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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28. 2023

용산 발전사

15여년 간 용산에서 지내며 이곳의 풍경이 바뀌는 걸 자주본다. 건물이 있었다 사라지고, 카페였다가 주차장이 된다. 갤러리였다 레스토랑이 되고 그리고 채워졌다가 비어지는 곳… 서울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 중 한 곳이 아닐까. 지인의 말에 의하면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꼭 용산에 살더라 고 한다. 산이 있고 서울의 중심부에 있어서 그런가보다 라고. 그의 말이 맞다. 나의 경우에는 아무튼 그랬고, 지인이 아는 지인도 그랬고, 그 지인이 모르는 나의 지인의 경우도 그랬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라함은 아마도 북미나 유럽쪽을 가리키는 말일 지도 모른다. 


처음 삼각지에 자리를 잡았을 때 아는 분이 ‘돌아가는 삼각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삼각지에 육교가 있었다는 데 육교를 본적은 없다. 역과 바로 연결되는 아파트 건물에 사는 편리함만 보았을 뿐. 


처음 이 곳으로 오면서 서울이란 타국(도시)을 경험했다. 서울에는 남대문과 남산, 전쟁기념관과 이태원, 미군부대 그리고 이마트가 있었다. 역시 우리에게 의식주는 가장 소중한 요소임엔 틀림없다. 의와 주가 해결되니 식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근처 이마트는 내가 있었던 캐나다의 메트로나 프로비고, IGA와 비슷했다. 다양하고 신선한 물건들을 한 곳에서 보고 구입하기에 좋아 자주 갔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마트앞에서 불을 보고, 사람들의 아픔을 접하며 의식주를 떠나 이곳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측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에서 치솟는 매캐한 연기와 소음, 순식간에 치솟는 불, 용산역 앞에서 본 분홍빛 조명들. 밝은 불빛과 핑크빛 조명이 언제나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음을 알았다. 그 화려함?안에는 눈물과 애환이 있었다.  삶에대한 무거운 책임이 있었다. 가족을 지켜야하고, 나를 지켜야하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살아가야하는… 가볍지만은 않은 삶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왕 사는 거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왜 일까? 어둠보다 빛이 강하고, 슬픔보다 기쁨이 더 사랑스러워여서가 아닐까. 동전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게 삶이라고 그랬다. 내가 이 의미의 정당성을 깨달은 건 몇 년 전이었다. 나에게 가장 아픈 슬픔이 왔을 때, 그 슬픔이 지지대가 되어 나를 일으키는 소중한 경험임을 알았다. 


이태원에 미군이 사라지는 대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 청년들의 발길이 늘었다. 사라지고 비어진 자리에 새로움이 들어서는 건 삶의 순리가 아닐까.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것이 옳고 틀리고는 없다. 그저 어떤 것이 존재할 뿐. 


어느 밤 한때 우리가 지냈던 곳을 지나며 창문 넘어 새어 나오는 노란 조명을 볼 일이 있다.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릴때도 있고, 고요한 불빛만 영롱히 비출 때도 있다. 우리가 바꿔놓은 커튼이 여전히 드리워져있을 때, 우리가 장식한 조명이 여전히 빛을 내고 있을 때, 지금 그곳의 사람들과 우리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삼각지에서 후암동, 경리단 명동 해방촌을 거치며 써내려간 나의 용산발전사는 늘 향하고 있었다.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이곳에서의 생활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하나보다.


그래서…용산 발전사는 결국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느 곳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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