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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프리키스 Free Kiss

  에구구 망측해라. 쪽쪽 쫍쫍, 빨고 핥고 아주 난리가 났다. 그렇다고 보지 않을 내가 아니다. 가렸지만 가려지지 않은 열손가락 틈으로 낱낱이 보인다. 어찌나 자세히 보이는지 머리카락 한 올이 여자의 뺨을 가로지르는 것도 보인다. 방금 거실바닥을 열심히 걸레질하던 더러운 손으로 눈을 가리고서도 볼 건 다 본다. 더없이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순간이다.


  꼭 감은 두 눈, 살짝 비튼 고개, 방향을 바꿀 때마다 서로의 얼굴에 맞닿아 짓이겨지는 콧망울. 게다가 벌려진 입술 사이로는 물컹한 혀가 왔다아 갔다아. 야해도 너무 야하다. 키스 신 대타라도 뛰는 냥 헤벌쭉 벌어진 내 입술도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참 뜨거운 장면을 집중해서 보는데 반갑지 않게 아들놈이 외출에서 돌아왔다. 머쓱해진 나는 하던 걸레질을 다시 설렁설렁 하는 척하며 말한다. 키스하기 전 저 여자 립스틱이 빨갛게 번들거리던데 다 번져서 어떡하냐, 남자 입술에 다 묻었겠네, 저 키스 끝나고 나서 닦는 모양새가 꽤나 웃기겠다, 내 입술은 앵두 같아서 아무것도 안 발라도 예쁜데, 했더니 아들놈이 클클 웃으며 어머니 곱게 늙으셔야죠, 한다. 내가 저런 녀석을 낳고 아들 낳았다며 좋다고 미역국을 그릇째 마셨던가.


  와장창 산통을 깨버린 아들놈 덕분에 앞섶이 흥건하게 침 흘리던 기분은 날아가고, 좀 전 그 여자의 빨간 입술만 눈앞에 동동 떠다녔다. 그래서 나도 거울 앞에 앉아서 가지고 있는 립스틱 중 가장 빨간 녀석을 골라 덕지덕지 발라 보지만 보여줄 남자가 없다. 남편은 나에게 가슴 설레던 남자가 아니라 형이 된지 오래다.


  휴지를 뽑아 슥슥 립스틱을 지우며 생각한다. 몸뚱이 중 가장 비밀스럽고도 성스럽지만 드러내놓고 아름다울 수 있는 부위, 입술. 입술은 언제부터 빨간 빛을 더하고 또 사랑의 표현을 대표하는 키스라는 것을 하게 되었을까.


  여기저기 찾아보니 남자들만 먹을 수 있었던 포도주를 혹시 여자가 몰래 마시지 않았는지 확인하려 입속에 혀를 넣어 샅샅이 뒤지다가 키스로 변했다는 설도 있고, 역시 사냥 나간 사이 여자 혼자 식량을 축내지 않았는지 확인하던 것이 변했다는 설도 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키스의 기원은 남자의 의심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낭만이 없을 수가 있나. 로맨스를 사랑하는 아줌마인 나는 절대 믿지 않기로 한다.


  키스는 입을 맞추는 부위에 따라 그 의미가 가지각색이다.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고백할 때는 입술. 당신을 정말 좋아해요, 사랑의 인사를 할 때는 볼. 당신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애정을 담아 손등.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요, 기원하며 코끝. 당신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해요, 이마. 당신에게 반했어요, 머리. 당신을 존경해요, 손등. 당신에게 언제나 감사해요, 살포시 감은 눈.


  뭣이 중헌디, 사랑하는 사람이 키스를 해준다는디. 이렇게나 많은 부위가 무슨 소용이고, 이렇게나 많은 의미가 무슨 소용이여. 그러나 말은 그러해도 마음 같아서는 흰머리가 희끗희끗 올라오는 머리통의 정수리라도 내밀어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 달라 조르고 싶다.


  곧 키스데이가 다가온다.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그에 대한 답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답하는 3월 14일 화이트데이, 그리고 그 모두가 이루어져 장미꽃을 한 아름 안기며 프러포즈를 하는 5월 14일 로즈데이를 넘어서고 나면 그 사랑을 확인하는 6월 14일 키스데이가 남는다. 굳이 유월에 키스데이가 자리한 이유는 숫자 6을 발음할 때의 입술 모양이 키스하기 딱 좋은 모양이라나.


  그러나 4월 14일은 키스데이를 행복하게 기다릴 수 없는 패배자, 솔로를 기념하는 날이라 하니 6월이 그닥 달갑지도 기억에 남겨놓고 싶지도 않을 터다.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냐, 라고 돼지껍데기 같은 입술로 말하는 형과 사는 나도 그렇다.


  뽀뽀와 키스, 두 단어가 자연스레 끌어오는 단어는 입술이건만 요즘은 입술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죄다 마스크로 꽁꽁 감추고 다니니 눈만 빼꼼히 내밀어 입술은 고사하고 입술코빼기도 보기 힘들다. 저 사람이 웃고 있구나, 쉬이 알게 되는 것은 입술이다. 그런데 웃는지 우는지 입술을 볼 수 없으니, 사람들이 모두 아무런 감정도 표정도 없이 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그래서 나의 매력 포인트인 앵두 같은 내 입술도 그 사람들처럼 마스크 속으로 숨겨놓고 자랑할 수 없어 아쉽기 그지없는 참이다.


  ‘프리 허그’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원하기만 하면 길 가는 이에게 자연스레 포옹을 해주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포옹은 옛일,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가까이 서는 것도 꺼려하는 세상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맘껏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키스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물론 지금 같은 때에도 연인들은 여전히 뜨겁겠지만 나는 그럴 사람이 없어 신박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해 본다.


  바이러스가 완전히 없어지는 날, ‘프리 키스’ 팻말을 목에 걸고 예쁘게 머리에 꽃도 꽂고 큰길에 당당히 서 있어 보면 어떨까. 버드 키스 햄버거 키스 에어클리닝 키스 프렌치 키스 와이드스페이스 키스 이팅 키스, 종류도 많던데. 그러면 그 날은 꼭 비가 내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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