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가만히 있다 '벼락거지'가 될 순 없어!
‘회사가 저희의 노후를 보장해주지는 않잖아요.’ 퍼스널컬러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진(이음킬러) 씨는 담담히 말했다. 이전 직장에서 그녀는 야근을 자주해야 했다. 주말 출근까지 하면서 일을 했지만, 제대로 된 추가수당은 나오지 않았다. 인터뷰를 진행한 모든 긱워커들은 회사로부터 받는 월급의 한계를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한 만큼에 비례해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체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에서 2016년 중산층 임금상승률은 1.1%를 기록했는데, 이는 1980년에서 1994년의 중산층 임금상승률인 9.2%보다 8.1% 적은 수치다. 보고서에서 말해주듯 우리의 임금이 점점 하향 평준화되어가고 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부동산 값은 폭등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중위가격 통계에 따르면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5억 2996만원이었지만, 2020년 5월 기준 57.6% 상승한 8억 3542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집값이 치솟자 ‘아파트 한 채만 중개해도 월급’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대한 관심도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높아졌다. 실제로 공인중개사 서울에 위치한 10억 아파트 매매를 중개하게 되면, 최대 1800만 원의 중개수수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월급을 뛰어넘어 웬만한 중소기업 신입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취업난과 월급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2030세대에게 과거 한 때 ‘중년의 시험’이라도 불렸던 공인중개사 시험응시는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14만 명에 달하는 2030세대가 대거 유입되면서 31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1983년 공인중개사 제도 도입 이래 사상 최다 응시자수인 34만 3076명을 기록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 속에서 월급 하나만 믿고 살아가기는 어려워졌다. 대다수 직장인들은 부업 또는 투잡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다. 비즈니스 앱 리멤버가 회사원 1,268명을 대상으로 부업, 사이드프로젝트 등을 할 생각이 있는지에 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 89%의 직장인이 현재 부업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 때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근무할 수 있는 긱 이코노미는 이들에게 훌륭한 부업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들에게 퇴근은 곧 또 다른 출근인 셈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부업 및 투잡 열풍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집콕’생활이 권장되고, 이에 따라 대표적인 긱 이코노미의 업무인 배달 및 운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인 ‘긱워크’의 공급이 필요해졌다. 때마침 본업과 병행하면서 추가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일감을 찾고 있었던 직장인들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근거리 물류 플랫폼 ‘바로고(barogo)’에 따르면 2020년 2월 대비 9월의 배달 건수는 45.4% 증가했고, 이에 비례해 라이더 수 역시 1만 3,200명에서 53% 늘어난 2만 200명으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직장인 3명 중 1명은 부업으로 배달을 고려하고 있다는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조사를 종합해 보면 코로나 시기 투잡러가 많아졌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부업으로 시작했던 긱 이코노미 일자리가 본업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부업이 본업보다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고 있는 사례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대표적인 긱워크 분야인 배달을 살펴보자. 대표 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은 2019년 하반기 기준 소속 배달기사인 배민 라이더스의 월평균 소득이 379만 원이며 상위 10% 라이더의 평균은 632만 원이라고 밝혔다. 보험료, 유류비, 식대 등의 비용을 제하더라도 충분히 높은 급여수준을 자랑한다. 그동안 언론 등에서 플랫폼노동자 또는 긱워커들의 낮은 처우와 적은 급여 문제를 우려해왔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긱 이코노미 일자리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긱 이코노미에서 성장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억대 연봉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유튜버에 관한 뉴스는 이제 더는 놀라운 기삿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보람튜브’가 월 추정수익 37억 원을 벌면서 강남 95억대 빌딩을 매입한 소식은 벌써 1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유튜버뿐만 아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아마존 셀러, 대만 이커머스 플랫폼인 ‘쇼피’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여 수많은 긱워커들이 꿈의 월급인 ‘월 1,000만 원’을 달성하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근로소득의 한계를 깨닫게 된 긱워커들은 돈을 공부한다. 과거 그들은 부모님 말씀대로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일하고 커리어를 쌓으면 돈은 따라온다고 믿었다. 돈을 쫓으면 오히려 돈이 도망간다고 배웠다.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다하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물가와 부동산은 하염없이 오르는 반면 내 월급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최근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기업들은 가장 먼저 직원수 줄이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취업포털 인쿠르트에 따르면 직장인 약 70%가 해고 또는 권고사직을 권유받았다는 조사는 이를 뒷받침한다.
긱워커들은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엠제이 드마코의 책 <부의 추월차선>과 로버트 기요사키의 책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긱워커들의 금융 교과서로 불린다. 긱워커들은 이 책들을 통해 똑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느냐에 따라 돈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들은 부를 향해 가는 방식을 인도, 서행차선, 추월차선으로 구분해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빠르게 부자가 될 수 있는 부의 추월차선을 탈 수 있는 지 고민한다. 또한, 부자아빠의 사고방식과 가난한 아빠의 사고를 대조해 어떤 정신자세를 가져야 경제적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성찰한다.
신사임당, 김작가TV와 같은 경제 유튜브 채널들은 긱워커들의 돈공부를 위한 훌륭한 시청각 자료를 제공한다. 경제 유튜브 채널에 자주 출연한 ‘존봉준’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주식열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서로 다운 긱워크 분야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콘텐츠는 다양한 분야의 긱 이코노미 플랫폼의 인지도 향상을 가져왔다. 일례로 쿠팡의 온라인 제휴마케팅 플랫폼 ‘쿠팡 파트너스’는 2018년 12월에 출시된 이후 경제 유튜브 영상에서 소개됨에 따라 매주 40%씩 서비스 가입자가 늘어나가도 했다.
이처럼 긱워커들은 월급의 한계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 대비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긱 이코노미 플랫폼을 통해 부업 또는 N잡에 도전한다.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일을 하면서 본업에서 부족한 월급을 보완하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이제 자본주의 본질에 대해 공부한다.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원료인 돈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돈을 좇는다. 돈의 가치와 소중함을 몸소 느끼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한다. 물질적 결핍은 긱워커들에게 오히려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기 위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