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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18. 2023

향수

“저는 비눗물을 일부러 다 씻어내지 않고 남겨뒀었죠. 그러면 하루종일 비누향이 나서 기분이 좋아 지거든요.”

예전에 한 유명디자이너가 한 말이다. 그가 어릴 적엔 향수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그렇지만 피부에 트러블이 나지 않았을까?’ 들으면서 괜히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세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트러블이 당연히 생겨도 비누향이 좋았다는 그. 그는 향기 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단다.


요즘은 향수도 쉽게 구할 수 있고 향도 여러 가지다. 어떤 향수를 뿌리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다고 본다. 비누향을 좋아하는 사람, 진한 장미향을 좋아하는 사람, 시원한 숲속향, 사랑스런 플로럴 향, 고혹적인 머스크향 등…. 사람마다 좋아하는 향이 있다, 그리고 그 향은 한 사람을 규정하는 고유한 아이덴티디가 되기도 한다. 나는 어떤 향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을까. 


해방촌에는 수제 향수 집이 몇이 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곳이 바로 이곳 프레즌트 향수 집이다. 이 곳을 자주 지난다. 지날 때 마다 가게 안쪽 끝에서 입구쪽 통창을 향해 앉아 있는 주인과 눈이 마주친다. 그는 주로 가로로 3미터 세로로 1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 뒤에 앉아있는데, 동그란 안경을 쓴 모습이 향수집 사장님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계 수리공 같다. 풍기는 이미지가 조금 경직된 듯하기도 해서 선뜻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졌다.


오늘은 용기를 내고 느닷없이 발을 들였다. 아마도 옆집에서 산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핫초코를 배불리 먹은 후여서가 아닐까. 역시 기분을 업시키고 자신감을 주는 음식은 달달하고 풍미넘치는 초콜렛과 바닐라의 조화가 아닐까. 


가게에 들어서니, 사장님이 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다. 내가 긴장한 걸 눈치라도 챈걸까. 어찌됐든 따듯한 음성에 갑자기 온몸이 이완되었다. 아 어쩌면 가게에서 풍기는 향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 있는 모든 향을 천천히 모두 다 맡아봐도 됩니다. 걱정마시고 구경하세요.”

의외로 친절한 주인의 음성에 고개를 돌며 한 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참 새로운 세상이군, 겉모습과 속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역시 사람은 오래 지켜봐야 하는 건가. 아니다. 이 경우에는 그 논리가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겉과 속이 달라.’ 그래 이 경우에는 이 논리가 적합하다. 겉으로 매우 무뚝뚝해 보이고, 거리감이 있어보였던 사람인데, 설명도 따듯하게, 행동도 따듯하게, 배려도 따듯하게.

‘역시 장사를 할 줄 하는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나는 나의 향이 궁금했다. 설명을 들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향을 찾기 위해 한 병씩 돌아가며 향을 맡고 뿌려기 시작했다. 향수병은 족히 1000가 있는 듯하다.

‘하! 언제 다 맡지?’

걱정 어린 생각도 잠시, 병을 하나씩 들고 향을 맡는 순간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 평온하고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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