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사회의 새로운 업무방식인 긱 이코노미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인 해였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대면 활동을 최소화해야 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고, 화상회의 앱인 줌(zoom)을 통해 회의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작은 화면 속에 비친 학우들과 함께 온라인 수업을 수강했다. 그동안 배달을 하지 않았던 빕스나 아웃백 등 뷔페식당과 패밀리 레스토랑까지도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경이 봉쇄되자 집에서 전 세계를 영상으로 여행하는 ‘랜선여행’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처럼 비대면 활동의 증가는 오프라인 사회에서 온라인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화했다. 다양한 언택트 기술과 도구를 통해 우리는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일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온택트(On-tact) 시대의 도래다.
긱 이코노미는 온라인 사회를 기반으로 한 업무방식이다. 소비자와 공급자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서비스 거래를 한다. 직접 대면으로 만나 재화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오프라인 방식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에 게재된 사진 또는 동영상과 함께 상품 또는 서비스 설명을 본 후 주문 및 결제를 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이뤄졌던 우리의 삶의 방식이 언택트 기술에 힘입어 직접 가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가능해졌다. 우리는 이제 온라인 중심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으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급격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일하는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 긱 이코노미가 자리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 일하는 긱 이코노미는 확산하고 있다. 배달과 같은 단순 업무에서 법률상담과 같은 전문영역까지 긱 이코노미화가 일어나고 있다. 변호사플랫폼 '로톡(Lawtalk)'에는 2021년 1월 기준 약 4천여 명의 변호사가 등록되어 있다. 의뢰인은 후기를 참해서 자신이 원하는 변호사를 선택하여 상담을 받고 법률사건을 수임할 수 있다. 로톡의 누적상담 수는 42만 건을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긱워커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아직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다. 긱 이코노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비롯한다.
첫째, 긱워커들은 회사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긱워커들 또한 퇴사 전 자신이 조직 부적응자가 아닐까 수없이 고민했다고 터놓는다.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의 저자 서메리님은 회사를 퇴사한 후 스스로가 나약한 것이 아닐까 자책을 했다고 언급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몇 개월 되지 않는 인턴기간임에도 수직적인 소통방식과 9시부터 6시 사이클로 일해야 하는 회사생활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야근은 왜 하는 것일까? 이렇게 일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까?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대학을 졸업했나?’ 기존 시스템에 대한 의문점과 생각이 많아질 때 즈음 나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긱워커들은 조직 부적응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긱워커는 온라인 사회라는 오프라인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성을 발휘한다. 긱워커는 단지 오프라인 사회가 강요하는 규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좀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상사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사는 생각이 많은 직원보다 일을 잘 하는 직원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일, 상사가 시킨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직원이 오프라인 조직사회에 적합한 인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긱워커의 유연한 사고와 적극적인 탐구 자세는 긱 이코노미라는 온라인 환경 속 조직에서는 필수덕목이 된다. 그들은 전 세계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고 함께 협업을 하기도 한다. 긱 이코노미라는 새로운 업무환경에 긱워커들은 잘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이들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더욱 사회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둘째, 긱워커들의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 또한 다수다. 일단 긱워커라는 단어가 주는 사회적 시선 자체가 그리 곱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긱워커를 노동력이 필요할 때 ‘땜빵’하는 인력 정도로 폄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 때문인지 자기 스스로를 ‘긱워커’로 소개하는 긱워커조차 드물다. 그러나 이는 긱 이코노미를 플랫폼 노동자라는 특정 범주로 편협하게 이해했을 때 오는 오해다. 물론 현재 긱 이코노미 일자리의 대부분이 우버 드라이버, 배민 라이더스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긱 이코노미의 범주는 1장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보다 훨씬 다양하다. 최근에는 재능플랫폼을 중심으로 전문가형 긱워커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들은 퍼스널브랜딩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TV에 전문가 패널로 출연하기도 하기도 한다.
또한, 긱워커들은 자신의 주력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분야로 활발히 진출하기도 한다. 긱워커들은 대부분 여러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N잡러’다. 혹자는 이러한 긱워커를 하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비전문가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분명 일리 있는 비판이다. 긱워커들은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여러 개의 우물을 파게 되니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1만 시간’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시대가 원하는 인재가 한 분야에만 두각을 보이는 전문가인가? 그렇지 않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는 ‘융합의 전문가’를 원한다. 스티브 잡스는 IT지식에 타이포그래피 지식을 접목해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조의 컴퓨터인 매킨토시를 만들었다. 수많은 긱워커들의 멘토인 유튜버 ‘자수성가 청년, 자청’은 팀 페이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을 인용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일들을 배우고 익혀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과 노하우가 쌓인다면 ‘타이탄의 도구들’을 모으게 되고 이러한 도구들을 통해 골리앗들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직업으로 자기 자신이 규정되는 시대는 끝난 듯하다. 이제는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는 일이 어색해져 가고 있다.
셋째, 긱워커들의 처우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다. 특히 고용 불안정성과 저임금 문제로 인해 긱 이코노미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주를 이룬다. 자영업자를 제외한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엠브레인의 ‘긱 이코노미 관련 인식 조사’에서 76.7%는 긱워커들이 고용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69.6%는 긱워커들이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긱 이코노미에 대한 언론의 시각 역시 곱지만은 않다. 경향신문은 2019년 11월 1일자 기사에서 한 달 24.5일 일하고 165만원 벌면서도 사회적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는 긱워커을 실태를 고발했다. 프레시안의 한 논평은 긱 이코노미를 주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을 싸잡아 인간 노동에 대한 ‘느린 폭력’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변화에 저항해왔다. 긱 이코노미라는 새로운 형태의 업무 방식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한 반응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거스를 수 없다. 우리는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운행을 제한했었던 과거 영국의 깃발법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퇴보시킨 전례를 알고 있다. 마차를 파괴하고 선택받은 택시가 이제 와서 보호를 요청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긱 이코노미는 매년 성장하고 있다. 긱워커들의 대표적인 활동 무대 중 하나인 재능플랫폼 ‘크몽’ 관계자는 ‘투잡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와 관련된 카테고리를 강화했으며 특히 투잡 관련 카테고리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이다.“라고 밝혔다. 긱워커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긱 이코노미 플랫폼을 통해 판매하고 예비 긱워커들은 강의 등을 통한 노하우 습득을 바탕으로 긱 이코노미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긱워커들의 사회적 안정망 구축을 위한 다양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는 타다 드라이버를 위한 ‘타다 파트너케어’ 프로그램을 2020년 4월부터 실시했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 역시 배달원들을 위해 보험사들과 합작하여 이륜자동차 보험을 비롯한 라이더 전용 보험 등을 출시했다.
이제 사람들은 긱 이코노미 플랫폼으로 모여든다. 회사라는 오프라인 업무공간에서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온라인 업무공간으로 경제활동의 무대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코로나19는 온라인 사회의 도래를 앞당겼다. 이곳에서는 일을 구하기 위해 100:1의 경쟁률을 뚫을 필요가 없다.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고객들로 넘쳐난다. 이곳에서는 또한 출퇴근 ‘지옥철’과 오전 9시 – 오후 6시 그리고 야근으로 반복되는 삶도 없다. 긱워커들 스스로 자기의 시간을 관리하고 일할 뿐이다. 긱 이코노미는 새로운 온라인 사회의 새로운 업무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긱 이코노미를 통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들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 긱 이코노미는 온라인 사회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