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도 안 돼서 혼자 돼가꼬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건사허기가 어디 그리 쉽간디. 냄겨놓은 재산 하나 없고, 꼴랑 안산밖의 눈곱만 헌 땅 한 뙤기 말고는 논도 밭도 다 남의 땅 부쳐 먹어야 허는 형편인디, 끼니때마다 들여야 허는 밥상이 추레헌 것은 당연지사지. 식당허는 느그 이모헌티 누룽지라도 얻어다가 끓여놓으믄 고만고만한 것들이 조로록 앉어서 허겁지겁 먹을 때, 내 입으로 한 숟갈이나 제대로 퍼 넣은 줄 아냐. 그렇게라도 한 끼 넘기는 것이 감사허고, 느들 먹는 것 보고 있으믄, 쌀 한 톨 안 먹어도 내 배는 저절로 부르고 그렸어.
느들은 한창 자랄 나이라 이것저것 눈에 뵈는 대로 먹을라고 제비새끼마냥 입 벌리고 뎀벼들지, 그렇다고 뭐 하나 손꾸락으로 찍어 먹을 만 헌 것은 없지. 그려도 여름이믄 괜찮여, 오이며 가지가 천지잉게. 그거라도 무치고 볶아서 주믄 되지만 겨울에는 여지없었어. 어쩔 때는 상 우에 올라온 것이 찐 고구마 한 양푼뿐이고, 또 어떤 날은 수제비 한 냄비가 전부고.
어느 해 겨울인가, 허구한 날 수제비만 혀싼게 명주 니가 그러드라고. 형섭이네처럼 우리도 라면 좀 먹어봤으믄 좋겄다고. 라면 살 돈이 어딨어. 수제비라도 끼니 때울 수 있는 것이 감지덕지헐 판인디. 너도 기억나지잉. 학교 준비물이람서 물감 사달라고 저어그 고샅까지 울어재낌서 가도 겨우 몇 천 원도 안 허는 그 돈을 못줬던 거.
늘쌍 모자랐고 없었고, 그려서 뭣이라도 손에 쥘라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혀도 잘 안 되드라고. 맨날 쌀독 바닥 긁는 날이 허다혔응게. 그려도 그렇게 허리띠 졸라매고 살었더니 끼니는 안 건너뛰어도 되게 되얏지. 지금 생각혀 보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그냥 버텨낸 거여. 썩은 울타리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잖여. 내 새끼들이랑 푸진 상 앞에 놓고 배 뚜들김서 알콩달콩 살고 싶었는디, 느들 아부지 없이 나 혼자 힘으로 해볼랑게 그것이 말처럼 쉽진 않드라고.
그때 생각 나냐. 봄인디, 지금처럼 한창 모내기를 할 때여. 하루는 아침도 못 먹고 새벽부터 허리가 부러져라 부안댁네 모내기를 혔어. 점심때가 된게 창시가 등가죽에 붙겄더라고. 나야 그 집에서 몇 숟갈 뜨믄 그만인디, 느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 거여. 또 밥을 어찌 줘야 하나 걱정되드라고. 기운은 하나도 없는디 쌀 걱정 안 하는 게 어디냐, 그런 생각을 허믄서 어찌어찌 집까지 걸어와 봤드니 명숙이 니가 동생들을 마롱에 둘러앉혀놓고 이렇게 밥을 비벼놨드라고.
밥때 됐다고 동생들 챙기는 명숙이도 이뿌고 오종종허니 앉은 쪼메난 내 새끼들이 어찌나 이뿌든지. 등가죽에 붙었든 창시가 불뚝 일어남서 힘이 나드랑게. 그기다 엄마도 먹어보람서 숟가락을 내밀길래, 맛은 어찐가 하고 떠먹어 봤드니 눈물 나게 맛나드라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쌀보다 보리가 더 많은 밥에 시어터진 열무김치 말고는 별나게 들어간 것도 없는디 그리 맛나드랑게. 나는 여즉도 그때 그 맛을 못잊겄어.
혼자서 먹는 밥이 무슨 맛이 나겄냐. 숟가락을 들고 무심결에 앞을 보믄 눈 맞춰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여. 그러믄 또 숟가락 들 힘도 없는 노인네마냥 다시 내려놓게 돼야. 그려도 느들이 때마다 전화해서 아침은, 점심은, 저녁은, 하고 끼니를 챙길 때마다 안 먹었다고 허믄 느들 걱정헐깨비 나는 또 야무지게 먹었다고 당찬 소리를 혔지. 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목구멍으로 밥이 잘 안 넘어가드라고. 참 오랫동안 입맛이 없었어. 근디 요즘에 부쩍 그것이 먹고 싶드랑게. 그려, 그때 그 비빔밥.
옛날에 명주 니가 라면 먹고 잡다고 그런 것처럼 요 사이 나는 이렇게 양푼에다 비빈 밥이 그렇게 먹고 잡드라고. 그려서 무작정 비볐다가 싹다그리 버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여. 느들 보내줄 요량으로 열무김치라도 버무릴라 치믄 생각나고, 먹잘 것 없어 된장찌개라도 한 투가리 끓이믄 생각나고. 그때보다 밥도 더 찰진 쌀밥이고, 그때보다 열무김치에 양념도 더 들어가고, 그때보다 된장도 더 맛나게 담가졌는디, 이상허지. 어찌케 먹어도 옛날 그 맛이 안 나드라고.
근디 오늘은 차암 맛나다. 느들이랑 같이 먹어서 긍가. 내 새끼들 다 모여있응게 밥상이 차암 푸지고만. 아-따 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