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네로가 우리 집에 온 건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유난히도 선선한 바람이 불던 여름날 초저녁. 엄마와 언니들은 당시 여름날에는 늘 그랬듯 뒷마당 포도나무 넝쿨 아래에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오빠와 상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책과 공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쿵 하고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마당을 지나고, 부엌을 지나, 우리가 있는 뒷마당으로 향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다.
때마침 외출하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특유의 갈색 점퍼 속에 무언가를 한 손으로 정성스레 감싸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 양손으로 떠받듯이 들고는 우리에게 내미는 것이다. 꼬물꼬물.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어디론가 가고 싶어 발버둥을 치는 듯한 그 작은 물체는 다름 아닌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까맣고 까맸다. 태어난 지 2주나 되었을까. 아직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까만 강아지는 감은 눈으로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세상의 온갖 향기를 모두 맡고 싶은 것인지 코를 킁킁거리며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강아지가 이리저리 움직이니 아버지는 떨어질세라 조심스레 돗자리 위에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나는 돗자리 위에서 꼬물거리는 살아 숨 쉬는 그 생명체를 보고 있자니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무언가 숭고하기까지 한 듯 그때까지 경험하거나 느껴보지 않았던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감싸주고 보호해 주고 싶었다.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그 생명체는 여리고 따듯하고 사랑스럽고 완벽해 보였다.
강아지를 본 게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네로 이전에 셰퍼드가 있었다. 작고 어린 나에게 셰퍼드는 왠지 무섭고 가까이할 수 없는 커다란 개였다. 그렇다. 강아지보다는 개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 개에서 나는 앞서 언급한 그런 여리고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랬다. 그리고 무섭기만 했던 그 개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개가 사라지는 날 작은 오빠는 방문을 잠그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큰 개가 사라졌음에 대한 안도감과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을 뿐.
성인이 되어 알았다. 큰 셰퍼드는 내가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었고, 내가 좋아서 앞발을 들었다는 걸… 그리고 개는 영문도 모른 채 팔려 갔다는 걸.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먹이로 팔려 간 게 아니었다는 걸 후에 알게 되았다. 셰퍼드를 너무 갖고 싶어 매일 찾아오던 그 개장수 집으로 갔다고 했다….
어린 네로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네로는 위에서 말한 대로 까맸다. 까만 고양이 네로가 아니라 까만 강아지 네로로 불렸다. 오빠의 아이디어였다. 로마의 네로 황제의 이름을 빌렸다고 한다. 부모님은 첫째 아들이자 학교 우등생인 오빠의 의견을 존중하고는 "그래, 네로가 좋겠구나!"하고 이름을 허락해 주셨다. 네로는 그때부터 이름을 가지고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살았다. 이름 그대로 네로 황제처럼.
네로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반려견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개는 밖에서 사는 동물이고 사람과 함께 밥을 먹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로는 우리 가족과 똑같이 집안에서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며 사람처럼 살았다. 아니 오히려 이름 따라 우리 집에서는 사람보다 더 고귀하고 자유롭게 살지 않았을까.
네로는 문을 여는 법을 터득하고는 스스로 대소변을 가렸고, 대문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고는 지루해지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네로의 털을 정리하고 얼굴과 발을 닦아주는 일을 반복했다. 밤이 되면 우리 가족은 네로와 함께 자려 서로 눈치 게임을 하기도 했다. 누구와 함께 자느냐는 오직 네로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었다. 우리는 각자 내심 네로의 지목을 받고 싶어 과자와 장난감으로 네로를 유혹하고는 했다.
네로는 장난도 잘 쳤는데,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고 잔 샤프의 고무 부분이 여지없이 이빨 자국과 함께 떨어져 나가 있었고, 나의 긴 머리카락은 자주 잘근잘근 씹혀 뭉텅이로 반토막이 났다. 그럴 때면 나는 한 번씩 크게 소리를 지르며 네로를 혼내고, 엄마에게 이르곤 했다.
"아! 이게 뭐야 네로! 내 머리! 내 샤프! 이거 엄마가 새로 사준 건데!, 엄마! 네로가 다 망가뜨려 놨어!"
그러나 그런 순간조차 네로는 너무도 천진난만했고 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모른 척을 하는 것이다.
작고 귀여운 네로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지나 청년기, 성인기, 노견기를 우리와 함께했다. 초등학생 3학년 때 만났고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함께였다. 그리고 어느 날 동물병원에서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네로는 나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고, 사춘기와 성인이 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함께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니었다. 요즘 사람들이 반려견에게 하는 것처럼 맛있는 고기와 간식, 때에 맞는 영양제를 주거나 예쁜 옷을 입히지도 않았다. 우리가 네로에게 해주었던 건 그저 몸이 쉴 수 있는 공간과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음식뿐이었다. 그리고 사랑. 그렇다. 특별한 것도 없는 가족애를 주었을 뿐.
언젠가 생각했다. 네로가 없었다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사랑과 조건 없이 내어줌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네로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면 나를 기다렸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세상 그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 근처를 산책하러 나가면 늘 동행했던 나의 영원한 친구였다.
사람들은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한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이 고통으로 물들 때, 수많은 조건으로 힘들고 괴로울 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이제 와 회상해 보면, 네로는 늘 나를 지지해 주었고,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던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영혼의 친구였다. 존재 그 자체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