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선생님께 직접 대면상담을 요청했다.
결론부터,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다. 상황은 지속됐다.
일반적으로 학교 상담주간 이외에는 큰일이 없는 한 면담신청을 하는 일은 없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선생님께서는 미소 지으시며 맞아 주셨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 왜 오셨는지 이유를 궁금해하는 눈빛도 함께.
선생님께 우리 아이가 은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띄웠다. 선생님은 다소 놀란 반응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신다.
"저희 반 아이들은 딱히 그룹을 만드는 일이 없고 두루두루 잘 노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스키캠프에서 찐따라고 놀린 것을 말씀드리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저희 반은 절대 함부로 다른 사람에 욕을 포함해서 외모나 능력 등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은 절대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요 선생님, 이걸 허용하는 교실이 있을까요. 금지된 일을 아이들이 음지에서 하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거죠. 그리고 아이들은 하지 말란다고 안 하지 않아요.
"여자 아이들 사이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후 잘 해결된 일이 있어요. 크게 염려 마세요."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며 문제해결에 효능감을 보이시기도했다. 그런데 해결이 됐다는 말씀에 의문을 품었다.
미성숙한 아이들의 관계 문제가 한 번의 대화로 유연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선생님의 안일한 생각에 잠시 화가 나기도 했다.
그간에 있었던 일들, 놀이에 껴 주지 않고 은근히 따돌림을 반복한 것, 아이에게 찐따라고 놀린 것을 포함해서 사실을 말씀드렸다. 모든 걸 다 말씀드리기엔 시간적인 여유도 부족했고 내 언변 능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최대한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약간은 미소를 띠고 요구 사항을 말씀드렸다.(내 딴에는 교양 있어 보이고 싶었나 본데, 미소를 보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1. 더 이상 따돌리거나 비하발언하지 않기
2. 선생님 입회 하에 상대 부모님 만나기
3. 일이 커지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 아이들 모두를 불러 놓고 이야기하지 않기. 이 상황은 '1대 다' 상황에 아이들이 놓이게 되면 오히려 그 그룹의 결속력을 높여주고 반대편인 우리 아들이 더욱 따돌림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도 '1대 다' 상황은 원하지 않았다.
면담은 선생님께서 특별한 조치를 말씀해 주시기보다는 아들의 어려움을 들어주시는 것으로 시간이 할애됐다. 잘 들으려고 노력하셨고 받아 적으시기도 했다. '내가 말을 좀 더 조리 있게 강하게 했어야 했나... 이건 또 빼먹고 말을 못 했네.. 그 말은 하지 말걸 그랬나' 후회와 자책, 일단 일을 하나 해치웠다는 안도감이 섞여 심난한 상태로 교실 문을 나왔다.
"선생님, 저희 아들은 A보다는 B가 따돌리는 게 심하다고 해요. 그래서 B부모님을 먼저 만나보고 싶은데요. 원래 따로 만나도 될 만큼 친분이 있는 어머님이고 인성도 좋으신 분이시지만, 민감한 일이라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감정이 고조될 수 있고요. 선생님 입회 하시고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머님, 그건 교감섬생님께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쭤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시간쯤 지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일단 그런 일이 있었던 것에 대해 어머님 마음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감선생님께서 허락을 하지 않으셔서 만남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내일 OO와도 이야기 나눠보고, 다른 친구들과도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일 아이와 이야기 나눠보시고 말씀 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지금은 독이 차있는 상황이지만, 그땐 나도 처음이라 어리둥절하고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한 건데, 교감선생님이 반대를 하셨다면 교장선생님을 내가 찾아갔어야 했다. 학폭신청은 나중 문제 더라도 이 사안을 공식화하는 게 맞았다.
나: 선생님 혹시 오늘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셨나요?
선생님: 제가 지금 출장 중이라 통화가 어려울 것 같아 메시지 남깁니다. OO(우리 아들)이랑 먼저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한 후에 B이랑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B는 왕따, 찐따와 같은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 OO(우리 아들), ㅁㅁ, DD, BB 가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B가 끼워달라고 할 때 OO이가 안 끼워주려고 하면서 자신을 따돌려서 본인도 그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OO이 를 안 끼워주려고 한 적은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아이들 말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A(찐따라고 말한 아이)와 다른 친구들을 함께 불러서 왕따, 찐따와 같은 말을 했거나 들은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한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스키캠프 당시는 B랑 OO 이는 사이가 좀 안 좋았지만 본인들은 OO이 랑 사이가 괜찮은 편이라고 해서 어떤 친구든 두루두루 잘 지내고 혹시나 그런 말을 나중에라도 듣게 되거나 남학생들 중에서 관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변 친구가 있으면 선생님한테 바로 알려달라고 하고 마무리가 된 상황입니다. 방학까지 남은 이들과 개학한 이후 2주 정도의 시간 동안은 제가 쉬는 시간이나 놀 이 할 때 자주 살펴보면서 남학생들 관계를 좀 주의 깊게 보려고 해요. OO 이한테는 이후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 즉시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서 도움을 요 청하라고 했어요. 저도 학급에서 계속 살피며 지도할 테니 어머님께서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OO이랑 이야기하시면서 제가 알아야 될 부분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아니라고? 그럴 리 없었다. 그 아이들은 부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이후 사실임이 확인 됐다). 그 와중에도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별일이 아닌데, 우리 아들 귀한 마음에 내가 예민한 걸까? 아니다. 내가 눈치챈 몇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었고 아들은 정말로 힘들어했다.
너무 화가 났다. 학부모가 대면면담까지 간 것에 대한 선생님의 배려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 부모에게까지 선생님이 배려해 줄 의무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는 건 학부모에게도 부담이다. 혹시 이 일로 우리 아이가 미움받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갑질부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불안감도 있다. 그럼에도 찾아가서 직접 면담을 한 것은 이 일이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그저 상대방 아이들이 아니라고 했다고 거기서 끝낸다고?
안 되겠다.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그날 밤 나와 아들은 B엄마와 B를 불러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안녕하세요. 어제 보내주신 문자보고 고심 끝에 B어머니, B, 저, OO이가 만나서 이야기했습니다. B어머님과는 원만히 이야기했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대화를 하다 보니, OO이가 받은 반복적인 언어폭력 피해와 따돌림은 명확히 있었던 일로 생각됩니다. B랑 OO이 모두 최근 워터파크에서 A가 OO 이에게 찐따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하네요. 애초에 제가 선생님께 이 일을 말씀드린 이유가 다른 아이들이 벌을 받거나 사과를 하게 하고 싶은 게 아니고, OO이가 어렵게 이 이야기를 한 이상 앞으로는 왕따 찐따라는 놀림과 따돌림을 받지 않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치로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선생님께서도 OO 이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비슷한 일이 일어나 지 않게 신경 써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OO 이에게는 그런 일이 있을 때 바로 선생님이나 어른에게 수시로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OO이 본인도 좀 더 원만한 언행을 할 수 있도록 집에서도 지도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님 그렇군요. 만나서 이야기가 잘 이루어졌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저 또한 아이들을 지도할 때 잘못에 대해 벌을 받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제가 여러 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크 든 작든, 내가 주도했든 남을 따라 했든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인지하고 내가 상처나 피해를 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저도 OO이랑 대화를 했을 때 OO이의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의 발언에 대해 의심하면서까지 일을 진행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과 관련해서는 해당 학생이 그 일이 일어난 때에 즉시 담임교사에 게 알림으로써 담임교사가 현장에서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보다 빠른 문제 해결 이 가능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어제 OO이랑 이야기하면서 OO이가 이런 일을 저에게 말했을 경우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이 걱정되고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해했고, 그럼에도 일 이 더 커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비슷한 일이 2~3번 반복되는 때에는 바로 알려야 한 다고 이야기해 줬습니다. 학급에서 왕따, 찐따와 같은 발언을 포함해서 외모나 능력 등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은 절대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학급에서 더욱 관심 가지고 지도하여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 선생님 입장 이해합니다. 사과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도 동의하고요. 선생님께 상황을 즉시 알리는걸 엄마들도 아이에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만 아이들 개개인 성향에 따라도 영향을 주고,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고요. 이번 일을 계기로 OO이도 친구들도 서로의 행동을 점검해 보고 마음에 상처 없이 즐겁게 학교생활했으면 합니다. 한 학기 고생 많으셨습니다. 방학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불려 간 사실 자체가 A와 B에게 부담으로 여겨지길 바랐다. 부담을 느끼면 그 아이들의 행동이 위축될 것 을 기대한 것이다.
선생님 문자의 요지는 우리 아들 말이 거짓말 같진 않지만, 그 아이들이 아니라는데 의심하면서 까지 들춰낼 수는 없었다. 우리 아들이 선생님께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맞다 선생님께 이야기하는 것은 사건해결에 매우 중요한 키다. 그러나 선생님은 우리 아들이 선생님께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피해아이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말하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말하지 않은 아이를 탓하는 듯한 뉘앙스. 피해자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일이 더 커져버린 것이라는 자책감을 오히려 피해자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됐기 떄문에 서생님께 면담을 요청한 것인데...
아이들이 부인하는데, 일을 더 진행시킬 수 없었다는 말도 이해는 됐다. 그런데 도무지 피해 아이에 대한 충분한 배려와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든 조치였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중립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아이들 모두 선생님의 제자들이다.
한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요
선생님은 진정 이 말을 믿은 것일까? 가해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굉장히 빈번하다고들 한다. B의 엄마와 만남을 통해, A가 선생님께 '그런 적 없다고, 그런 말은 한 적도 들어본 적고 없다고 말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당시 함께 있던 B가 증명해 주었다. 잘못을 부인하는 건 인간에겐 어쩌면 즉물적인 반응일지 모르겠다. 인정하고 반성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잡아 떼거나, 장난이었다거나, 단순 다툼이었다며, 얘도 나한테 그런 적 있다며 핑계를 대는 아이들도 있다. B도 예전에 우리 아들이 껴주지 않은 적이 있다고 한다는데, 우리 아들은 그때 한 두 차례였지만, B는 학기 내내 아들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따돌렸다. 나를 만나서도 선생님께 말했던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께 본인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안 껴 주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안 껴준 게 따돌림이고, 그 아이는 무리를 이뤘고, 그 빈도가 많았다는 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그 아이는 인지하지 못했다.
아들 말을 들어보니 이후 선생님은 다른 조치는 하시지 않은 것 같았고, 방학까지 남은기간 지켜본다고 하셨는데, 이후 어떤 피드백도 주지 않으셨다.
부모로선 아이 상황이 좋아졌는지 악화됐는지, 관찰 후 선생님 생각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한 번의 질문과 답변으로 상황을 종료시키셨다. 학부모와 학생이 느끼는 고통과 심각성에 견주어 볼때 선생님은 안일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듯한 태도 였다. 매우 아쉬운 조치였다. 상대방 아이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진 않더라도, 피해를 호소한 아이에게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메세지 정도는 전해줄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그렇지, 이놈의 사립학교가 문제 생기는 걸 쉬쉬하는 거겠지. '우리 학교는 학교폭력으로 교육청에 신고된 건이 한 개도 없다'라고 자랑하더니, 이런 식으로 유야무야 사건을 정리해 버리니 학폭이 열리겠어?! 이 학교에서 친구관계 문제로 전학 간 학생이 얼마나 많은지는 내가 아는데! 선생님이 순진한 거야? 애들이 아니라고 그러면 그냥 아닌 거야? 인간에 대한 이해는 있는 건가?!.' 속이 부글거리고 학교며 선생님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어쩌면 선생님은 적당한 조치를 취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부인했으니. 아니라고 했으니, 더 이상 뭘 어찌하겠나. 온전히 내 아이에게만 집중 해달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피해 입은 아이 부모입장에서는 면담은 했는데, 관찰해 보겠단 선생님 피드백은 없어서 답답하고, 이 사안에 대한 본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전혀 학부모와 공유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은 불통 상황을 좋게만 바라볼 순 없었다.
간밤 꿈결에 한 평남짓한 방에서 마치 그 방만은 진공상태라 소리의 울림이 전혀 없이, 나 혼자 악다구니를 쓰고있는 상황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으니, 의구심을 가지고 면담 질문을 다양하게 하거나 정황을 살펴봐 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부인을 한다 해도, 아이들이 혹시 장난으로라도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으니, 그 아이들 부모님께라도 가볍게 이야기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이가 그런 행동을 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를 받았다는 아이가 있어서 상담한 사실이 있다." 이 정도만 학부모에게 말해도 상황이 좀 나아졌을 수도 있겠다. 그 정도만으로도 일반적인 부모들은 아이에게 집에서 단속을 한다. 혹시나 이 정도 문자를 보낸 것만으로도 상대편 부모가 '내 자식을 의심하냐며' 발끈해서 상황이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아니'라는 부인으로 상황이 종결된 것이 어쩌면 고마웠을까. 선생님은 부모가 아이들을 훈육할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은 것이다. 모든 학부모가 잠재적 갑질 부모쯤으로 여긴 것은 아닐까. 일반적인 학부모들은 적극적으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알기를 원하며, 고쳐주고 싶어 한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능력도 인성도 출중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인성 문제에서도 적극적이다. 사건이 학폭으로 이어져 극단으로 갔을 때에야 자기 자식이 학폭 가해자가 될까 봐 전전 긍긍하다가 가해자가 되는 것만은 막아보려다 피해 학부모와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학부모간 충돌이 생기는 것이지, 애초에 첫 단계 문제 제기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어쩌면 교실에 스며들어 있는 아이들의 서열과 무리짓기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우리아들이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왜곡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일까. 하.. 이것도 아니야 면담 때 내가 말을 충분히 못 했나 봐...
속은 부글부글 끓고, 머리속은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뒤죽박죽 엉켜서 내 사고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예전엔 그럴 수 있지만, 지금은 안된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그저 내가 '학교폭력감지 민감도'가 높은 예민한 학부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일까? '학교폭력감지 민감도'는 성 인지 감수성과 비슷한 맥락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적절한 행위를 좀 더 민감하게 학교폭력으로 인지하는 광범위한 능력을 말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의 학폭도 마찬가지다. 놀리고 장난치는 것이 상대 친구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이것을 일종의 학교폭력으로 간주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는 그럴 수도 있지 넘어갔던 일이 요즘엔 그렇지 않다.
학교의 사각지대에서 아이들이 사소하게 누군가를 공격하는 행위에 무관심했기때문에, 우리는 어른이 된 지금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운 감정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도울 수 있다면 민감하게 도와주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일선에 일하고 계시는 선생님들 또한 고충을 토로하신다.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은경 아위미디어>에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폭이 터지는 날부터 우리 반 아이들은 방치될 수밖에 없어요. 업무의 특성상 한정된 시간 안에 빠르고 정확한 공문 작성, 결제가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 준비, 학급 운영, 반 아이들 상담보다 우선될 수밖에 없어요. 당연히 우리 반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들이 생기죠. 처리해야 할 학폭 사안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제가 우리 반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 수업 준비에 쏟는 시간 등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 해 동안 '내년에는 절대 학 교폭력 업무만은 피해 가야지'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건 마치 폭 탄 돌리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이 업무를 피한다면 우리 학교 교사 중 누군가 맡아야 할 텐데, 지금껏 이 업무를 지원한 교사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학교폭력 업무는 학교가 아닌 교육청, 경찰 등 다른 기관으로 이관되어야 해요."(101).
"요즘 학교폭력을 신고 접수하는 학생의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상대 학생에게 강제 전학 조치 혹은 학급 교체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물론 내 아이를 아프게 한 학생과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말 심각한 상해, 상처 등을 입힌 경우라면 적극적인 분리가 필요하지요. 그렇지만 상대 학생 역시 누군가의 자녀이자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하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실수에서 배우고, 실패에서 성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학교, 교사, 교육기관이 필요한 거겠지요. 나의 아이도 꾸지람을 통해 성장할 수 있고, 다른 아이 도 실수를 통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님들은 교육기관이 자신의 아이만을 보살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의 지도를 부탁하며 교사의 말을 안 들으면 혼내달라고 하기도 했다면, 이제는 우리 아이를 괴롭힌 아이를 격리하고 지도해 달라 합니다. 상대를 격리하지 않으면 담임교사와 학교장이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하며 징계를 요구합니다."(112).
어찌해야 할까. 아이와 학부모의 고통, 그리고 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담임 선생님의 고충. 무조건 가해 아이에게 학폭징계위원회를 통해 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생각할 만한 기회가 어떤 방식이든 필요하다는 것. '다 때가 되면 안다고 표현하지 않길'. 이 말은 그 아이가 인격을 성장 시키는 시간과 과정 속에서 다른 아이가 피해자로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는 아직도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좀더 민감해 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관계의 상처는 꽤 내상이 크기 때문이다. 어른인 우리도 (상처를 뒷전으로 미룰 수 있는 기술만 있을 뿐)불쑥 언젠가 아픔이 튀어나와 다시 고통의 감각을 일으켜 세우고 나를 무너져 버리게 할 지 모를 일이다. 가끔 나는 그렇더라. 극복의 문제는 개인사일 지언정, 적극적인 해결의 의지를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피해 받은 아이들도 안정감을 갖고 그 상황의 여정을 지나갈 수 있기에.
그럼에도 우리가 면담을 요구했을 땐 충분히 상황이 좋아질 수 있는 시점이었다고 판단한다. 아이들이 친해지진 않더라도 피해가 깊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A와 놀이에서 따돌리는 B의 행동은 계속됐다. 당시 아들은 어렵게 말을 꺼냈고, 학부모도 어렵게 면담을 청했다. 이때 상대 부모님께라도 언급을 했다면, 아이들을 면담할 때 아이들이 부인하더라도, 진짜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될 경우 학교폭력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상기 시키며, 조심해야 한다는 예방교육이라도 해서 어느정도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주의를 주었다면 상황이 조금은 좋아지지 않았을까? 담임 선생님의 대처가 매우 아쉬웠고 실망스러웠다. 당시엔 아쉬움의 크기가 지금 같지는 않았지만 이후 지속된 아이들의 행동을 볼수록 원망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이 아이들은 우리 아들을 괴롭히면서 어떠한 페널티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아이들의 행동변화는 기대할 수 없던 것이었다. 덕분에 이 아이들은 학습했다.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부인을 잘하고 상황을 잘 모면하는 방법을 배웠다. 자신의 행동을 점검해 보며 일말의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을 느낄만한 기회를 잃었다. 실수를 통해 성장할 기회를 잃었다.
아이들과의 면담 조치를 취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나는 잠시 포기했다. 그저 상황이 잠잠해 지기를 바랐다. 사실 면담 이후 바로 방학이어서 사건이 발생할 일도 없었다.
다만, 학기가 끝날 무렵인 2월 경, 어이없게도 봄학기 사이에 또 발생한 사건들을 선생님께 알리며 반배정에 신경 써 달라는 부탁을 했다. A라는 학생이 카톡으로 우리 아들에게 불편한 문자를 보낸 내용을 이야기해 드리고, 캡처한 사진을 저장해 두고 있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필요하시면 공유해 드리겠다고. 선생님은 다소 당황한 듯 한 목소리였고, 반배정을 잘 조치하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현재 5학년이 되었다. 두 아이 그리고 연루됐던 무리를 이루는 주변 친구들과도 모두 분리 됐다.
나의 말이 선생님께 가 닿았다는 후련함, 그리고 함께한다는 안도감
다행이었다. 내가 구지 먼저 일장 연설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5학년 담임선생님은 초등 고학년 아이들의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고 계셨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아들이 아이들 관계에서 어떤 스탠스를 갖는지 관찰한 것을 이야기해 주셨다. 본인이 판단하시기에 적절한 방안으로 상황을 만들려고 이런저런 가정을 해가며 노력해 주셨다. 고민을 해 주신 거다. 나의 말이 선생님께 가 닿은 것 같아 후련함을 느꼈다. 선생님의 조치가 어떤 결과를 보일지는 모르겠다. 이번 조치가 썩 좋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이가 관계에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자신만의 스탠스를 갖도록 선생님과 내가 협력하고 있다는 안도감 만으로도 상황이 약간은 정리되는 것 같았다. 물론 사건의 해결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쩌면 학부모나 학생이 우선적으로 선생님께 바라는 것은 피해에 대한 공감과 함께 고민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감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부모가 아이의 학교폭력 피해를 감지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선은 아이가 해결하도록 독려해 보고, 선생님과 면담하고, 해결되지 않은면 학교폭력을 신고하는 정도. 다만 어느 단계든지 순조롭지 않다. 더 큰 문제를 양상하기도 한다. 우리 가족의 경우처럼, 장기간 이상한 괴롭힘에 노출 돼서 선생님과 면담을 하더라도 울분만 더 쌓이는 경우도 있고, 현재 담임 선생님처럼 어느정도 사건의 맥을 파악해 주시는 분도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가해 아이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도 부인하는 경우도, 뭐가 됐든 상황은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