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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Jul 10. 2024

인생은 산 넘어 산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1. 예전에 신규간호사 앞에서 선배 간호사로서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자라나는 새싹 같은 신규간호사들에게 무엇을 말해줄까?’를 고민하다가 프레젠테이션 페이지에 다섯 문장을 썼다.


인생은 산 넘어 산? 아니, 똥밭이다.
지치고 힘들 땐 휴식? 아니 더 힘내셔야 해요.
진짜 그만두고 싶을 때 관둬라? 더 버티세요.
연차가 쌓일수록 편하다? 힘듦도 쌓입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갈 줄 알았죠? 곧 쓰나미 옵니다.


 간호부장님부터 간호부 여러 선배들이 듣는 자리였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을 펼쳤다.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던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간호사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선배로서 꼭 말해주고 싶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늘어놓았나 싶지만, 생각보다 반응은 좋았다.




2. 어릴 때 축농증으로 이비인후과에 자주 다녔다. 주로 다니던 이비인후과에 젊은 부원장이 새로 왔었다. 내 주치의가 젊은 부원장으로 바뀌었는데, 진료하던 첫날에 열다섯도 안 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산 넘어 산일 줄 알죠? 다음 산이 있을 줄 알고 이 산을 넘었더니, 산은 없고 똥밭이 쫙~ 펼쳐져있었어요.”


 나는 그때 이야기를 기억하고 집에 와서 엄마 앞에서 그대로 전했다.


“엄마, 산 넘어 산이 아니라 뭐게?”

“산 아니가? 그럼 뭔데?”

“똥밭이야! 깔깔깔”

“누가 그런 말 했어? 엄청 똑똑한 사람인가? 대단한데!”

“오늘 이비인후과에 새로 온 의사 선생님이.”

“와, 명의네 그 집(이비인후과 의원).”


 그 당시 나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 축농증 주치의에 대한 이미지는 ‘돈도 잘 벌고 오랜 공부를 끝내고 취업까지 했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았나 보다. 지금 내가 그때 그 주치의 나이쯤 되어보니 정말 공감된다. 나이가 하나 둘, 인생의 연차가 늘어나면 노하우도 많아지고, 힘든 것도 무던하게 넘길 거라고 생각했다.




3. 이제 산 좀 넘어가나 싶었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내 앞에 펼쳐진 건 또 다른 똥밭이었다.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 무거워진 바위를 짊어지고 길을 헤매다 보니 문득 해가 떴다. 반복되는 상처, 마음의 짐을 잠깐 내려두고 바다를 바라본다.


 아름답다. 쨍하다. 푸른 바다 위의 윤슬이 유난히 더 반짝인다. 어쩌면 무겁게 들고 있던 바위덩어리 때문에 매일 뜨는 해가 오늘따라 더 뜨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저 태양이 나의 그림자를 더 각인시키듯, 극심한 통증이 있기에 진통제가 있고 힘든 경험 덕분에 행복이 더 짠하게 느껴지는 것. 유토피아는 없다. 그저 기쁨도 희망도 슬픔도 응어리도 같이 얽히며 존재할 뿐이다. 내가 짊어지던 바위덩어리도, 바다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도 존재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렇게 다 같이 살아가나 보다.


 그래도 잘 살아내야지, 구름 뒤에 뒤덮일지라도 어김없이 내일도 뜨는 뜨거운 태양처럼.


This artwork is based on a reference image © bottlenin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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