무럭무럭 자랐다. 여름에 와서 가을을 지나 겨울을 나고, 봄을 지나 다시 여름을 살았다. 갓 태어난 어린 강아지는 엄마 젖대신 우유를 먹기 시작하고, 사람이 먹는 밥을 함께 먹었다. 그렇게 하기를 14년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