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 살고 있다.
2011년 개봉한 SF영화 ‘인 타임(In Time)’은 시간이 곧 돈인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손목에 표시된 시간을 스캔해 상품을 구매한다. 구매 후 손목에 표시된 시간은 줄어들고, 이는 곧 수명단축을 의미한다. 부의 불평등은 곧 시간의 불평등이다. 부자들은 윤택한 삶을 오랫동안 누리며 살아가고 빈민들은 하루하루 근근이 고된 노동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화폐가 되는 소재는 흥미롭고 신선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시간이 곧 돈인 세상을 살고 있다. 단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회사 출근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우리는 일을 해왔고, 매월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했던 시간은 돈으로 변환되어 우리의 통장에 입금된다. 늘 그래왔듯 우리는 우리의 주 5일 노동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왔다.
긱 이코노미의 도입은 월 단위로 거래되어 왔던 정규직 중심의 노동단위를 시간 또는 분 단위와 건 단위로 더욱 세분화시켰다. 이로 인해 많고 다양한 업무들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노동’이 가능해졌다. 업무의 성격에 최적화된 시간과 노동 자원 투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긱 이코노미 도입에 따른 맞춤형 노동은 통해 기업들과 노동자들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고용시장을 조성하고 있다. 기업은 긱 노동력을 활용해 정규직 고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 반면 노동자는 갈수록 악화되는 노동시장 속에서도 삶과 일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을 유지하면서도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소비자인 고객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듯이 공급자인 노동자의 업무방식도 이에 맞춰 다양해지고 있다.
긱 이코노미는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업무방식이다. 정규직 근로자는 주 5일 동안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는 규정된 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일이 있든 없든 바쁘던 그렇지 않던 해당 시간동안에는 회사 사무실에 있어야 한다.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식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업무 스케줄은 업무의 비효율을 낳게 된다. 사람마다 집중력이 발휘되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저녁시간대에 일할 때 업무의 효율이 높고, 어떤 사람은 아침에 집중력이 높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규근로시간대에 업무를 끝내지 못해 많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게 된다. 야근이 반복되고 피로가 누적되어 무기력감을 느끼게 되는 번아웃 증후군을 호소하는 직장인들도 상당수다. 번아웃을 최근 경험한 직장인이 10명 중 9명에 이른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이러한 업무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들은 긱 이코노미의 업무방식에 주목하고 이를 기업 상황에 맞게 적용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유연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2주간 총 80시간 근무하는 ‘2주 단위 선택근무제’를 도입했으며 2020년 4월에는 서대문, 종로, 판교, 분당에 거점 오피스를 운영해 직원들이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유연근무 환경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IT기업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유연근무제를 시행했다. 네이버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하루 8시간 일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또한 카카오는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파격적인 완전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 카카오에서는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정해진 월 총 근로시간 범위 내에서 업무시작 및 마감시간을 정한다.
긱워커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의 최종목표는 시간을 팔아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 데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생소할 수 있다. 수많은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긱 이코노미의 확산에 따른 노동의 질적 하락문제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인지 긱워커들의 저임금 노동의 실태와 고용불안정 문제에 주목한다. 전 미국 노동장관이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긱 이코노미를 노동자에게 찌꺼기만 남기는 노동형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노동환경은 긱워커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의 드라이버 중 60%가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를 비롯해 긱워커들의 일에 대한 높은 만족도 조사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적어도 내가 만나 인터뷰했던 긱워커들 역시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의 일을 즐기는 듯 보였다.
긱워커들은 미래지향적 현실주의다. 그들은 경제적 자유에서 시간적 자유로 이어지는 부의 추월차선을 타기 위해 기꺼이 녹록치 않는 현실을 받아드린다. 그들은 금보다 더 소중한 시간을 위해 일과 창업의 중간지대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일이 바빠 가족여행 한 번 가지 못하는 삶은 긱워커가 가장 경계하는 삶이다. 이들은 가족을 위해 평생 노동을 했지만, 정작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아버지 세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또한, 회사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줄어들지 않고 늘어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진급을 하면 그에 따른 책임감과 업무량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노동으로부터 독립해 시간을 벌고자 하는 긱워커들은 우선 자본주의의 본질인 돈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우리는 그동안 ‘돈을 좇으면 도망을 간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확대 해석했다. 이 말은 단기적인 물질적 이익을 경계하라는 의미의 격언일 뿐이다. 돈에 대한 관심을 접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초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주식열풍을 이끌었던 ‘존봉준’ 존리 메리츠 자산운용대표는 ‘돈을 버는 방법과 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강조한다. 긱워커들은 주식뿐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탐구하고 더불어 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돈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통해 긱워커들은 수동적 소득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수동적 소득은 불로소득 또는 영어로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로도 불린다. 긱워커들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능동적 소득과 달리 수동적 소득은 시간에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는다. 수동적 소득을 벌 수 있다면 우리는 잠을 자고 있어도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전통적인 수동적 소득의 예로는 저작권료와 부동산 임대수익 등이 있다. 작사가와 작곡가는 한 번 곡을 만들어 두면 음악이 다운로드 또는 스트리밍될 때마다 자동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부동산의 경우에도 매달 나오는 월세가 바로 수동적 소득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수동적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도 생겼다.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영상을 한 번 편집하면 해당 영상 하나를 통해 계속해서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온라인 경로를 통해 수동적 소득을 벌어들이는 이들을 ‘온라인 건물주’라고 칭한다. 긱워커들은 수동적 소득을 위해 오늘도 수많은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이 생겨날 때마다 긱워커들의 노동소득 의존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긱워커들은 업무자동화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복적인 노동을 최대한 줄여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디지털 플랫폼이 제공하는 툴을 적극 활용해 반복 업무를 줄여나간다. 아래 그림과 같이 카카오톡 오픈채팅창에 새로운 사람이 입장할 때마다 인사말을 타이핑하지 않고, 팬다 Jr라는 자동화툴을 활용해 인사말을 대신하는 것이다. 나아가 업무자동화를 위해서 자기개발도 서슴지 않는다. 긱워커의 상당수가 자신의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크몽, 탈잉과 같은 재능플랫폼에서 주기적으로 강의를 듣는다. 비전공자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긱워커는 업무자동화를 위해 파이썬과 같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수동적 소득 파이프라인을 자신의 소득 포트폴리오에 추가한다.