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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제 Apr 08. 2021

긱 이코노미에서 꿈을 지켜가는 사람들

자유와 안정, 그 어느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긱워커들.

나는 자유와 안정적인 삶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쟁이 ‘긱워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긱워커들은 끝없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존 패러다임을 거부한다. 이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거의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진다. ‘왜 꼭 9시~6시까지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해야 할까?’ ‘일을 하려면 꼭 지옥철(지옥+지하철) 출퇴근 시간을 견뎌야 할까?’ ‘왜 직업은 하나만 가져야 하는가?’ ‘꼭 사무실에서만 일할 필요가 있을까? 해변에서 일하는 것은 어떨까?’ 긱워커들은 관습대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삶을 거부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망각하고 있었던 진정한 삶의 자유를 직접 찾아 나선다. 


망각하고 있었던 진정한 삶의 자유를 찾아떠나는 긱워커들 (출처: unsplash)


또한, 긱워커들은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의 안정성을 찾고자 한다. 창업 후 5년 이내 약 70%의 기업이 사라지고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빚더미에 앉아 폐업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세태로 인해 젊은 세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공무원 합격 또는 취업에 매달린다. 2020년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 18만 여명의 수험생이 응시하고, 단기인턴자리마저 N수생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긱워커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해 자신들의 능력을 살려 하는 일을 다각화한다. 이를 통해 리스크 분산을 시도하고 일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들은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직접 월급이 나오는 우물을 파는 새로운 방식으로 삶의 안정성을 추구한다. 


긱워커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직접 월급이 나오는 우물을 파는 전략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다. (출처: unsplash)


그동안 취업과 창업의 경계는 꽤나 명확하다. 대학을 졸업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취업과 창업이라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한다. 대학 내 진로/취업 센터에서 역시 취업과 창업을 중심으로 진로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취업을 선택한 이들은 취업준비생이 되어 수 십장의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닌다. 취업을 위한 토익점수, 자격증, 인턴경험, 공모전, 봉사활동 경험과 같은 취업 5종 세트 준비는 기본이다. 창업을 선택한 이들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모아둔 돈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다. 창업성공신화를 쓴 창업자들의 성공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무작정 사업을 시작하지만, 대표들은 늘 사업실패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취업과 창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일자리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취업도 창업도 아닌 제3의 일자리 영역인 긱 이코노미를 찾고 있다. 


긱 이코노미는 '잠정적인' 영역이다. 


긱 이코노미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긱 이코노미를 취업과 창업 사이의 중간지대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긱 이코노미는 ‘잠정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긱워커들은 긱 이코노미라는 안정망 속에서 자신들의 재능과 능력을 실험하며 꿈과 적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한다. 특히 수능점수에 맞춰 대학전공을 선택하고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의 간섭과 비교로 성찰의 시간이 부족한 이들에게 긱 이코노미는 꿈의 실험실과도 같다. 이들 중 일부는 긱 이코노미라는 요람을 거쳐 기존 일자리 시장에 편입하기도 하고 자유와 안정을 위한 제3의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


<표1>은 긱 이코노미의 범주를 표로 정리한 것이다. 취업과 창업의 여집합이 곧 긱 이코노미 영역이다. 긱 이코노미는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고 다시 아날로그 형태와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긱 이코노미로 구분할 수 있다. 광의의 긱 이코노미는 비정규·임시직을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 긱 이코노미를 언급할 때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따른 일자리 형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 속 긱워커로 살아가는 이들을 주목하기 위해 긱워커의 범주에서 비정규·임시직을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 속 긱워커들은 기존 일자리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제 3의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다.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또는 전문가형 긱워커의 단계를 거쳐 자기 자신이 곧 플랫폼이 되는 세포 플랫폼을 향해 나아간다. 


긱 이코노미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다. 먼저 비정규·임시직부터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긱 이코노미가 등장한 시기는 1997년에 발생한 ‘IMF사태’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IMF사태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부도와 경영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와 함께 노동의 유연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긱 이코노미의 첫 번째 유형인 ‘비정규·임시직’의 탄생했다. 노동자들은 반강제적으로 그동안 정규직으로서 누려왔던 여러 혜택들을 포기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신자유주의 흐름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비자발적으로 변화를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에 대한 월급 불평등과 차별은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한국 비정규·임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72만 9천원인데, 이는 정규직의 평균 월급의 55%에 해당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월급 불평등과 차별은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다. (출처: unsplash)


2007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명과 앱스토어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경제가 도래했다. 이에 따라 고객 수요를 즉각적으로 반영해 노동력을 공급하는 온디맨드(On-Demand) 경제 또는 주문형 경제가 등장했고, 이는 긱 이코노미의 두 번째 유형인 플랫폼 노동자를 탄생시켰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디지털 IT기업이 제공하는 모바일앱 플랫폼에서 프로젝트 또는 시간제 단위로 일감을 받아 일을 하는 노동자를 일컫는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주로 비숙련 단순 업종에 종사한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배달의 민족의 ‘배민커낵터’가 있다. 배민커낵터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배달경험이 없어도 도보, 자전거, 전동킥보드로 배달을 할 수 있다. 긱워커는 배민커넥트에 지원신청 후 일정시간 사전교육을 받은 후 곧바로 일에 투입된다. 또 다른 긱 이코노미 플랫폼으로는 우리나라 대표 유통업체 쿠팡에서 운영하고 쿠팡 플렉스가 있다. 쿠팡플렉스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쿠팡플렉서로 부린다. 쿠팡플렉서 역시 경력제한이 없고 단시간 교육을 통해 일에 곧바로 투입된다. 


아직까지 플랫폼노동을 본업이 아닌 부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배민커넥트를 운영한 우아한형제들의 자회사 우아한청년은 배민커넥트 기사의 주당 근무시간을 최대 20시간으로 제한했다. 이는 배민커낵트가 전업보다는 대학생들의 단기알바 등과 같은 부업의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조치다. 그러나 계속 악화되고 있는 고용환경으로 인해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노동자들이 몰리면서 플랫폼노동은 이제 더 이상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 격상되고 있다. 2018년 10월 한국고용정보원이 한 달 동안 디지털 플랫폼의 중개를 이용해 고객에게 유급 노동을 제공하고 수입을 얻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이 ‘본업’이라고 답한 비율이 53.7%인 반면 ‘부업’의 경우는 46.3%에 그쳤다. 이는 부업으로 시작했던 플랫폼노동이 이제 전업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디지털 노동 플랫폼 산업 규모는 2017년 기준 65% 성장했으며 이러한 추세에 따라 본업으로써 플랫폼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 플랫폼 노동자의 수는 약 50만 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부업으로 시작했던 플랫폼노동은 이제 생계를 책임지는 본업이 되어가고 있다. (출처: unsplash)

플랫폼 IT기업이 거대화됨에 따라 여러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보장제도가 미흡한 점과 저임금 문제가 대표적인 플랫폼노동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수동적으로 불합리한 변화를 수용했던 과거 비정규·임시직과 달리 이제 긱워커들은 긱 이코노미 도래에 따른 사회적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플랫폼 노동 보호 법안인 ‘AB5’ 법안이 2020년 1월 발효되었다. 유럽의 경우도 플랫폼 노동환경의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리나라 긱워커들 역시 활발하게 사회적 보장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배달 플랫폼 노동자 권익보호단체 ‘라이더유니온’가 설립되어 긱워커들이 중심이 되어 노동환경 개선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의 자발적 노력에 힘입어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를 보호하는 사회적 제도 도입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 12월 말, 플랫폼 노동자 보호대책을 발표하고 관련 특별법 개정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동시에 긱워커들은 저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긱워커들은 사회제도 개선이 되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긱워커들은 한 단계 더 진화한다. 긱 이코노미의 세 번째 유형인 프리랜서 또는 전문가형 긱워커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화와 다각화 전략을 통해 수익 극대화 방안을 모색한다. 이제 긱워커들은 하나의 플랫폼에만 의존하지 않고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다양한 플랫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재능마켓 ‘크몽’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들은 ‘크몽’에만 의지하지 않고, 탈잉, 프립, 오투잡 등 다양한 재능마켓 플랫폼에도 자신의 재능을 홍보한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들의 취미 또는 재능을 십분 활용하여 여러 가지 직업을 수행하는 일명 ‘N잡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리랜서들은 그림 그리는 펀드매니저, 랩하는 작가가 되어 수익원을 다각화하고 고용 불안정성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긱워커들은 전문화와 다각화 전략을 통해 수익 극대화 방안을 모색한다. (출처: unsplash)


또한 프리랜서들은 단순 비숙련노동에서 벗어나 전문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과 달리 프리랜서들은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전문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전문화란 변호사, 회계사와 같이 어려운 공부를 통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동안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일 또는 자기 자신만이 독특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 독특한 일들 역시 전문적인 긱의 범주에 속한다. 긱워커들은 플랫폼 속에서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상품화시키고 실험하며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핀다. 프리랜서들이 상품화한 서비스가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선택을 받을 때 비로소 프리랜서들은 전문가로 발돋움한다. 이제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만이 전문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이제 전문가들은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소비자들과 긱워커의 소통과 신뢰를 통해 탄생한다.


이제 플랫폼에 의지해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실험하고 전문가의 입지를 다진 긱워커들은 플랫폼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꾼다. 긱워커들은 자기 자신이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긱 이코노미의 네 번째 유형인 ‘세포 플랫폼’의 등장이다. 세포 플랫폼은 기존 긱 이코노미 플랫폼에서의 뛰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한 긱워커를 말한다. 이들은 더 이상 플랫폼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자신만의 틈새시장은 찾아낸 긱워커는 고객과의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기반으로 ‘가벼운’ 기업가가 된다. 


긱워커들은 자기 자신이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은 '가벼운' 기업가가 된다. (출처: unsplash)


기존 대형 플랫폼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세포 플랫폼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유튜브 플랫폼을 통한 긱워커의 성공사례가 늘고 있다. 대도서관, 허팝, 등 대형 유튜버들은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꿈을 지키고 이제는 자기 자신이 ‘세포 플랫폼’이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크몽, 탈잉과 같은 국내 재능마켓 플랫폼에서 활동하던 긱워커 역시 자신들만의 책을 쓰는 등 자신만의 재능을 통한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긱 이코노미를 통해 꿈 많은 욕심쟁이들은 삶의 자유와 안정을 추구한다. 나아가 긱워커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이제 자신을 통해 수많은 이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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