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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공팔 Jun 04. 2024

너마저...

우리 아들 따돌림 당한 썰 푼다

수면 위로 올라온 최초 사건을 정리해 봤다.  


2023년 9월.

우리 아들 축구팀 리그전이 있는 날이다.

김밥을 싸고 팝콘치킨을 튀기고 과자와 얼음물을 준비해 보냉백에 담았다. 아들 축구하는 동안 지켜보며 앉아있을 돗자리와 스타벅스 캠핑의자도 넣었다.

두 번째 축구대회다. 처음 같은 학교 아이들 6명 정도를 모아 사설 축구 클럽에 수업을 개설했고 이후 한 두 명씩 인원이 보충돼서 9명이 한 팀이 되었다. (축구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존 멤버 엄마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단톡에서 투표를 통해 찬성이 과반이 넘으면 클럽에 참여할 수 있다.)


엄마부터 무리에서 져나오기

이번 대회는 남편과 아들만 보냈다. 아들 친구들과 엄마들이 불편해졌기 때문에. 아들을 무시한다던 A와 B가 축구팀 멤버였고 나는 그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반가운 얼굴로 웃어 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축구경기하는 동안 엄마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게 되는데 그게 곤욕이었다.

엄마들 모임은 기가 빨린다고들 한다. 내 위주가 아니라 자식을 앞세운 모임이기에 서로 각자 자신을 적당히 숨겨가며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또 얼마나 많은지.(아니 뭐 자랑으로 들릴 수 있는 어떤 말도 하면 안되고. 그렇다고 자식 못난 점을 말해서도 안 되고. 학창 시절이야기도 안된다. 학벌이 노출 될 수 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해서는 더욱 안된다. 서로 정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야기할 소재가 드라마나 연예인 얘기밖에 할 수가 없다. 엄마들이 교양 없고 무식해서가 아니다). 절대 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중립적인 이야기를 골라내는 말센스가 필요하다(내겐 그런 능력은 없다). 또한 절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식도 사고 치지 않고 번듯해야 엄마들과 원만한 사이가 유지될 수 있다. 사실 자식이 좀 불안해서 엄마들 모임에 필사적으로 소속되어 자식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경우도 많다. 과 내가 한쪽 발 묶고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 이인삼각 달리기 같은 모임이랄까.. 즐거울 땐 좋지만 굉장히 스트레스 쌓이기 쉬운 폐쇄적인 모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모임은 우리 자식이 친구무리에서 잘 적응하고 배제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정신줄과 시간을 써가며 접대하는 모임에 가깝다. 그러니 만남 자체에 기가 빨리는 것. 어쩌면 인간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소속감의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모임이기도 하다. 아이나 어른이나 소속되고 싶은 마음만 없으면, 따돌림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한단다. 스트레스 있는 환경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시답잖은 이야기 나누기를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엄마들 모임을 꺼려한다. 나의 경우는 딱히 모임 자체가 어려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큰 부담 없이 아이들이 학원에 간 빈 시간에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밤에 맥주를 즐기기도 하고, 같이 마라톤을 참가할 만큼 엄마들과 친분을 쌓기도 했다. 분명 모임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애석하게도 이 모임 자체에도 세력은 존재하고, 아이 문제가 아니라 엄마들 관계 때문에 모임이 틀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마치 터져버리는 지뢰같은 가능성을 묻어 둔 쿨한 관계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그 엄마들 모임의 자식 무리가 우리 아들 무시하며 함부로 대한다는 걸 감지한 순간부터는 만남이 꺼려졌다. 만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그녀들의 육아 고민을 함께 하고 응원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혹여 내가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노출시켜서도 안될 것 같았다. 지뢰가 터졌다.




경기 날 저녁 남편과 둘만 남은 거실에서 남편이 말을 꺼냈다.

 

" C가 우리 아들한테 화를 내더라고. 지켜봐야겠어."

" 우리 아들한테 화를 왜?"

" 우리 아들이 골키퍼를 주로 하더라고. 몇 번 잘 막았는데, 몇 골은 또 못 막으니까 성질을 빽 내더라고. C만 그런 게 아니라 D도. 우리 아들은 별 반응 없고"

"그럼 우리 아들 말고 다른 애가 골키퍼 할 때도 화내? "

"아니."

그렇지. 아니었으니까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내게 말을 꺼낸 거겠지.

"근데 C까지 그런다고? C는 그런 스타일 아닌데, 사리분별 잘하잖아. 착한 건 모르겠지만 원 옳은 것 그른 것 구분 잘해서 행동하는데. C도 그런다고?!"  

C는 같은 단지 살고 유치원도 같이 나온 친구다. 둘이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다. 아이들보다는 엄마끼리 좀 더 친했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아이와 C를 내차로 학원에 바래다 줄 일이 있었는데, 둘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어색한 기류가 흘러서 내심 C도 그 무리 중 하나인가 싶긴 했다. 그러나 C는 절대 선동하는 아이도 아니고 싫어도 딱히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아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 줄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아들은 어떻게 하는데?"

" 경기 때는 그냥 도 바쁜 것 같았고. 그런데 우리 편이 골을 넣었는데 다른 친구들 서로 엉겨 붙고 즐거워하는데, 신나게 웃으면서 개네한테 다가가다가 딱 멈칫하더니  애들 사이에 끼질 못하더라고. 그냥 혼자 그 자리에서 신나게 방방 뛰더라."

"친구들이 자기 거부할까 봐 못 다가간 거겠지 뭐.  그래서 주변에서 뱅뱅 돌았겠지. 걔네 말고 다른 아이들은 어때?"

" 그 아이들은 뉴트럴해. 그래서 우리 아들도 뉴트럴 한 애들한테 말 걸고 친근한 척하더라고. 사실 그 친구들도 아들한텐 별 관심은 없고. 쉬는 시간에 과자 가져온 거 열어서 친구들 먼저 주고, 친한 척 다가가고. 우리 아들 노력을 많이 하더라고. 내가 보기에 우리 아들  딱히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한테 친구 관계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우리 아들 잘못이 아니라 그냥 그 애들이 우리 아들 만만하게 대하는 거야. 우리 아들 잘못 없다."

"어쩌면 여보, 축구가 시작은 아니었을까 해. 우리 아들 축구 잘 못하고 느리잖아. 워낙 승부욕 강한 남자애은 우리 아들 보면서 속 터지지 않았을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후 화나. 열심히 골을 막고도 욕먹을 것 같으면 그냥 상대 골을 있는 대로 다 먹어버렸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네. 우리 아들한테 그냥 골을 다 막지 말라고 하고 싶어. 골 신나게 먹고 게임에서 져버리라고!"




감정은 또 잠시 극단으로 치닫는다. 비교적 무딘 남편의 눈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 마당에 무시당하는 것이 분명한 팩트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건 뭐 A, B는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젠틀한 C 너마저... 우리 아들을 함부로 대한다니.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우리 아들이 무시해도 되는 아이가 돼버렸지. 아이가 사소하게 참고 있는 게 너무 많았다. 며칠간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때만 해도 따돌림이라는 생각까진 못했던 것 같다. 아이가 무시받는다는 정도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동네 맘카페에 글을 올려봤다.  생각에만 함몰되는 것 같아서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론 위로도 받고 스스로 상황을 정리해 보는데 도움이 됐다.  


초등 고학년 아들 친구문제 조언 부탁드려요^^

초 4 아들입니다.

친구들이 유독 우리 아이를 무시하거나 쉽게 아들에게 화를 내요. 당해도 딱히 크게 반응하거나 기분 나쁜 티도 안 내는 것 같고. 낙천적이라 그런 줄도 모르는 것도 같고요.

예) 축구할 때 아들이 골키퍼인데 상대편 골을 못 막았을 때 우리 아이에게 화를 내요(다른 친구들한테는 젠틀한 아이)

뭔가 말을 건네면 '어쩌라고..' 이런 방식.
따를 시키거나 폭력을 가하진 않지만(요즘  아이들 무력 폭력은 현저히 줄었지만,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은따같은 정서적 가해 빈도가 높다네요,, 걱정..)

상황은 이렇고요.
이런 경우 상대친구 아이 대하실 때 친절하게 vs 냉담하게 어느 쪽이 신가요? 원래 별문제 없을 땐 친근했지만 알고 나서는 참.. 웃음이 안 나옵니다^^
그 아이들 있는 상황에선 제가 일부러 아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아들에게 더 웃고 해요. (이 아이가 나에게 귀하다는 티를 좀 내야 하나 싶기도 해서.. 맞는 방식인진 모르겠지만)

다양한 조언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맘카페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많지만,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지역 맘카페도 많다. 육아, 학원, 생활정보를 얻는데 효과적인 구전 정보원이다.



10건의 댓글이 달렸다. 공감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됐다.  대부분 아이 스스로 불합리하다거나 무시당했을 때 대응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시도해 봤지만 시간도 걸리고, 이것도 아이의 성정이나 나이에 따라 되는 아이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고. 아이가 어릴 때라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4학년 짜리 붙잡아 놓고 "그렇게 말하지 마! 하지 마! 내가 기분 나빠." 말하도록 연습시키거나 혹은 면전에서 정색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아들이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거부 방식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아들은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따돌림도 이미 동반되고 있었던 듯) 불편했던 한 부분이 조금씩 곪아 가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들이 훌쩍 커버린 것도 같아서 생경하기도 했다. 아들은 자기는 괜찮다고 반에 A랑 B가 있긴 하지만 다른 친구들도 있어서 그 친구들이랑 놀면 된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언제 이렇게 커서 인간관계 고민도 하게 됐을까 싶고. 우리 가족은 그저 그저 응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후 축구 선생님께 아들이 골키퍼 할 때 상황을 전했고, 선생님께서 축구클럽 아이들을 소집해서 몇 마디 훈계를 하신 것으로 이번 상황은 마무리 됐다. 

그렇게 점차 눈덩이가 불어나고 있었다.


원래 그렇다. 누 구 한 명이 '그 애 좀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씨앗을 뿌리면, 다른 친구들은 '이상하지, 완전 이상해.'라며 싹을 틔운다. 그다음부터 나무는 알아서 자란다. '좀 이상한 그 애'로 찍혔던 아이는 나중에 어마어마한 이미지의 괴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체리새우: 비밀글 입니다/ 황영미/ 문학동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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