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하면 실망이 커지는 법
서프라이즈를 못하는 남자를 소개하려 한다.
생일을 맞이해서 파스타집으로 향했다. 오래된 술집을 떠올리는 오묘한 형광등 색과 분위기 설상가상 벨이 없어서 직원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곳이라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식사를 다 먹어갈 때쯤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홀현히 사라진 그를 보고 설마라는 생각이 스쳤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생일 축하해 라며 케이크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모르는척하려고 했지만 숨기지 못하는 그의 행동과 표정에 차후에 어떤 이벤트를 하더라도 서프라이즈는 기대하면 안 되겠구나 다짐했다.
2022년도 03월 03일 토요일 직장인에게 정해진 휴일로 어느 때처럼 데이트가 예정돼있었다. 전날 밤에 이석증 증상이 심해지면 내일 병원 가야 할 것 같다며 걱정을 남기고 약을 먹고 꿈나라로 떠났다. 그의 걱정 덕분인지 외출할 수 있는 컨디션으로 회복된 상태였다. 직장동료분이 소개해준 캠핑 분위기에서 고기를 맛볼 수 있는 맛집으로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날이 좋아서 인지 괜스레 꾸미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는 그런 날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니 기초화장만 옅게 해왔지만 눈 화장에 귀걸이 착용까지 추레한 모습은 탈피한 상태로 그를 만났다. 꾸미고 왔네가 아닌 타이어 경고등이 떠서 정비소 들렀다 가야 한다고 했다. 센서 이상 반응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상 없다는 전문가 말을 듣고서야 맛집으로 향했다. 먹는 것에 진심인 그 덕분에 주말마다 맛집 투어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며 얘기를 나누다 아파트 시세를 보기 위해 어플을 켜고 지도를 보는 모습에 혹여라도 음식점이 밝혀질까 노심초사했다고 합니다.
도로를 지나 골목으로 굽이굽이 들어가는데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다고 내비게이션이 잘못 알려준 것 같다고 말했지만 좀만 더 가보자며 고집을 부렸다. 신기하게도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이 나왔고 주차가 되어있는 차들과 캠핑장 입구를 꾸며놓은 것을 보니 진짜 맛집 보네라며 신기해했다. 입구 도착해서 여기 너무 예쁘다 포스팅할래라며 평소처럼 사진을 찍었다. 평소라면 기다려줬을 텐데 오늘따라 독촉을 하는 모습에 예민하다 싶었습니다. 내부에는 예약제인지 저희 외 손님이 없었습니다. 이때까지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저는 여기 되게 좋다 냅킨에 이니셜이 적혀있어 라며 해맑게 웃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는 떨렸는지도 모른 채 말이죠. 일단 의자에 앉아보라며 해서 착석하고 앞을 보니 TV 모니터에서 저희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테이블을 둘러보니 Will you marry me? 액자를 보고서야 아.... 지금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거구나 인지를 하게 되었어요. 영상으로 눈을 다시금 돌리니 그가 썼던 편지가 나오고 있고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그에게 서프라이즈 프러포즈를 받기는 힘들겠어라며 농을 던졌던 그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얼마나 고민해서 준비했을지 보여서 감동이 두배로 밀려왔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던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가사 한 글자에서 진심이 느껴져 넋 놓아 울었습니다. 곁으로 다가와 반지를 꺼내며 나랑 결혼해줄래라며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이 맺혀있는 그를 보고 그래라고 답하고 미래를 같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난 네가 연기하는 줄 알았지. 눈치 못 챘어? "
".........? 연기가 아니라 진짜 몰랐어.."
프러포즈 전날 아픈 저로 인해 예약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으로 잠을 설쳤다고 했어요. 갑자기 타이어 경고등이 뜨질 않나. 웬일로 화장을 안 하는데 꾸미고 와서 놀랐다고 이미 눈치를 챈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느라 힘들었다. 결정타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이라는 글자를 보고 프러포즈를 들킨 것 같아 낙담하고 있었다고 말이죠. 평소에 눈치가 백 단이라 피곤한 저도 무의식적으로 평생 한 번뿐인 프러포즈는 모르고 싶었나 보네라며 웃으며 추억을 하나 또 쌓았습니다.
방명록에 전날 다녀간 예비 신부의 "샤넬 백이 제일 감동..... 아니 장난이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대다수 프러포즈는 결혼식을 바로 앞두고 하지만 저희는 프러포즈를 시작으로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수순을 밝기로 했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