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플러 Miyoung Aug 11. 2023

이태원 골목길

어제는 사는 곳 근처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은 시골이든 도시든 그 특유의 감성이 있다. 어릴 적 마을 골목길을 걷을 때 동네 친구집의 담 밖으로 빼꼼하고 얼굴을 내민 커다란 모란꽂을 본 적이 있다, 담은 나와 너를 갈라 놓았지만 그 사이에 애틋한 감성이 드리워져있다. 친구가 집에 있는지 궁금해서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밀어 볼 때고 있고, 목청 높이 친구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골목길에서는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이태원의 골목길에도 담장이 많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들어서 있다. 어떤 길에는 빨간 벽돌집이 한 시기에 지어졌는지 제법 일괄적이고, 다른 골목길에는 흰색 철 대문이 정원과 연결되어 있어 밖에서 대문안을 들여다 보는 재미도 있다. 또 어떤 골목길에는 파란 대문집에 또 다른 골목길에는 담장 높은 회장님 집이… 골목길마다  모습이 제각각이다.


오늘 아침엔 처음가는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다. 갈 길을 찾아 두리번 거리다 택시에서 내리는 한 여인을 만났다.  이른 시각부터 코스코 쇼핑백을 들고 어디론가 바삐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면 큰 길이 나올 것 같은 마음에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가 또 다른 골목길에 들어서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양 쪽의 집을 구경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집 담 넘어로 풍성하게 뻗어있는 대추나무를 발견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모습이 싱그러웠다. 풍성한 연초록  잎사이로는 아직 설익은 대추가 주렁주렁 열어있는데 참 탐스럽게 보였다. 대추를 하나를 따서 입에 넣어 음미하니, 여름냄새가 물씬 풍기는 파란 대추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대추열매의 특성상 덜 익어도 시지않고 달기만 했다. 잠시 대추 맛에 빠져 있는 사이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여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아침에 종종 걸음으로 그녀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이내 또다시 추적추적 또르륵… 떨어지는 빗줄기와 골목길만 남았다.


천천히 골목길을 걷는 사이 어느 집 앞에 무심히 놓여 있는 오렌지색 오토바이. 잠부렐라 라는 브랜드이다. 열린 대문 안에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강아지 집. 집안이 비어있는 걸보니 바둑이는 외출 중인가보다. 비가 오는 이 아침에 어디로 마실 간 건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이태원은 뒷골목을 걷는 즐거움이 있다. 

조용한 주택가에 마치 작품처럼 자리하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집들. 사람사는 집 큰집 작은 집 단독주택 빌라 벽돌집 마당이 있는 집 정원이 잘 정돈된 백일홍이 화려한 집 전나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집 대기업 회장님집이 사는 멋들어진 집, 일반 서민들의 집…


산책을 좋아한다면 골목길을 걸어보자.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보다는 만물이 피어나는 초록한 봄이, 땅이 얼어 경사진 곳에서 위험천만한 걸음을 옮기는 한 겨울보다는 단풍이 한창 물드는 가을이 어떨까. 꼭 봄이나 가을이 아니어도 시린 손을 주머니에 잠깐씩 넣어도 괜찮은 계절이나 더위가 한 풀 꺽인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뒤에도 좋겠다.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언제나 그 시간, 그 장소가 주는 고유의 운치가 있는 이태원의 골목길. 나는 후암동 골목길도 경리단 골목길도 해방촌 골목길도 좋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주치는 장소와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연의 일치를 즐기고 숙명으로 다가오는 순간도 좋다. 모든 골목길에서는 진한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작가의 이전글 전깃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