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신다 vs 안 마신다
최근 이직을 하고 큰 변화는 술자리가 빈번하다는 사실이다. 술 안 마시는 사회생활 못하는 애로 낙인되어 무슨 낙으로 사냐는 말을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질지경이다. 그럼에도 맥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술을 끊었다고 하면 불편해한다. 혼자 술 안 마시면 재미없지 않아요? 무슨 재미로 살아요?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신기한 눈을 하고 바라본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는지 웃으며 술 안 마시고 술 마시는 텐션으로 삽니다라고 답한다. 항상 술잔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언제부턴가 불편해졌다. 애주가들이 많은 회사를 다녀서일까. 퇴사를 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고민을 했을 때, 신입이 술을 안 마셔도 되는 회사가 있긴 할까 걱정이 엄습했다.
왜 술과 이별을 했을까.
원 없이 술을 먹어봤다 생각한다. 많이는 못 마셔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했고 술을 빼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부터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2주에 한 번 마시던 술자리를 한 달에 한번 서서히 줄여갔다. 만취로 침대에 누워서 회복을 하다 술을 끊어야겠다 다짐하게 됐다. 숙취로 다음날을 날려 보낸다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별로였다. 그렇게 한번 술을 끊어보자 한 게 벌써 6년 차다. 기분 좋게 알딸딸한 술기운, 흥이 넘치는 술자리 분위기는 여전히 좋아한다.
회사원으로 숙명인 술자리는 빠질 수 없는 180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처럼 만취한 그들을 집으로 안전귀가시킨다. 소주병을 흔드는 퍼포먼스라거나 쏘맥잔을 말아주는 작은 노력을 쏟는다. 소맥을 잘 섞는답시고 수저로 가볍게 쳤을 뿐인데, 잔을 뚫었던 실수로 이목을 끌기도 한다. 물이든 탄산이든 소주잔에 채워 술자리 분위기를 깨지 않는 모습까지 겸하면 빠질 수 없는 술자리에서 평타는 칠 수 있다. 잘 보여야 하는 상사가 있다면 숙취해소제 또는 그가 좋아하는 음료를 자리에 미리 대령하는 모습으로 점수를 보존할 수 있다. 술기운이 깬 상태라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다.
사람인지라 술을 안 마시는 게 잘못은 아닌데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들도 술을 안 마시는 내게 술을 권유하지 않듯 적어도 술자리 분위기에 어울리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회식에서 술이 보이지 않는 날을 바라며 물로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