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십니까?’
‘당신은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십니까?’
a는 이 문항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대학교만 가면 삶이 트인다는 어른들 말을 믿고 명문대 입학증을 손에 쥐었다. 학점 잘 받으면 좋은 기업에 갈 수 있다는 선배들 말을 믿고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거뒀다. 이 정도로 살았으면 누구든 나를 데려가려 용을 쓰지 않을까? a는 그렇게 성공한 노비가 되려고 애를 썼다. 남은 건 인적성검사와 두 번의 면접. 드디어 그만 열심히 살아도 되겠다. 아직 관문 하나를 통과했을 뿐이지만, 앞길이 창창할 것만 같았다.
a는 자신의 성과가 모두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 문제로 떠오른 공정 담론 따위, 노력하지 않은 자들이 스스로를 위안하려 만들어 낸 허상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a는 국가장학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알바를 하며 대학을 다니는. 그러니까 고학생이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느라 2년의 청춘을 바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건아. 중견기업 정년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아버지 부장님의 자랑스런 아들. a는 평범한 중산층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상위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누구보다 애를 쓰는, 그런 삶 말이다.
a 자신은 열심히 사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삶의 영역이 확장돼갈수록 넓은 세상만큼 미친놈들이 많았다. 분명 어제까지 밤새 놀았던 친구는 다음 날 시험에서 1등을 하고, 존재감 없던 녀석은 조기졸업 후 S대 석사과정을 밟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a는 그제서야 세상의 불공평함을 깨달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뭐하나. 난 놈은 천지에 있는데. 최선만으로는 성과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끝내 a는 그 쉬운 문항, 매우 그렇다부터 매우 아니다까지 다섯 개로 나누어진 그 문항에 어떠한 표시도 마치지 못했다. 시험장을 나서서 집이 아닌 곳으로 발을 뗐다. 집-학교-아르바이트의 삶 외에는 인생의 모양이 없는 줄 알았던 그의 삶에 문신처럼 물음표가 박혔다. 조언을 구해봤자 “다 그러고 살아” 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너무나 뻔했다. 지금 a가 해야 할 일은 매 순간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는 것.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밤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건 a에게 무척 낯선 일이었다. 그는 열심히 사는 사람을 가득 실은 열차에 낑겨, 이리저리 실려다니는 신세였으니. 행선지도 정해놓지 않은 채, 그냥 2호선에 앉아서 서울을 한 바퀴 돌았다. 난생 처음으로 빛을 머금은 한강의 수면을 관찰하기도 했고, 노약자석에 앉아 수다를 떠는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지하철 판매원이 노련한 기술로 팔고 있는 게르마늄 팔찌도 차봤다. 이런 게 삶이구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문래역이란 곳에 잠시 발을 내려보았다. 피 냄새 같기도, 쇠 냄새 같기도 한 알싸한 것이 코를 찔렀다. 그제서야 살아있는 내가 느껴졌다. 그 누구의 지시도, 권유도, 강요도 아닌 것을 스스로 해낸 날, a는 일상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살아온 거라고. 자신에게 처음으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