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는 왜 긱 이코노미로 향하는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대학입시 때에는 다시 한 번 더 수능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해야 했고, 대학 입학 전에는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회초년생이 된 지금 창업과 취업의 갈림길을 마주하고 있다. 내 선택 기준은 안정과 자유다. 대학생 시절, 운 좋게 내 사업아이템이 창업공모전에 최종 선정되어 창업할 기회가 있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창업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내리는 판단 하나하나가 사업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불안했다. 창업의 길은 나에게 안정이라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부모님 말씀대로 직장인이 되어 볼까도 생각했다. 인턴생활을 잠깐 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직장생활에는 내가 바라던 자유가 없었다. 취업도 창업도 아니면 나는 무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긱워커가 되었다. 경제적·심리적으로 자유롭고 안정된 삶을 위해 내가 찾은 대안은 긱 이코노미다. 긱 이코노미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노동자가 그때그때 계약을 맺고 일하는 업무형태를 의미한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긱워크의 특성상 대부분의 긱워커들은 ‘N잡러’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렇다. 긱워커로서 내가 첫 번째로 시작한 일은 바로 에어비앤비 체험호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에어비앤비체험은 에어비앤비가 2016년에 운영을 시작한 트립 서비스로 지역민이 여행객들에게 자신의 지역을 안내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이다. 기존 에어비앤비 숙박공유 서비스와 달리 집 없이 무자본으로 창업을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군복무 시절, 취득한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및 가이드 경험을 바탕으로 투어를 기획하고 에어비앤비체험 플랫폼에 게시했다. 현재 주력으로 운영하는 체험은 캠퍼스투어다. 신촌에 위치한 대학교 캠퍼스를 탐방한 뒤 함께 고기파티를 하는 일정으로 구성되어 있는 체험상품으로 전 세계로부터 한국을 방문한 개별 여행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호스팅한 여행객들이 많아지자 리뷰수가 많아졌고, 많아진 리뷰는 더 많은 여행객들의 예약으로 이어졌고, 수익은 나날이 증가하게 되었다.
에어비앤비 체험운영이 안정화되자 곧바로 에어비앤비체험을 주제로 강의를 기획했다. 아직 생소한 플랫폼이었기에 희소가치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서 예상 외로 큰 수익을 얻고 있어 강의를 해야 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또한,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과외를 해왔기에 강의에도 자신있었다. 탈잉, 크몽과 같은 재능플랫폼에 내 강의를 등록하고,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SNS채널을 활용해 강의홍보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강의신청이 아예 들어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수강생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의를 오픈한 덕에 에어비앤비체험 예약이 없을 날에는 강의 수강생을 모집해 강의 꾸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재능플랫폼과 SNS채널에 홍보한 내 강의를 보고, 구청 등에서 강의 제안을 받아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에어비앤비 체험호스트로서의 경험을 살려 에어비앤비 체험호스트 가이드북 출간을 기획했다. 책 출간경험이 있는 작가들이 업로드 한 유튜브영상을 통해 출판 프로세스를 읽히고, 목차 및 기획안 쓰는 법들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강의했던 에어비앤비 체험호스트 자료들을 모았다. 하루에 한 A4 두 장을 쓰는 것을 목표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내 원고를 출판사 관계자가 알아줄 지는 미지수였지만,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 글을 썼다. 원고가 완성되고, 출간기획안을 작성한 뒤 약 20여 군데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약 1달 뒤 몇 개의 출간거절 메일과 함께 출간에 관심이 있다는 메일 몇 개를 받게 되었다. 나는 가장 먼저 연락이 온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했다. 이제 나는 에어비앤비 체험호스트이자 강사이자 작가가 되었다.
긱워커로서 나만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던 중 코로나19기 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공항이 폐쇄되고 관광객이 급감하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체험을 통한 수익창출이 어려워졌다. 곧이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의무화 되었고, 공공기관 등에서 진행하기로 계획되었던 강의는 물론 재능플랫폼에서 진행하고 있었던 모든 강의일정을 취소해야만 했다. 금방 사태가 진정될 줄 알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무슨 일이든 해야 했고, 나는 전자책 기획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여러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계획서 샘플을 전자책으로 묶어 크몽, 탈잉 등의 재능플랫폼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게 팔릴까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이 한 건 두 건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판매 가능성을 확인한 나는 전자책을 추가로 기획하고 판매하게 되었다.
2020년 내내 계속된 코로나19로 인해 재능플랫폼을 통한 전자책 판매로는 지속적인 수입을 얻기는 불가능했다. 연일 새로운 전자책들이 플랫폼에 업로드되어 내 전자책이 노출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위노출을 위한 광고비 지출과 20%라는 수수료 역시 내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나는 직접 내 전자책을 판매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나는 전자책 제작경험을 살려 전자책 전문 출판사를 설립했다. 코로나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2월과 3월 사이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시도한 변화였다. 내가 쓰고 기획한 전자책을 이제 직접 교보문고, YES24 등 대형 인터넷서점에 유통했다. 이후에는 블로그 강사, 퍼스널컬러 컨설턴트, 연애 컨설턴트, 해외구매대행 셀러 등과 전자책 출간계약을 맺고 원고를 부탁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덕분일까? 이제 전자책 수익은 내 주요 수익원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사업계획서 전자책>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지원사업 시즌마다 불티나게 판매되고, 내 사업계획서를 참고해 정부지원사업에 합격했다고 감사연락을 주신 분들의 수 역시 10명이 넘었다.
그동안 진행해오던 강의 역시 코로나19 시대에 맞게 변화를 해야만 했다. 나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던 강의 를 화상회의앱을 통해 비대면 강의로 변경했다. 사실 관광시장 자체가 코로나로 큰 타격을 입은 터라 여행액티비티 플랫폼인 에어비앤비체험 강의 수요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따금씩 강의신청이 들어오면 화상회의 어플인 스카이프 또는 줌을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화상회의 어플 활용법을 재빠르게 터득한 덕분에 여행이 금지된 상황 속에서도 여행과 관광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개인적으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긱워커들은 불확실한 미래 속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나간다. ‘제2의’ 코로나19는 앞으로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며 통제할 수도 없다. 긱워커들은 변화를 거스르지 않고, 변화에 그저 몸을 맡긴다. 파도를 타는 서퍼들처럼 그저 변화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더불어 긱워커는 자신들이 가진 경력과 지식을 변화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새로운 기술과 자신들의 노하우를 접목하거나 전혀 다른 분야와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융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출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긱워커는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을 살아간다.
긱 이코노미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직 생소하다. 설령 긱 이코노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긱워커를 단순히 배달, 택배일을 하는 비정규직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일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백수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나는 취업하지 못하고 일정한 일도 없는 잉여인간으로 보는 측은한 시선들을 감내해야만 한다. 정규직 중심의 사회가 지속되는 한 긱워커는 비정규직 또는 일용직 정도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일자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긱 이코노미의 잠재력을 주목해야 할 때가 왔다.
정규직과 같은 양질의 일자리는 이제 더 이상 생겨나지 않는다. 2019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규직은 35만3,000명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86만7,000명 늘어났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기업은 이윤은 추구하는 집단이다. 기업은 정규직 고용에 따른 세금과 복지비용을 줄여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대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노동력을 활용하는 계약 또는 외주 방식을 통한 업무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정규직 중심의 신규채용은 줄어들고 있으며, 사라진 일자리 대부분은 회복되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러한 경향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카고대 베커프리드먼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로 사라진 일자리의 42%가 ‘영원히’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이 불경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안정적인 삶의 상징이었던 정규직의 신화는 이미 무너져 버렸다. 언제까지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할 것인가?
이제 긱 이코노미는 취업과 창업 사이의 중간지대를 담당하는 제 3의 일자리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긱워커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고객들과 쉽게 만날 수 있다. 누구나 무자본 혹은 적은 자본으로 창업리스크를 최소화한 ‘가벼운’ 사업가가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긱 이코노미다. 동시에 긱워커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긱워커들은 자신들의 일을 다각화하고 매순간 공부하며 자기 자신만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긱워커들은 진정한 자유와 안정을 쟁취하기 위해 취업과 창업의 중간지대 속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 규모는 해마다 커져가고 있다. 2018년 갤럽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전체 근로자 3분의 1 이상이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미국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25년 긱이코노미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2%에 해당하는 2조 7,000억 달러에 달하고 세계 5억 4,000만 명 정도가 긱이코노미의 혜택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긱 이코노미는 더욱 보편화된 노동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취업과 창업으로 구성되었던 이분법적 선택지 사이에 긱 이코노미는 폭넓은 중간지대를 형성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일자리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