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책의 첫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나의 일상과 대입을 하곤 한다. 스토너Stoner. 존 윌리암스 John Willaimas가 저자이며 1965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소설은 1910년, 스토너가 19살 때부터 시작된다. 읽자마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농부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내가 중2 때, 88 올림픽을 미처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14년이나 아버지와 함께했으나, 아버지를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버지는 속내를 잘 드러내는 분이 아니셨다. 엄마와의 관계도 분리되어 있었고, 자식들과도 살갑게 지낸 적이 드물다.
소설의 초입에 나오는 배경이 아버지의 일생과 왠지 닮아있다. 그저 농부의 집안이었다는 것. 공부를 하기 위해 멀리 가야 했던 것. 그러나 가정 형편 상 공부를 모두 마치지 못했던. 그래서 또다시 멀리 공부를 하러 떠난 사람은 아버지의 아들. 한 세대가 훌쩍 지난 나의 큰오빠, 그러니까 아버지의 큰아들 이야기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조금 과장해서 소설 속 배경인 1910년대와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소설이 주는 이야기의 힘이 그렇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자기계발서보다 진한 여운이 있다. 감정의 끝을 부여잡고 되찾아야 하는 기억이라도 있는 듯, 나의 머릿속을 부단히도 헤집게 된다. 안개처럼 스며든 장면들은 쉬이 놓아지지 않는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늘 부족했던 추억에 집중하곤 했다. 조금 더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간간이 떠오르는 추억은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조금 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아니다. 이제와 보니, 아버지와의 추억은 그렇게나 많을 수 없다. 14년이나 함께 생활하면서, 나는 충분히 아버지를 경험했다. 언뜻 보기에 말수는 적지만, 유머러스했던 아버지는 나와 너무도 닮은 사람이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영락없는 예술가였다. 글을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고, 어릴 적 공부도 잘했던 영리하고 다재다능했던 사람이었다. 이장으로서 두 마을을 챙기셨던 대단히 책임감 있는 리더였다. 엄마와의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쉬웠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이해가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좋은 흔적을 남기고 간 분 중 하나이다. 원망은 사라지고, 한 인간으로서 대단한 삶을 살다 가신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안타까운 점은 있다. 아버지 스스로 행복한 기억으로 삶을 마감했는지 알 길이 없다. 추정하건대 아쉬움이 많았던 삶이 아니었을까.
인생을 살다감에 좀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내일 죽는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 말할 수 있을까, 아니 느낄 수 있을까.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즐겁고 사랑 넘치는 매 순간을 살기로 결심했었는데, 그런 결심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스토너를 읽으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행복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가 살아갈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는 쓸모없다고 치부해 버린 소설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