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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익쉬익 거북이 선생의 변신

거북이 엄마의 자격이 있을까.

by miyouvely

지인 권유로 키우게 된 거북이 4마리. 우리 집에 거북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은 나를 보면 밥 내놓으라고 달려오는 녀석을 보면 거북이 맘이지.

그로 인해 출퇴근 이후 1시간은 거북이에게 할애한다. 배고파도 거북이 먼저. 조금이라도 바삭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 까다로운 우리 공주님들 덕분에 다른 거북이보다 더 걸리는 편이다.



요즘에는 멸치에 맛들려서 저렇게 가끔 멸치 내놓을 것을 시위한다. 출근 준비하는 데 첨벙첨벙 소리가 나서 수조를 보면 저렇게 탈출을 하기 위한 힘찬 발길질과 함께 쉬익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 옆에 귀엽게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게 놀랍게도 작은 애가 수컷이다. 귀엽고 앙증맞은 녀석. 알짱거리다 암컷 발로 펀치맞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한데 적당히 귀찮게 해야지. 본능적으로 암컷에서 정이 가는 거인가.


미미와 형무니


산란기가 다가오면 잠도 많아지고 육지에 올라와서 일광욕을 하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한다.

신기하게 금방까지 수영을 하다가 전원이 꺼진 듯 바로 잠을 자는 걸 보면 신기해서 멍하니 보게 된다.

그렇다고 물끄러미 쳐다보면 눈길을 느끼는지 바로 눈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밥에 대한 갈망으로 헤엄쳐오니

숨어서 보거나 멀리서 쳐다보는 것만 허용한다. 지켜지지 않는 허용.



꿈나라로 간 송이


암컷마다 산란시기도 다르고 산란주기도 달라서 모든 게 처음인 우리는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다.

첫 사진에 힘차게 쉬익 거리는 녀석이 알을 다 깨버리는 사태가 일어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특별한 이상은 없고 알도 만들어지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다만 멸치를 많이 먹이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멸치를 많이 먹여서 간수치가 올라간 거 같다는 생각지 못한 의사의 답변에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 이후로는 알이 깨지지 않아 한시름 놨지만. 안 주면 되지 않냐라고 하는 사람을 위해 변명을 해보자면 멸치를 5~6마리로는 부족하다고 물장구를 치며 쉬익 하는 모습을 경험하고 나면 달라질 것이다.



알수록 신기한 거북이 산란증상


산란의 임박하면 꼬리를 양발로 비빈다. 그러면서 강하게 탈출을 감행하려고 한다.

이 두 가지 증상이 빈번하면 물에서 꺼내줘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수중산란이라는 끔찍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싫다.

증상이 보이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적당한 온도로 물을 모래에 섞은 통에 넣어주고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왜냐면 알을 어디 낳았는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어슬렁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적당한 곳을 물색한다.

마음에 들면 손으로 파보기도 하고 얼굴로 파고들기도 한다. 그럼 바로 산란하느냐 그건 아니다.

열심히 땅을 파다가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적당한 곳을 물색하러 돌아다닌다. 애간장 녹이는 대회 나가면 1등이지 않을까.

겨우 마음에 드는 곳에서 알을 열심히 뒷발로 파고 둠칫둠칫 몸을 흔들면서 알을 낳는다.

다 낳고 나면 뒷발로 알을 보호하기 위해 흙을 덮는다. 캠으로 보다가 알이 실시간 떨어지는 모습을 봤는데 온몸에 찌릿했다. 산통으로 출산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걸 보니 얼마나 힘들까. 사람은 한번 낳지만 애들은 최소 3~4회를 5주 간격 주기로 낳는다는데 선배로 모셔야겠다. 그렇다고 멸치를 더 많이 줄 수는 없으니 화는 내지 말아 줬으면.



산란 중인 미미


모래를 다 덮고 돌아다니면 꺼내주면 되는데 이제 사람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살포시 알이 흔들리지 않고 꺼낼 수 있도록 모래 더미를 파내야 한다.

낳은 방향 그대로 꺼내지 않으면 숨이 막혀서 숨구멍을 표시해야 된다.

부화기에 조심히 넣어주면 산란에 대한 중요한 일들은 일단락된 거다.


모래에서 산란을 하느라 온몸에 모래 투성이인 암컷은 수조와 비슷한 온도에서 씻겨준다.

몇 분만 둬도 모래가 무거워서 가라앉는다. 그럼 다시 수조로 넣어주고 사료를 준다.

낮 분만이 아니라 감사하지만 새벽 분만은 주인에게 고되다. 녹다운 상태로 거북이도 잠을 청하고

주인도 기절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을 한다.



알을 깨고 사료를 먹을 때까지는 끝나지 않았다.


알을 낳으면 끝나는 줄 알았지.

무정란은 썩을 가능성 때문에 주의 깊게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부화장을 열었다 닫으면서 충격을 줄 수 있어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아직 부화를 해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이라 심장을 졸이고 있다.

작고 소중한 거북이가 우리에게도 와줄까. 누구를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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