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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ouvely Jul 22. 2023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이건 무슨 사직서?

그럼, 그럴 수 있지.

내 안에 어디서 용기가 샘솟은 걸까.

더 이상 이루고 싶은 목표가 사라졌고 시간을 좀먹는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고민을 수차례 반복하고 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상급자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입 밖으로 퇴사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공기와 마찰을 이루며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기다린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락을 받았다. 영양분을 더 이상 뽑아낼 것이 없다는 것처럼 네가 나가도 아쉬울 게 없다는 태도는 잘한 결정임을 입증해 주는 듯했다.  이렇게 쉬운 게 퇴사였구나 그동안 혼자 마음고생하고 미련하게 참은 게 억울하고 공허했다. 




찬 사람은 나임에도 차인 느낌이 드는 꺼림칙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 근무일을 향해 막바지에 향해가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울렸다.



" 퇴사하신다고 전달받고 연락드렸습니다. 통화 괜찮으신가요?"

- 아.. 네!

"한 회사에서 10여 년 있는 거 쉬운 일 아닌데 아쉽지 않아요?"

- " 아쉬움이라..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상태로 일을 한다는 건 팀원들에게 민폐만 끼칠 뿐이라서요.."

" 그럼 육아휴직이라거나 리프레시 휴가를 사용해 보시는 건 어때요?"

- "마음 써주셨는데, 퇴사에 대한 의사가 확고해서요..."

"렇군요. 집안의 가장인 저는 부러운 건 감출 수 없네요. 하하하 "



통화가 종료되고 순간 목이 메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 되려 전화로 힘든 건 없냐고 물어봐주신 게 유일하게 물어준 사람이라 그랬던 거 일지도.


그렇게 나는 백수가 되었다. 






반년쯤 백수로 지내고 있었을 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금세 여유로운 하루 일상에 적응했다. 

평화로운 일상에 변주를 가져온 전화 한 통이 울렸다. 퇴사 소식을 접한 퇴직한 선임 선배님이 연락이었다.

용건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추천하고 싶은 팀장자리가 있다고 하셨다. 

일을 아직 하고 싶은 마음이 없던 터라 당황했는데 팀장이라니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다시는 같은 일을 하지 않게 다며 큰 소리 내며 퇴사했던 나였는데 어떻게 보일지 앞이 깜깜했다. 



팀장 경력이 긴 동기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거면 연봉 협상에 있어서도 유리하고, 무엇보다 팀장 경력이 없는 내게 기회라는 말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기회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까짓 거 해보고 생각하자.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경험치로 남기던지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말이다. 그렇게 엉겁결에 팀장이 되었다. 난관은 빠르게 찾아왔다. 기존 팀장 자리를 넘겨받는 기간이 일주일 채 남아있지 않았고 인수인계를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어찌할까. 어떻게든 욱여넣어야 한다. 모든 말을 노트에 적으려고 노력했고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쏟아냈다. 그렇게 팀장 자리에 정식으로 배정받고 자리에 앉았다.


회의와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다 보니 오전이 삭제되어 오후에는 집중해야지 다짐하던 순간이었다. 한 직원이 드릴 말씀이 있다면 면담을 신청했다. 싸한 느낌은 있었지만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힘겹게 입을 떼고서 퇴사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어떤 말부터 해줘야 할까. 어떤 힒듬이 있었는지 듣고 보니 많이 지쳐 보였다. 다른 팀장에게 듣자 하니 이 직원은 챙김을 받지 못했다고 그렇지만 팀장과 끈끈한 게 있어서 팀장이 퇴사를 했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을지 모른다는 거였다. 일주일만 나와 일을 해보고 결정하자고 그를 다독였다. 퇴사를 했던 선배로서 그의 최종 결정이 퇴사일지라도 진심으로 잘되길 빌어줄 거지만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한편에 있는 건 욕심일까. 



솔직한 심정으로 섭섭했고 두려웠다. 전 팀장과 팀원들은 이미 완벽한 하나가 되었는데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가서 전 팀장만큼 관리를 해줄 수 있을지 걱정만 쌓여갔다. 그런데 팀장이 된 첫날 퇴사의사를 밝힌 직원이 있다니 불청객이 와서 괜히 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으로 첫날을 마무리했다. 





어떻게 퇴사를 보고 드려야 할지 막막하던 때 김연의 저자의 '팀장의 감정 사전'을 읽게 됐다. 몸담고 있던 팀의 팀장 보직을 맡게 되고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날 것 그대로 담겨있다.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오면 대부분 퇴근 시간이고, 오늘 내가 받은 숙제를 지시해야 하는 데 팀원들은 다 집에 가고 없다. 상사가 내일 아침에 보자고 했는데 어쩌지, 퇴근했는데 연락을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팀원에게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서둘러서 준비해 달라고 구구절절 메일을 보낸다...(중략)"

- '팀장이 감정 사전 中





"아니, 불사르면 안 돼요. 그럼 아무도 팀장님처럼 못 해요." 선배의 단호한 한 마디가 힘겹게 타오르고 있던 장작에 물을 쫙 끼얹었다. 너무도 맞는 말이었다. 분명히 후배들한테 귀감이 되고 자극을 주는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불사르면 재만 남는다. "


초반에 열정 넘치는 신입 팀장으로 범할 수 있는 실수를 겪었던 에피소드부터 직원과 소통하는 방법, 퇴사를 하고 싶다는 직원을 대처하는 자세 등 신입 팀장이라면 맞장구를 칠 내용으로 때로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를 받고 저자는 어떻게 헤쳐냈는지를 통해 그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팀장에 국한되진 않는다. 팀장과의 충돌이 잦은 직원이라면 충돌에서 조금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직원입장에서 더 오래 지냈던 나로서 팀장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퇴근시간에 임박해서 업무를 요청했던 팀장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미리 팀장님의 생각을 알았다면 기분을 털어내기 위해 보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 텐데란 생각도 든다.  





부장님께서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다. 팀장이 되고 나서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로서 적응하는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무리하면 탈만 난다. 실수를 최대한 적게 하도록 노력하되 전 팀장의 자리를 메꿀 수 있도록 강약을 조절하는 시간을 우선시 하겠다고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마음을 언젠가 직원들도 알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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