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or Nov 04. 2022

기다리는 동안

장미는 두 시부터 어린왕자를 기다렸다.

마음과 말이 따로 놀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내가 널 아끼는 마음이 그렇다. 오늘 너가 오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해야지. 열 달 한 몸으로 지내 열 아홉 해 내 청춘을 바쳤던 너가 세상의 풍파에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쩌면 너무 많은 말로 상처를 줬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건, 너에게도 나에게도 상처가 되는 일이란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밤새 울음을 그치지 않는 너를 안고 나도 펑펑 울었다. 정글짐에서 떨어진 너를 안고 응급실로 달렸던 그날, 아이가 감당하기엔 두꺼운 갑옷 같은 붕대를 감고 병원 문을 나섰던 그날. 나는 차라리 내 뼈가 부러졌으면 했다. 


그럼에도 내 말에는 왜 그렇게 가시가 가득했는지. 아빠 없는 아이라는 세상의 손가락질보다, 나의 따끔한 말이 너에겐 덜 아플거라 생각했다. 선생에게 대들었다가 전화가 온 날, 너를 꾸중하기 이전에 왜 그랬냐 이유라도 물어볼걸. 친구와 싸웠다는 네게 그럴 이유가 있겠지, 라며 너에게 잘못을 묻지 말걸. 나이가 차고 너를 내 품에서 떠나보낸 지금에서야 나는 너에게 사죄하며 매일을 산다. 


너는 이 별을 너무도 일찍 떠났다. 부모는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의 무게를, 네가 떠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한날은 교회에 가서 내 천사같은 아이를 일찍 데려간 신을 원망하고, 한날은 절에 가서 네가 극락왕생하기를 빈다. 부모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교회를 지켜온 내가, 지금은 천국도 지옥도 없는 세계에서 네가 평안을 찾기를 바란다. 


열 장이 넘는 너의 유서를 읽고 또 읽어도 너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너의 죽음은 딱 한 줄 짜리가 되었다. 신변 비관. 내 눈에 너는 아직 앞길이 창창한데. 무수한 가능성이 네게는 존재하는데. 뭐가 그렇게 힘이 들었을까.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그 무엇도, 그 누구의 위로도 내 물음에 대답해주지 못한다. 


나는 너를 기다리는 중인 장미다. 너는 네모난 상자에 들어간 어린왕자. 숫자 붙이기 좋아하는 어른들이 네가 있는 곳을 물으면, 나는 B동 6열 12번째에 네가 있다고 전한다. 언제나처럼 네가 그리운 오늘, 별을 보며 어린왕자를 기리듯 나는 B동 6열 12번째 칸에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